article id #1139
categorized under [문제해결능력] & written by 창틀
categorized under [문제해결능력] & written by 창틀
1. 문제란 무엇인가?
싯타르타 부처는 "삶은 고통의 바다" 라고 했단다. 누구나 고통스러운 삶은 사는 것은 아닐테지만, 어쨌거나 그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표현을 고통이라고 하긴 했지만, 사실 삶은 문제의 연속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고통은 문제에서 나온다. 문제를 해결하면 고통은 사라진다. 예컨대, 무거운 짐을 옮기는데에는 많은 인력이 필요하고, 위험하고, 졸 고통스럽지만, 바퀴를 사용하면 그 힘은 최대 1/1,000로 줄어들고, 위험은 감소하고, 편리하다.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문제의 연속이다. 내가 태어나는 것은 내 부모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문제 이기도 하다. 또한 성장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생기고, 원하든 원치 않든 어떠한 공동체에 속하므로서 문제에 부딛히기도 한다.
옆집 순이한테 쳐 맞은 것도 문제요, 학교에서 왕따 당하는 것도 문제요, 등록금이 치솟는 것도 문제요, 취직이 안되는 것도 문제요, 장가 못가는 것도 문제요, 직장에서 짤리는 것도 문제요, 쥐박이 삽질하는 것도 문제다. 삶은 문제 덩어리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진보이고, 그렇게 문제를 해결해 온 것이 역사인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 기준점을 설정하는 것부터 문제해결의 시작이다.
2. 자전거를 타다
자전거를 탄다고 가정하자. 자전거를 타고 갈 때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넘어졌을 경우다. 자전거가 넘어지면 다치거나, 짐이 깨지고 손상될 수 있다. 그래서 자전거를 탈 때에는 넘어지지 않도록 잘 타야 한다.
모든 문제는 자전거를 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자전거가 넘어졌다는 것은 그 이전에 자전거를 '타다(Ride)'가 전제 된 것이다. 자전거를 탄다는 그 자체가 하나의 일(work)이 진행중인 것이고, 자전거가 넘어진 것은 진행되던 일(work)이 방해를 받거나 중단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가 생겼다면, 보통 문제가 되는 '사건'을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이전에 어떤 일(work)가 선순환 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가 일어나는 사건(accident)은 작은 단위이고, 문제의 전제가 되는 일(work)은 큰 단위다. 그러니 문제의 현상만을 봐서는 결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자전거를 타는 행위는 자전거의 패달을 밞아서 에너지를 얻었을 때 가능한 것. 잘 가다가도 더이상 패달을 밟지 않으면, 점점 속도가 줄어들다가 결국 쓰러지고 만다. 또 다른 경우를 상상할 수가 있는데, 자전거의 패달을 막 밟아대며 속도를 높여 전진하다가 커브길을 만나면 핸들을 부드럽게 꺽어주며, 무게중심을 진행방향 쪽으로 기울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곧 넘어지게 될 것이다. 서 있을 때와 타고 갈 때의 밸런스 개념이 다르고, 직선구간에서의 밸런스 개념과 커브구간에서의 밸런스의 개념은 다르다.
한 개인이 애초에 자전거를 타지 않으면 넘어질 일도 없을테지만, 인류가 자전거를 타지 않으면 진보하지 못해 문명은 퇴보했을 것이다. 잉카문명은 동시대에 유럽권에서는 상상도 못할 세련된 문화를 꽃피웠지만, 바퀴를 발명하지 못해서 진보에 한계가 있었다고 한다.
바퀴 > 수레 > 자전거 > 자동차 > 비행기
마찬가지로 현대인이 인터넷을 하지 않으면, 개똥녀 사건 따위는 애초에 없었겠지만, 반대로 정보의 속도가 느려서 의식이 진보하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결국 밸런스는 두 발로 한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왼 쪽 발을 내딛으면, 무게 중심이 불안정해서 자연스레 오른 쪽 발을 내딛고, 또 불안정해서, 왼 발 > 오른 발 > 왼 발 > 오른 발... 을 교차하며 나아가는 것이다.
수영도 왼 팔과 오른팔을 저어가며 나아가는 것이고, 정치도 진보와 보수가 교차하며 발전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보다.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도 하지만, 인류가 살아가기 위해서 계속해서 문제를 필요로 하기도 하다. 인류의 숙명이다.
3. 에너지 혹은 밸런스
문제란, 문제가 되는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이전에 에너지의 선순환(work)이 무엇으로부터 방해를 받은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일(work)는 에너지가 가는 길, 1cycle 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죽은 것이 문제가 된다면, 사실 '죽음'이라는 사건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연속해오던 삶이 방해를 받은 것이다. 맞아죽건, 병으로 죽건, 스스로 목숨을 끊건 간에, 삶이 어느 시점에서 선순환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죽음은 삶의 그림자일 뿐이다.
누군가에게 주먹으로 얻어맞았다면, 보통 문제가 되지만, 만약 나의 직업이 권투선수 라거나 이종격투기 선수라면, 똑같이 맞는다는 행위가 있더라도 그것은 일의 선순환일 수가 있다. 요는 사건, 행위를 볼 것이 아니라, 포지션과 진행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일(work)는 자전거의 패달을 밟는 것처럼, 에너지가 있어야 하고, 자전거의 핸들을 움직이는 것처럼 밸런스가 맞아야 성립된다. 반대로 말해서, 온 세상에 모든 문제는 그 에너지가 고갈되었거나, 밸런스가 무너졌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고, 그러므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끌어오거나, 밸런스를 맞추어야지만 해결이 된다.
'[문제해결능력]'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당신은 타짜인가? 호구인가? (3) | 2010/08/16 |
|---|---|
| 자기 앞의 生 (0) | 2010/08/02 |
| 문제란 무엇인가? (0) | 2010/07/15 |
| 직장생활의 지랄성 (2) | 2010/07/02 |
| 동양의 음양사상과 서양의 논리학 (0) | 2010/06/29 |
| 스티브 잡스의 icon (1) | 2010/06/2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