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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토론 공화국
언제부터인가 ‘토론’ 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토론이란 그저 TV 속에서 점잖게 양복을 입고 앉아서 예의 차리는 ‘대단한 지식인들의
참 재미없는 대화’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던 토론이 우리에게 가까워진 것은 그리 역사가 깊지는 않았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대학입시에서 논술시험이 생겨나고, 고등학교 수업 중에도 토론수업을 시작하고, 텔레비전에 토론프로그램이
늘어나고, 각종 선거에 앞서 TV토론회가 일반화 되어버렸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토론이란 크게 대단할 것도 없는 우리 일상의 부분이다. 부모님께 용돈 좀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과정도, 친구와 말다툼을 하는
것도,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함을 항변하는 것도 토론의 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과거에는 특히 나이 차이가 있거나 사회적인 지위의 차이가 있을 경우엔, 사실상 토론이 불가능했다. 오로지 명령과 복종에 의하여 의사결정이
가능하던 시절이 있었다.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독재정치를 긴 시간 경험하면서 토론이라고 하면 소모적인
논쟁이고, 비효율적인 절차라고 인식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도 독재의 진통을 뒤로하고 세계화, 인터넷의 보급, 정보산업의 급속한 발전 등 산업구조의 변화와 함께
점차 권위주의 보다는 토론을 통하여 의사결정을 하고, 더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말로서 표현하는 사람이 능력을 인정받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취업하려고 할 때에도 토론면접을 준비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국가기관이나 기업이 원하는 인재는 단지 구직자의 학벌이나 스펙 만이 아닌, 사고력과 표현력을 겸비하여 대립된 상황에서 조차도 미래가치를 설정하고 협력과 화합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경쟁보다는 협력이 더 큰 이익을 주고, 역설적이게도 협력을 하기 위해서는 부딪히고 설득하는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넘어서야만 한다. 토론은 이제 더 이상 특별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닌 우리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때로는 즐기고,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하나의 문화가 되어버렸다.
2. 토론의 본질은 ‘문제해결’ 이다
토론은 자칫 ‘갈등’으로 비춰지기도 하지만, 토론의 본질은 ‘문제해결’이며 ‘갈등해소’ 에 있다. 토론이라고는 말했지만,
사실 논술이나 비판적 글쓰기, 미디어도 마찬가지다. 모든
과정은 공통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은 일련의 흐름이 있다.
 미디어구조론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사건의 당사자는 사회(외부)의 영향을 받아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인지, 판단, 행동의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사건’ 이
터진다. 그리고 이 사건을 놓고 미디어는 기사를 쓰고(사실관계), 심층기사를 쓰고(문제제기), 칼럼을
쓰고(판단기준), 학계에서 레포트를 작성하고(사례연구), 최종적으로 정치인이나 정부관료가 문제해결을 위한 국가차원의
조치를 발표함으로써 일단락 된다.
사건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연역적으로 일어나는 반면, 미디어는 사건의 결과를 놓고 거꾸로 원인을 찾아가는 귀납적인 과정이다. 요컨대
사건은 연역이고, 미디어는 귀납이다.
토론에서 보여지는 부분은 미디어의 전개와 마찬가지로 귀납적인 과정이다. 사회자가 토론의 주제와 문제가 된 사건의 사실관계를 설명하면, 토론패널이
각각 문제제기를 하고, 자기의 관점을 제시하고, 역사적 사례나
외국의 사례 등을 논거로서 부연하여 문제해결의 결론에 다다른다.
연역적 사고를 귀납적 사고로 전환하는 능력이 비판적 글쓰기나 토론에서의
핵심이다. 연역적 사고만 하면 정작 많은 사람들에게 알기 쉽게 표현하기가 어렵고, 귀납적 사고만 하면 ‘문제해결’ 이라는
목표는 사라지고 지식자랑, 탁상공론이 되어버리기 일수다. 토론을
잘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연역의 흐름을 이해하고(시간), 토론에서
귀납적으로 잘 풀어낼 수 있는(공간) 폭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
논쟁에서 있어서 상대방을 반박하거나 날카로운 논거로 굴복시키려는 마음이
강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가 무엇 때문에 토론을 하는지를 잊어버리곤 한다. 그리고 때로는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논리를 개발하고, 반칙을 쓰고, 또 그런 자신을 너무나도
쉽게 합리화 시켜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은 토론자로서 경계해야 한다.
<100분 토론> 은 유시민 전 장관과 손석희 교수가 진행을 해오면서
우리나라 토론문화를 정착시키는데 상징적인 역할을 하였다. 유시민 전 장관은 토론이 소강상태가 될 때, 열띤 논쟁으로 이끌어가는 능력이 탁월했고, 손석희 교수는 패널간의
공방 속에서 냉정하게 토론을 제어하는 모습을 기억한다. 그러나 최근
<100분 토론>은 토론프로그램으로서의 공정성과 중립성이 훼손되어 시청자로부터
질타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케이블 방송인 TVN에서는
백지연 전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대학토론배틀>이
주목 받고 있다. 대학생들이 상금을 놓고 벌이는 서바이벌 토론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토론 프로그램. ‘지식으로 승부하고, 열정으로 소통하고, 도전으로 성장한다.’ 는 카피를 내건 <대학토론배틀>은 승부의 개념이 강하다 보니 이기기 위한
논리와 논거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된다.
그러나 세상일이 논리적 완결성만으로 실제로 문제가 풀리는 것도 아니고, 토론상대를 논리로 굴복시킨다고 해서 그 길이 꼭 옳은 것도 아니고, 역사적
사례나 통계와 같은 논거를 많이 준비한다고 해서 장기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하도록 세상을 바꾸는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토론은 승부가 아니다. 문제와 갈등 이면에 흐르는 ‘시대의 물음’에 답하는 과정이 토론이다.
3. 성숙한 토론이 성숙한 인재를 만든다
토론, 특히 사회문제에 관한 토론은 생각의 범위를 확장하는 계기가
된다. 이제까지 나와 친구들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봤다면 토론을 통해서 공동체, 국가, 인류 차원으로 공간을 확장하고, 수백 년 전의 과거부터 앞으로의 미래까지 시간을 확장하여 사고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구직자가 취업하기 위해서 영어나 엑셀과 같은 여러 가지 기술을 익히지만,
결국 최종단계에 가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고, 주장하고, 설득하기 위한 부수적인 도구와 기능일 뿐이다. 비판적 글쓰기와 토론은
리더의 포지션에서 사고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과 부딪히고, 사회의 통념과 부딪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젊은 시절에 다양한 토론은 당신을 성숙한 인재로 성장시킬 테니까…
위 칼럼은 취업관련 커뮤니티 '취업 뽀개기' 에 기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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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드를 모르는 작곡자 강동철
며칠전 무릎팍도사에는 생전 처음보는 사나이가 나왔더라. 아이돌 걸그룹 노래를 히트시킨 작곡자 강동철(용감한 형제) 이라고 한다. 여느 무릎팍도사처럼 게스트의 인생 성공 스토리를 낱낱이 파헤치는 과정이 토크쇼의 주를 이룬다. 힘들었던 시절 얘기야 다들 비슷비슷 하겠지만, 강동철은 지금껏 나온 출연자와 좀 다른 케이스 인 것은 그가 작곡자이지만 지금까지도 음악에서 말하는 '코드' 도 전혀 모른채 작곡을 한다는 것이다.
질풍노도의 시절, 나름 동네에서 주먹 좀 날리는, 그래서 경찰서 들락날락, 학교는 자퇴하고, 경찰에 구속되고, 그럴 수록 더욱 깊이 빠져들고의 반복. 그러던 그의 인생의 변화가 생긴 것은 우연히 ‘사이프레스 힐’ 의 음악과의 만남이었다고 한다. 충격, 그리고 너무 좋아서 미칠 것 같은... 음악의 내용 따윈 상관없다. 그때부터 무작정 부딛혀 개고생해가면서 소리 하나하나 귀로 익혀갔고, 내공이 쌓이고 쌓여 결국 음악 프로듀서가 되어 많은 음악을 쏟아내게 되었단다.
2. 누구나 노력하면 ‘그’ 처럼 될까?
이런 사람이 한 명 등장하면 여러사람이 곤란해진다. 음악 공부한다고 수 백, 수 천 만원 쏟아부은 그러나 아직까지 별다른 결과물은 나오지 않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음악에 관한 아무런 지식도 없이 어쨌거나 멘땅에 헤딩해가면서 그만큼의 결과물을 낸 강동철을 쉽게 인정 할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영화감독 김기덕 처럼, 육조 혜능처럼 말이다.
음악공부를 하느라 음악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방대한 지식을 습득해야만 했던 많은 시간. 분야가 다르더라도 모두들 자기가 투자한 시간과 지식만큼의 결과물이 나오는 사람은 몇이나될까? 자! 방금 무릎팍도사가 끝났다고 치자. 가족이 모여 앉아 보다가 뭐라고 말했을까? 부모가 자식한테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싶다.
“저렇게 배운게 없는 사람도 엄청나게 노력해서 성공하잖아. 그러니 너도 더 많은 시간 노력을 해야지 성공할 수 있어! 그러니까 너도 강동철 처럼 하루 3~4시간 만 자고 공부하라구!”
과연 그럴까? 그가 오랜시간 나름의 노력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학교에서 배우고 익히는 일정한 량을 투여하는 노력은 아닐 것이다. 노력하면 성공하는 것이 참인가? 그를 통해서 증명된 사실은 그가 개고생 해가면서 작곡의 꿈을 키웠다는 것보다는 그의 노력 이전에 ‘사이프레스 힐’ 로부터 영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래 노력이라고 치자 그럼 그 '노력'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나? 보이지 않는 부분에 진실이 있다.
김연아가 8시간동안 빙판 위에서 연습했다고 한다면, 똑같이 8시간 연습하면 김연아처럼 될까? 아니 12시간 연습하면 되나? 김연아도 스스로 원하는 이상적인 모델을 쫓다보니 8시간이 흐른 것이다. 보여지는 것은 부분에 불과하다. 몰입하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몰입은 노력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즐겁지 않으면 보는 사람도 즐길 수가 없다. 시간의 상대성을 알아야 한다.
보통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는 자녀가 시간이 남으면 무척 불안해 한다. 그래서 학원이나 독서실에 보내서 공부를 하던 말던 일단 눈에 보이지 않아야 비로소 안심한다. 학교, 학원, 독서실에서의 시간만큼에 비례해서 지식이 머릿속에 쌓이는 것일까? 지식은 정말 그 스스로 아는 것일까?
강동철을 통해서 증명된 사실은 지식이라는 것은 결정적인 순간 별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음악의 코드도 모르는 사람이 작곡을 했으니 말이다. ABC를 모르는 사람이 영어를 능통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영단어 3만개를 외우고 다녀도, 단어 3,000 개 알까말까 한 미국초딩보다 못하다.
3. 량이 아니라 질이다
그는 우연히 접한 어느 음악으로 삶 전체가 바뀌어 버렸다고 했다. 영감을 얻어다는 점이 중요하다. 사실 강동철은 아주 특별한 사람은 아니다. 대단한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그의 노래는 무대 위에서 혹은 TV를 통해서 공간에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는 있지만, 시간을 초월하여 10년, 20년 후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기엔 부족함이 많다. 대중가요, 아이돌, 걸그룹... 실용에서의 한계가 있는 것이다.
위대한 멘토 김태원도 (세속적인 기준에서의) 무식하기로는 강동철과 다를 바가 없다. 얼마전 <남자의 자격>에서는 “못생긴 형빈이" 에서 '못'의 받침이 ‘ㅅ’ 이냐고 물어볼 정도니 말이다. 가방끈 짧은건 거기서 거기다. 김태원도 개뿔도 없는 상태에서 개고생하면서 십수년을 보낸 끝에 지금에 이르렀다. 86년의 ‘희야’는 20년이 훌쩍지난 지금 백청강한테도 영감을 준다. 그의 음악은 시간을 돌파했다.
그리고 김태원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지난 10년간 폐인처럼 살았다던 박완규부터 연변에서 온 백청강, 무표정한 이태권... 점차 세력화 되고 있다. 심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 모이는 것이고, 그것은 영감이란 형태로 전이되고 있다. 자기만의 것이 있는 것이다.
 아스트로 피아졸라(1921-1992)
‘탱고’는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창가에서나 연주되던 퇴폐적인 음악에 지나지 않았지만, 아스트로 피아졸라가 탱고라는 음악의 수준을 클래식 못지 않도록 끌어올려 버렸다. 반도네온의 음색을 살리면서 현악기와 조화롭고, 강렬하고, 독창적이다. 그는 죽어 이 세계에서 사라졌지만 언젠가부터 클래식 콘서트에서도 탱고음악을 종종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예술가는 한 사람이 인류 전체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가 있다. 영감을 받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계속 영감이 RT되어 시간을 초월해 역사를 만들어간다. 트랜드는 공간을 지배하지만, 예술은 시간을 초월한다.
4. 영감을 주는 것이 예술이다
'사이프레스 힐'로부터 영감을 받은 강동철 처럼 영감을 받으면 누가 말려도 노력하게 되어있다. 아니 '노력' 이란 말은 거짓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있는 모습이 누군가에겐 노력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고, 혹은 시간이 지나서 성공하고 나니 그걸 딱히 정의할 단어가 없어 뭉뚱그려 '노력' 이라 할 수도 있다. 성공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 이라는 단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모든 사건에는 선-후가 있고, 인-과가 있고, 작용-반작용이 있다. '영감' 이라는 작용이 있기에, '노력' 이라는 반작용이 나온 것. 영감은 학문으로 치자면 공학이나 기술이 아닌 철학의 단계인 것이다. 분야가 다르더라도 최고의 포지션에 있는 사람끼리는 영감으로 통한다. 인류에게 영감을주는 모든 행위가 바로 예술이다.
예수도 예술가고, 석가도 예술가다. 카이사르, 다빈치, 아인슈타인, 김대중, 노무현도 예술가다. 예술은 페인팅이 아니라, 음표가 아니라 영감으로 시작하여 시간으로 완성되는 작품이다. 예술은 인류를 진보시킨다. 인류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예술이고, 세력화되어 RT되는 것이 '집단지성' 이다.
인류라는 커대한 배가 바다위에 항해를 한다. 영감을 주는 앞줄에 설 것인가? 노력하는 뒷줄에 설 것인가?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Oblivion(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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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마침 부처님 오신날이라서 하는 얘기긴 하지만, 불교하고는 별 관련이 없다. 연꽃, 불교를 상징하는 꽃인 연꽃은 참 누가 정했는지 몰라도 정말이지 종교나 철학을 상징하는 꽃으로 기가막히지 않은가? 기독교에서는 어째서 연꽃을 찜하지 못한건지...
연꽃은 더러운 연못에서도, 시궁창에서도 자라나 아름답게 피어난다. 더러움, 시궁창과는 정 반대의 아름다움이 공존한다. 이것이 구조론적이다. 수면 아래의 세상과 수면 밖의 세상이 다르다는 것. 이 안에 질, 입자, 힘, 운동, 량이 있다.
재혼한 어머니와 알콜 중독자 계부 사이에서 성장한 빌 클린턴이나, 여러차례 재혼한 어머니와 오랜기간 떨어져 성장한 버락 오바마, 부모로부터 버려져 입양된 스티브 잡스, 그리고 멀게는 베토벤까지... 그들의 성장기는 연못에서 꽃을 피우는 연꽃을 떠오르게 한다.
연꽃과 이들의 공통점은 암울한 환경을 예술, 정책, 아이디어 등의 희망적인 무언가로 변환시키는 스위치가 있다는 것이다. 상부구조와 하부구조가 있다. 높이 뛰기로 치자면 최고 속력으로 달려나가다가 맨 마지막에 왼발 > 오른발 > 왼발을 크게 뛰면서 마지막 그 왼발을 디딜때, 발목을 틀면서 점프하는 것과 같다. 속력의 수평 에너지를 어느 순간에 높이의 수직 에너지로 변환하여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물을 수가 있을 것이다. "시궁창에서 자라면 꽃을 피울 수 있는가?" 시궁창에는 시궁창의 에너지가 있는 법이다. 시궁창은 쥐새끼가 득실거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는 법. 그것은 시궁창 때문이 아니라 연꽃의 씨앗 때문이다. 시궁창이라도 연꽃의 씨앗에서 연꽃이 나온다. 씨앗 자체에 이미 연꽃의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별 문제 없이 산 사람은 정작 문제가 터지면 약하다. 문제가 있어야 문제해결능력이 생긴다. 새로운 해법이 나온다. 샘 못하는 서양인이 수학을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연꽃은 꽃을 피우는 것이 나름의 문제해결이었던 것이다. 꽃이 피어나면 악취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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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놈 목소리
보이스 피싱(voice phishing)은 범행 대상자에게 전화를 걸어 허위 사실을 이야기하고, 송금을 요구하거나 특정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사기 수법을 말한다. 말 그대로 피싱(fishing)은 '낚시'라는 뜻으로, 거짓정보를 이용해 피해자를 낚는다는 얘기다.
이 보이스 피싱의 유래가 있었으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해님 달님> 옛날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떡장사 엄마한테 접근해 "떡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다가 결국 엄마를 꿀떡 삼켜버린 호랭이가 오누이가 있는 집까지 찾아와 죽은 엄마의 목소리를 흉내내어 "엄마가 왔으니 이 문 좀 열어다오!" 라고 했고, 엄마 목소리에 속아 넘어간 오누이는 문을 열어줘 호랭이가 들어오자. 요리조리 도망치다가 결국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비극적인 결말의 이야기. 오누이를 놓친 호랭이는 그 후에 떡장사가 되었다나?
시간은 그로부터 수천년이 지나, 현대문명의 대표선수인 휴대전화를 활용한 보이스 피싱으로 발전하였다. 보이스 피싱에도 다양한 경우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것이 납치얘기다. 전화가 걸려와 "당신의 아들을 납치했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큰 위험은 없을 것이다.", "경찰에 신고하면 아이는 죽은 목숨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그 뒤로 엄마를 찾는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쩐지 그 목소리는 아들 목소리로 들린다. 영화 <그놈 목소리>도 보이스 피싱에 한 몫은 한 셈이 아닐까?
2. 보이스 피싱은 시간공격이다.
이런 보이스 피싱이 가능 한 것은 휴대전화가 있기 때문이다. 휴대전화는 1대 1의 소통을 위한 도구. 순간적으로 사람이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본질이다. 엄마는 아이가 납치되었다는 말만 들어도 일단 이성을 잃고, 이것이 가능하면 2차, 3차로 그것을 믿게 할만한 꺼리를 흘린다.
하나는 내 아이의 이름과 관련 정보를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고, 내 아이가 아니더라도, 엄마를 찾는 우는 목소리가 있으면 정말 내 아이의 목소리로 믿게 되어 점점 더 제대로 사고 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다. 꼭 납치가 아니더라도 이러한 패턴은 같다. 국세청을 사칭해, 세금을 돌려주겠다 거나, 은행·경찰·우체국·금감원 등을 사칭해 개인정보가 유출됐다고 거짓말하거나, 소재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보통 사람의 평정심을 흐뜨려놓는 것이 골자다.
결국 통화를 하는 짧은 시간에 아주 강한 메시지를 남겨서, 한 쪽으로만 의사결정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 시간공격을 하는 것이다. 다른 생각을 할 틈을 주질 않는다. 범죄자 입장에서도 시간을 길게 주면 끝이다. 어떤 경우가 발생하면 어떤식으로 우선순위를 두어 판단해야 할 지 메뉴얼이 없다면, 속어넘어가기 십상이다.
3. 범죄의 재구성
하지만 여기까지는 피해자의 이야기다. 관점을 바꿔서 범죄자 입장이라면 어떨까? 범죄자가 보이스피싱을 하는 진짜 이유는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전화할 사람과 주변에서 엄마를 찾는 아이목소리 한 사람이 필요할 뿐. 그리고 만약 실패하더라도 다른 범죄에 비해 검거당할 염려가 적기 때문이다.
자! 범죄자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범죄자 입장에서 납치를 하려면 뭐가 필요할까? 납치를 해서 돈을 뜯어내기까지의 필요충분 조건이 있어야 한다. 다 큰 25살 청년을 납치했다며 송금하라는 보이스피싱에 속는 기업 CEO가 있다. 다 큰 젊은이를 납치하는건 불가능하다. 왜냐? 몸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 성인 1인을 제압하려면, 포지션의 우위 원칙에 따라 무조건 2인이 필요한데, 그 2인 중 똥마려운 넘이 항상 있기 때문에 그 2인을 챙겨주기 위해 보조 1인이 더 필요하다. 피해자까지 도합 4인이 되는데, 4인이 움직이려면 반드시 자동차가 있어야 한다.
운전기사까지 4인이 팀을 이뤄야 일단 범행이 성립한다. 이걸로 납치는 할 수 있지만, 몸값을 받으려면 더 인원이 필요하다. 자동차로 기동하면 이들의 동선을 사전에 체크하기 위하여 자동차 1대가 더 필요하고, 피해자를 억류할 도시 외곽의 조용한 지하공간이 필요할 것이다. 각각 책임자 1인이 추가되어 도합 6인인데 팀장이 지휘해야 하므로 최소 7인이 되어야 한다.
7인 이나 되면 반드시 배신자가 생겨나는데, 이들을 입막음하려면 거액이 필요하게 된다. 대략 몸값이 50억 안 되면 동기부여에 실패하므로 프로젝트가 추진될 수가 없다. 50억 몸값을 낼 사람은 한국에 얼마나 있겠나? 물론 필리핀이나 멕시코나 브라질이면 100만원만 쥐어줘도 현장 뛰겠다는 사람 나오겠지만. 이래저래 타산이 안 맞질 않는다.
납치 상대가 어린이라고 해도 상황이 크게 바뀌지는 않는다. 납치 담당이 두 명에서 한 명으로 줄어들 수는 있어도, 차와 운전자와 감시자와 전체를 통제할 두목 그리고 감금할 공간이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다. 인원을 줄일수록 리스크는 올라간다. 만에 하나라도 피해자가 탈출했을 경우엔 검거율이 높아지기 때문.
실패했을 경우를 생각해보면, 리스크가 큰 만큼 뜯어낼 액수도 커야지만 동기부여가 된다. 액수가 적으면, 시작하기도 전에 의견 차이로 팀웍이 깨지고 만다. 최초에 '완벽한 계획' + '요구 금액'이 분명해야 납치단이 결성이 되는 것이다. 자기한테 얼마나 떨어질지 계산도 안하고 선뜻 쇠고랑 리스크를 감당할 바보는 없기 때문. 이건 당연한 거다. 그러니 전화가 걸려왔을 때, 요구하는 액수가 몇 백만원, 몇 천만원 단위라면, 보이스 피싱일 확률이 높다.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모든 경우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연역적 논리로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예외적인 경우가 있을 수 있더라도, 납치는 결국 팀플레이, 단독범행은 그 만큼 성공 확률이 낮아진다. 개인이 요구하는 돈의 크기와 집단이 요구하는 돈의 크기가 다르다는 것을 알면 막상 전화가 왔을 때, 하나의 판단기준이 된다.
납치 : 납치단 결성 > 정보수집 및 업무분담 > 납치 및 감금 > 전화 협박 > 수금 및 도주
보이스피싱 : 낚시단 결성 > 정보수집 > 정보확인 > 전화 협박 > 수금 및 도주
P.S. 만약에 보이스피싱 전화가 걸려온다면, 몇 시간 혹은 며칠 간격을 두고 확인전화가 올 확률이 높다. 범죄자가 가지고 있는 개인정보가 실제로 맞는지를 확인하는 거다. **엄마가 맞는지. 아들 이름이 ###은 아닌지 등을 확인.
Written by 김동렬, 함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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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콜럼버스의 달걀
다들 컬럼버스의 달걀 이야기는 한번 정도 들어 봤을 것이다. 1492년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그 콜럼버스 말이다. 존 글렌이 제작한 <콜럼버스 : 발견> 이란 영화에서는 콜럼버스가 대서양으로의 항해를 꺼리는 선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달걀을 이용하는 것으로 묘사 되었다.
달걀을 세워보겠다고 낑낑대는 가운데, 컬럼버스가 달걀을 송곳니로 톡 깨서 그 안을 쪽쪽 빨아먹고, 빈 달걀을 세워보였다나 뭐래나? 이 이야기가 진실일 리가 만무하지만, 어쨌거나 이야기는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뭐 그런 교훈으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 있으니, 인류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인 구라' 라고 할만하다.
하지만 정작 '달걀 이야기'가 처음으로 기록된 것은 1565년 이었다. 이탈리아인 지롤라모 벤조니(Girolamo Benzoni)는 <신세계의 역사> 라는 책에서 콜럼버스가 서인도제도에서 돌아오고 난 뒤 추기경이 주최한 환영연에서 달걀에 관한 일화가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벤조니는 "환영연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풍문을 들었기 때문에 자신의 책에 소개하는 것은 잘못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 했다.
그러나 콜럼버스 이전에도 달걀을 깨뜨려 세웠다는 일화는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 미술사가인 바자리(Giorgis Vasari)의 책 <이탈리아 르테상스 미술가 열전>에 따르면, 중세에 번영을 누리던 피렌체에서 1296년부터 대성당을 건축하기 시작했는데, 건축 책임자가 원형 지붕(dome)을 완성하기 전에 죽었고, 그 후 1세기 동안 지붕을 완성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써봤지만,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1407년 당국은 여러나라의 건축가들을 모아놓고 방법을 연구하도록 했는데, 브루넬레스코(Filoppo Brunellesco)는 이 돔을 완성할 수 있는 설계도와 모형까지 제작해 놓고 이 집회에 참가하여 자신의 돔을 완성할 수 있다고 얘기했지만, 자기가 고안한 건축법을 다른 건축가들이 도용할 것을 꺼려하여 공개하지는 않았다. 다른 건축가들은 건축 책임을 브루넬레스코에게 맡기는 것에 반대하면서 그가 제안한 방법을 면밀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그러자 브로넬레스코는 '미끄러운 대리석 위에 달걀을 세울 수 있는 사람에게 돔 건설을 맡기자' 고 제안했다고 한다.
2. '달걀 세우기' 에 관한 오해
뭐 그런 이야기가 있었댄다. 달걀을 세우는 것과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달걀 쪽 빨아먹고 껍데기를 세운건 좀 반칙이다. 그건 달걀을 세운 것이 아니라, 달걀 껍데기를 세운거니까... 달걀을 깨지 않고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손의 감각이 좋은 사람이나, 달걀 세우기를 엄청나게 훈련한 사람이라면 가능할 지도 모른다.
비보이의 헤드스핀을 보면, 머리 만을 땅에 댄체로 회전하는 모습은 상식 밖의 일이 아니던가?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도 신기한데, 연습하면 헤드스핀이 아니라 달걀 세우기도 가능할 것이다.
세우기 어려운 것은 머리나 달걀이 둥글기 때문에 서기 힘들다고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질은 헤드스핀이든 달걀 세우기든 개체의 무게중심을 찾는 것에 있다. 헤드스핀이라면, 머리를 땅에 대고 서야지 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돌아야지 설 수 있는 것이다. 자전거를 탈 때에도 마찬가지, 자전거가 서야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게 아니라, 나아가야지 설 수 있다.
달걀을 세우기가 쉽지 않은 것은 달걀의 무게중심이 가운데 있기 때문. 바닥보다 위에 있으니 중심을 잡기가 수월치 않다.
달걀이 있어도, 그 중에서 무게중심을 결정하는 것은 달걀의 노른자 부분이다. 노른자 부분이 흰자보다 밀도가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른자는 달걀의 껍질 속에서 위, 아래의 알끈으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언제나 가운데 위치 할 수 있다.
달걀을 세우려면? 간단하다. 달걀을 위 아래로 엄청나게 흔들어서 알끈을 끈어버리면, 노른자가 내려와 무게중심이 아래로 쏠리게 하면 된다. 이것은 오뚜기의 원리와 같다. 노른자가 아래쪽에 있으면 세우기가 훨씬 쉬워진다.
달궈진 후라이팬에 달걀을 깨 넣으면, 알끈의 존재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많은 달걀을 먹으면서도 알의 구조를 알지 못한다.
3. 구조를 보라
달걀은 애초에 닭의 알이 품기 좋게, 안전하게 그리고 굴러도 멀리 못가도록 만들어진 생명체의 디자인이다. 그런 달걀을 애써 세우라고 한다는 그 자체가 우문(愚問)이지만, 세상의 모든 문제에 사람들이 대처하는 방법이 이것과 크게 다르지가 않다. 달걀이 세워질 때까지 수십, 수백번 반복 한다. 구조를 볼 수 있어야 답이 나온다.
수백년 전 콜럼버스의 땡깡쟁이 선원들이건, 아니면 돔을 만드는 건축가이건, 그 당시엔 달걀이 귀해서 후라이를 못해먹어서 그 안에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몰랐다고 할텐가? 달걀의 구조를 보는 것은 알을 깨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라보는 방향에 달려있다.
달걀, 그것은 인간 입장에서는 음식물이지만, 닭의 입장에서는 소중한 생명체다. 음식이 아닌 생명체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당연히 그 중심에서 주변으로 생명이 확장되어 간다는 것을 알 수가 있고, 귀납이 아닌 연역으로 보아야 알 수 있다. 이 세상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고, 모든 자연이 그러한 것이다. 드러난 사실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까지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바보같은 달걀 세우기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와 다르지 않다.
구조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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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절의 하이라이트
다들 추석은 잘 쇠셨는지 모르겠다. 1년에 한 번이나 두 번정도 그간 못뵈었던 어른께 인사드리고, 형제 자매 여러분을 만나 즐겁게 뛰어노는 그 며칠 안되는 시간. 게다가 각종 과일, 전, 약과 등등... 음식 또한 넉넉한 명절. 어린시절 내가 기억하는 명절의 풍경은 이러했다.
요즘은 디지털 시대라서 예전처럼 윷놀이, 제기차기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은 명절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화투판이었다. 물론 모든 가정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또 소수의 문화라고 치부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술 한잔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슬슬 시동이 걸리는 그것. 특히 명절이면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문화가 되어버렸다.
물론 돈의 액수가 커져서 도박이 되어버리면 안되겠지만, 함께 즐기는 놀이라면 꼭 나쁘게 볼 것도 없지 않은가?
2. 화투의 유래
화투(花鬪)는 말 그대로 "꽃싸움" 이다. 다들 알고 있는 것처럼 화투는 조선시대 후기(19세기) 일본으로부터 들어왔고, 일설에 따르면 쓰시마섬[對馬島]의 상인들이 장사차 한국에 왕래하면서 퍼뜨린 것이라고 한다. 4장씩 12달을 상징하는 꽃으로 총 48장의 카드로 되어있다.
하지만 예전에 보았던 성인만화인 허영만의 <타짜>에서는 화투가 일본식 판화같은 그림이지만, 사실 카드의 구성과 게임의 룰은 포르투갈의 카드게임으로부터 건너온 것이라고 언급한 부분을 본거 같기도 하다. 말하자면 그림만 다를 뿐 트럼프와 사촌 벌 된다는 얘기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컴퓨터 사용법을 익히게 하려면, 고스톱 게임이 꽤나 유용하다. 뭐든 그렇지만, 친숙한 게임을 하다보면, 컴퓨터 그 자체에 점차 익숙해지고, 그러다보면 인터넷을 통한 여러 정보와도 접할 기회가 많아진다. 나 역시도 그런 방법으로 부모님께 컴퓨터와 인터넷을 알려드렸고, 인터넷의 많은 정보를 접하면서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의 검은 그늘에서 탈출하셨다.
3. 고스톱의 밸런스
어머님께서 즐기는 것을 보며 어깨너머로 고스톱의 룰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어느날 어머니께서 게임중에 중요한 전화가 오는 바람에 얼결에 게임을 내가 이어서 해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대략의 룰은 알고 있고, 컴퓨터 게임에서는 피의 숫자도 이미 계산되어서 나오니까 나같은 초짜가 하기에도 크게 무리가 없었다.
그렇게 처음해본 고스톱 게임에서 어쩌다보니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것은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채팅으로 욕을 먹었던 것이다. 처음엔 그 사람 자체가 성격이 나빠서 그런줄 알았는데, 점차 그런 경우가 계속되니까 뭔가 내가 욕을 먹는 일정한 패턴이 있는 것만 같았다.
이 사람들이 욕하는 내용이란, "왜 그 상황에서 그걸 먹냐?", "왜 그 상황에서 그걸 내주냐?" 머 이런 정도인데, 처음에 난 내가 뭘 먹든, 뭘 내든 왜 옆에서 욕을 할까? 생각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상황은 이랬다. 나는 잘 못해서 꼴찌를 달리고 있었고, 늘 욕을 하는 사람은 2위 하는 사람이었다. 1위가 2고, 3고 할 적에, 내가 먹을만한 패를 내주질 않아 도와주지 않는다는 불평이었던 것이다. "언제 도와달라고 했나?" 싶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고스톱이라는 게임 자체가 1위에 대항해서 2위와 3위가 한 패가 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있었다.
(뭔가 일반적이고, 아름다운 언어로 고스톱일랑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설명하고 싶지만, 어느정도 한계를 느낀다.)
담요 위의 룰은 이렇다. 어느 한 사람이 독주를 할 때에 2고, 3고까지 가면서 누군가에게 대박이, 또 누군가에게 쪽박이 나오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이런 상황이 되면 꼴찌가 게임의 축의 역할을 맞게 된다. 2위가 먹은 패를 읽고, 그에게 필요한 아이템을 슬쩍 내주는 방법으로 1위의 독주를 견제하고, 그렇게 2위가 역전하면 전체적인 밸런스가 맞아서 서로서로 재미를 느끼면서도 큰 손해는 없도록 하는 것이다.
놀이로 고스톱을 하면 밸런스가 맞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고, 놀음으로 고스톱을 하면 밸런스를 깨서 누구 하나가 2고!, 3고!... 5고! 까지 가서 대박을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니까 애초에 놀이와 놀음은 그 목적 자체가 다른 것이다. 밸런스가 맞으면 함께 즐겁고, 밸런스가 깨지면 한 놈만 즐겁다. 고스톱은 밸런스 감각의 게임이다.
4. 도박의 꽃, 정마담
담요 위의 룰은 밸런스를 어떻게 맞추느냐가 주가 된다. 하지만 노름에서 타짜의 밑장빼기에 전 재산이 거덜났다면?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할까? 머... 노름판에서 돈 잃으면 하소연 할 곳도 없는게 사실이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담요 위의 게임 이전에 그 게임 자체가 존재하느냐의 문제. 게임이 존재한다면 주최자가 있을 것이고, 게임의 여부를 떠나서 사실상 가장 중요한 사람이 주최자 라는 것이다.
영화 <타짜>에서 정마담의 역할 처럼 말이다. 무엇이 '맞다/틀리다' 의 문제가 아니라 그 상부구조에는 게임판이 '있다/없다' 의 문제가 존재한다. 정마담은 게임을 만드는 여자고, 또한 이대 나온 여자다.
하우스장 > 총책 > 타짜 > 바람잡이 > 호구
질 : 하우스장과 큰손. 장소를 제공해서 사용료를 뜯는 하우스장이나 밑전을 대는 큰손이 제일 큰돈을 가져감. 무조건 딴다.
입자 : 총책. 실무 책임자로서 한 프로젝트에 사용할 기술선정, 작전구상, 타짜와 호구수배를 전담. 두번째로 큰 몫 챙김.
힘 : 타짜. 실제로 기술을 사용하는 타짜는 밑전과 바람잡이를 이용해서 직접 호구를 울궈먹는 실무기술자.
운동 : 바람잡이. 짜여진 각본대로 게임에서 이기기도 하고 쪽박을 차기도 하면서 호구를 수렁에 밀어넣는 단역배우 역할.
량 : 호구. 이기나 지나 결국은 다 털리고, 호구가 다 털려야 판이 끝난다.
하우스에서 판이 벌어지면 하우스 주인이 주최자고, 초상집에서 판이 벌어지면, 초상집이
주최자고, 피망 고스톱이면 피망이 주최자다. 주최자는 누가 이기든, 누가 인생을 말아먹든 어쨌거나 돈을 번다. 주최자가 판을 열면, 총책이
설계하고, 타짜가 기술을 부리고, 바람잡이가 돈을 따고, 호구는 거덜난다.
5. 호구가 호구인 이유
노름판에서 그런 얘기가 있다지. "시작하고 10분 안에 호구가 누구인지 모르면 자신이 호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10분의 시간이 무엇을 생각하는 시간이냐 하는 것이다.
호구가 호구인 이유는 담요위에 화투장에 눈이 쏠려, 담요 밖의 사람들과 스스로의 포지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돈을 따는가? 게임에서 이겼나? 의 문제가 아니라 마주하는 사람이 누구이며, 그 공간과 시간이 자기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고수는 이기는 게임만 하고, 하수는 지는 게임만 한다. 구조를 알면 지는 게임엔 끼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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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을 했으면 성과를 내라
이런 무시무시한 제목의 책이 있나보다. 샘앤파커스 라는 출판사에서 출간된 이 책을 돈주고 사서 제대로 본 것은 아니지만, 서점에서 얼추 훑어보니 회사에서 제 몫을 해내기 위한 이런저런 처세의 글이 주된 내용이다. 말하자면 상사에게 인정받는 방법.
이 책이 얼마나 팔렸는 지는 모르지만, 지하철에서 이 책의 광고를 보았을 때, 정말이지 그 제목의 강렬한 지랄성 때문에 위장이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다그치며 하는 그 말.
"일을 했으면 성과를 내라!!"
댁의 위장은 안녕하십니까?
2. 일을 하면 성과가 나오나?
이런 종류의 자기계발서는 시중에 널리고 널렸다. 이것도 그런 것들 중에 하나일 뿐이다. '상사에게 혼나는 것을 진심으로 즐거워하라', '상사는 사실 피자를 먹고 싶어 한다' 등등... 결국 상사에게 적당한 아부와 충성스러운 일처리로 사랑받겠다는 이야기. 정말로 이런류의 책을 읽어서 자기계발이 될런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이 책을 비난하려고 글을 쓰는 것은 아니고, 유독 그 제목이 눈에 들어와서 이것을 명제로 한마디 하련다. 제목이 '일을 했으면, 성과를 내라' 이다. 전형적인 인과율인데, '일을 하다' 가 원인이고, '성과를 내다' 가 결과 인 셈이다. 그런데 과연 일을 하면 성과가 나오는가?
상사가 만약 당신에게 이 말을 했다면, 아마도 이런 뜻일 것이다. 일을 했으면 당연히 성과가 나오는데, 너는 왜 성과가 안나오는 거야? 하지만 일을 한다고 해서 성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일을 시킨 상사의 기대치를 만족시킬 수는 있지만, 상사가 내가 한 일에 대해서 만족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회사의 성과와 꼭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회사생활을 하다보면 착각하기 쉬운 부분이 바로 이런 것이다. 개인의 능력과 회사의 수익이 일치하지 않는다. 만약 회사의 수익이 급감한다고 해서 그것을 사원의 능력 탓을 한다면 그가 바로 가장 능력없는 상사인 것이다. 세상 일이란 것이 그리 계산대로 되지는 않는다. "왜 난 열심히 하는데 회사는 망하지?" 사업의 성격 자체가 그렇다. 개인의 능력보다는 집단의 밸런스, 내부의 시스템 보다는 외부의 상황에 따라서 흥망이 결정된다.
회사에서 당신한테 월급을 주는 이유는 당신이 특별히 일을 잘해서도 아니고, 당신이 그 세력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착각하지 마시라. 토익 900점 맞고 입사해서 영어 제대로 시키는 직장이 몇이나 있던가?
3. 일이란 무엇인가?
일을 했으면 성과를 내라고 했는데, 그 말 이전에 '일' 이란 무엇인지 정의를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과연 일이라는 것이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인가? 구조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시장 > 기획 > 관리 > 생산 > 소비 의 1사이클이 있다. 이중에 시장은 외부 요인이고, 기획, 관리, 생산이 내부 요인이고, 소비(매출)는 그 결과물이다. 잘 나가는 회사는 이 과정이 선순환 하는 것이고, 망하는 회사는 악순환 하는 것. 이것은 회사의 직급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즉, 시장(사장) > 기획(이사급) > 관리(부장, 과장급) > 생산(사원) > 소비(결과) 인 것이다.
사장의 일은 회사 외부에서 내부로 에너지를 끌어오는 것이 일이다. 그것이 일꺼리를 가져오든, 투자를 받아오든, 인재를 데려오든... 사장이 슬슬 놀면서도 외부로부터 일꺼리와 투자를 이끌어내면 제 몫을 다 하는 것이다. 반면에 사장은 엄청나게 뛰어다니는데, 사원들은 할 일이 없어서 놀고 있으면 이것은 최악이다.
외부에서부터의 에너지가 있고, 내부의 밸런스가 있다. 외부의 에너지라면 회사 밖의 시장상황이고, 내부의 밸런스는 의사결정구조다. 사장이 의사결정을 상황에 맞게 신속하고 정확하게 하는가? 기획의 컨셉대로 일이 착착 진행이 되는가? 하는 것은 명령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는 가? 하는 것과 같다.
말하자면, 관리자가 원하는 만큼 일을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면, 관리자가 명령을 잘못한 것이고, 관리자가 명령을 제대로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면, 기획자가 기획을 제대로 못한 것이고, 기획은 제대로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면 사장이 결정을 잘 못 한 것이다. 하나의 성과를 내는 것은 여러가지 필요충분조건이 맞았을 때의 가능한 것이다.
4. 회사의 구조
나름 대기업에서 중역으로 오래 근무하다가 은퇴 후에 자기사업을 시작하는 사장님들이 술마시면서 잘 하는 얘기가 있다. "나는 전략이 좋으니까 잘 될거야", "컨텐츠가 좋으니까...", "인맥이 좋으니까..." 각자마다 장점이 있겠지만, 대체로 망하는 케이스는 대부분 그거 믿다가 망한다.
철학 > 인프라 > 시스템 > 컨텐츠 > 전략
회사가 진화되는 구조는 이렇다. 그런데 철학은 눈에 보이질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철학이란 하나의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다. 기준점을 세워야 주변사람에서 인프라가 생긴다.
애플이 최초의 컴퓨터를 만들었을 때, 그 프로그래밍 부터해서 모든 작업은 워즈니악에 의해서 가능했다. 그래서 혹자는 스티브 잡스는 딱히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워즈니악이 전자기판을 낳았다면,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키웠다. 그가 사람들을 향하여 "해적이 되자!" 라고 외칠 적에 이미 그는 큰 깃발을 꽂은 것이다.
만화 슬램덩크와 같다. 고릴라 채치수가 버티고 있으니, 키작고 발빠른 송태섭이 달리고, 불꽃남자 정대만이 3점슛을 던지고, 서태웅이 내외각을 누비고, 천재 강백호가 리바운드 한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철학의 깃발을 세우면, 인프라가 있는 사람, 시스템 관리자, 컨텐츠 생산자, 전략마케터가 각자 제 몫을 하는 것이다. "우리팀엔 득점할 녀석들이 많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도 좋다." 이래야 강팀이다. 기업의 초반은 깃발의 신뢰성에서 승부가 갈린다.
5. 스스로 깃발을 세워라
사원이 '열심히 일한다' 라는 표현 자체도 아주 모호하지만, 구글의 사원이 한국 기업의 사원보다 근무시간이 길지 않다. 사원 개인의 능력이 애플의 사원보다 아주 크게 뒤쳐지지도 않을 것이다. 한국의 기업에서 근무하는 사원들이 미국의 기업에서 근무하는 사원보다 더 열심히 일하면 일했지,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인가? 애초에 사원 개인의 능력과 근면에서 문제가 아니라, 상부구조에서의 문제. 우리나라엔 애플보다 우수한 사원은 얼마든지 있지만, 스티브 잡스만큼 하는 사장은 단 한 명이 없다. 이것이 본질이다. 그런 말이 있다. 일본은 하사관이 강하고, 독일은 장교가 강하고, 미국은 장군이 강하다. 장군이 강해야 진짜다. 훌륭한 장군이 강한 군대를 만든다.
일을 했으면 성과를 내야 한다. 하지만 그 일의 90%는 말단사원이 아닌 사장의 일이다. 의사결정구조 이미 거기에서 사업의 흥망이 결정이 된다. 말단사원이 보고서에 오타가 났거나, 기획서 형식이 바뀌었다거나 정도로 될 일이 안되고, 안 될 일이 되지는 않는다. 상사가 꾸중한다고 자책하지 마시고, 아부하지 마시고, 당당하게 할 일은 하고, 할 말은 하시라.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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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성인 바이러스, IQ 187의 사나이
벌써 꽤 지난 일이지만, 어느 케이블 방송사의 쇼 프로그램인 <화성인 바이러스>에서 IQ 187의 천재 박창현 씨가 출연한 적이 있다. 이 사람은 멘사로부터 인증은 받은 것은 물론이고, 상위 0.4%에 속하는 우수한 지능의 소유자라고 'Y' 클리닉 노규식 원장이 인터뷰에서 밝혔다.
개인적인 이유로 대학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뛰어난 두뇌를 이용하여 아이들 과외와 내기바둑으로 생활비를 벌었다고 한다. 이날의 화성인 바이러스(43회)는 고정 출연자 김성주, 이경규, 김구라 씨로부터 천재임을 증명하기 위한 여러가지 테스트를 받은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기억력 테스트, 뒤섞인 트럼프 카드의 순서를 외워기, '님게임' 등을 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님게임(nim game)' 이라는 이름의 게임이 기억에 오래 남았는데, 이것은 각각 7개, 5개, 3개의 돌을 준비한 후 색깔에 상관없이 서로 번갈아가며 원하는 만큼 돌을 빼내어, 맨 마지막에 돌은 가져가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다. (단, 붙어있는 돌일 경우에만 여러 개를 빼낼 수 있다.)
2. 모든 경우의 수
님게임(nim game)의 유래는 옛날 서양의 선술집에서는 테이블 위에 성냥 상자를 놓아 두었는데 선술집에 오는 사람들이 성냥개비를 이용해 여러가지 게임을 만들어서 내기를 했고, 그 중 하나가 님게임(nim game)이라고 한다. 이후 이 게임은 수학의 재형성이라는 한 분야로 적용되었고, 컴퓨터의 전략게임에서도 중요한 한 장르가 되었다. 라고 검색해보니 나온네.
이 IQ 천재는 님게임을 통하여 김성주 씨, 이경규 씨를 쉽게 이겼다. 뭐 당연한 결과겠지만... 하지만 나는 이 IQ 천재 화성인이 이 게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파악하고 있고, 어떤 경우라도 대처법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만약 일반인이라도 경우의 수를 생각할 충분한 시간만 있다면 그를 이길 수 있었을까? 이경규 씨가 말했드시 100번 붙으면 100번 지게 돼 있는 게임이다.
진실을 말하자면, 그가 모든 경우의 수를 머릿속으로 계산했기 때문에 이긴 것이 아니라, 이 게임의 법칙을 알기 때문에 이긴 것이다. 그가 거짓을 말했다기 보다는 그 자신도 많은 경험으로 자연스럽게 터득한 게임의 법칙을 스스로 계산한다고 믿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모든 경우의 수를 즉각적으로 계산한다고 말하는 쪽이 방송을 기획하는 쪽에서는 그를 일반인과 엄청난 격차를 만들게 하는 편이 시청률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물론 그는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과 님게임과는 별 상관이 없다. 원리를 알면 IQ 97의 이경규 씨도 이길 수 있다. 게다가 실제로 경우의 수라는 것이 그리 많지도 않다. 원리를 아는 사람끼리 이 게임을 하면 먼저하는 사람이 무조건 유리하다.
3. 게임의 법칙
말하자면, 나도 학생시절에 이 게임을 꽤나 했었고, 단 한번 져 본 적이 없다. 그 이유는 삼촌으로부터 이 게임의 원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삼촌은 이 비밀을 풀기 위해서 일주일 동안 머리 싸메고 고민하셨다고 했다. 그러니 나로서는 엄청난 비급을 얻은 셈.
원리는 간단하다. 세 그룹의 돌을 순서에 상관없이 연속되는 수로 맞춰주는 사람이 무조건 이긴다. (1, 2, 3 처럼) 그 다음은 한 그룹의 돌이 사라지면, 두 그룹을 서로 같은 수로 맞춰주면 된다. 사실 이경규 씨는 두 번이나 그를 이길 기회가 있었다. 이경규 씨가 돌을 가져갔을 때, 천재 화성인이 순간 움찔 했던 것은 그 사실을 알았기 때문. 내 눈에는 보이는데, 이경규 씨의 눈에는 안보이는 것이 있다.
그런데 어째서 필연적으로 이런 경과가 나올 수 밖에 없냐하면, 이 게임 자체가 시간에 따라서 돌이 줄어들게끔 되어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비가역인 것처럼, 이 게임 또한 돌이 줄어들지, 둘의 수가 유지되거나 더 많아질 수는 없다. 그래서 7개, 5개, 3개의 돌이 아니라 100개 건, 1000개 건 상관이 없다.
돌의 수는 계속 줄어들게 되어있고, 그렇게 줄어들다보면 언젠가는 연속되는 수를 맞출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게임이 아니라 각 그룹의 수가 지나가는 길목(연속되는 수)을 지키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고수는 큰 줄기를 볼 뿐, 하나하나 계산을 하지 않는다.
1. 질 - 세 그룹의 돌이 있다.
2. 입자 - 게임이 진행 될 수록 돌은 줄어든다.
3. 힘 - 연속되는 수가 게임의 목이다. (여기에서 사실상 게임끝)
4. 운동 - 상대가 가져가는 돌에 수를 맞추어 연속되는 수, 혹은 같은 수를 맞춘다.
5. 량 - 이긴다.
이 원리를 IQ 187의 천재도 알고 있었으리라. 그는 이기는 판을 만들어 놓고 게임을 시작한 것이다.
4. 타짜 앞에 호구?
사실 약간 룰의 다르긴 하지만 이 게임은 드라마 '타짜'에서도 나온 적이 있다. 7개, 5개, 3개로 시작하지 않고, 다수의 돌로 시작한다는 것과 맨 마지막 돌을 가져가는 사람이 지는게 아니라, 이긴다는 점이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목을 잡으면 맨 마지막 돌을 자기가 갖건, 상대가 갖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원리를 모른다면 100전 100패 인 것이다. 님게임(nim game)을 예로 들었지만,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구조를 볼 수 있어야 고수가 된다는 것이다.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려고 낑낑 대는 것은 하수다. 하수는 포식자의 먹이감이 될 뿐이다.
노름판도 다르지 않다. 각자 손모가지 걸고 섯다 한판 한다면? 그냥 손목이 댕강 잘리는 것이다. 운칠기삼이라고? 웃기는 소리다. 하우스에 가면, 하우스의 구조 안에 있는 것이다. 게임은 나중 얘기다. 전체 판이 누구에 의하여 움직이는가? 하우스 주인은 누가 이겨도 돈을 벌고, 져도 돈을 번다. 진다면 타짜의 손기술에 지는 게 아니라, 그들의 세력에 지는 것이다. (영화 '타짜'에서는 정마담이 세력의 최고 포지션에 있다.)
주식투자도 마찬가지. 어쩌다 말도 안되는 대박이나 쪽박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이라는 동물은 뭔가 창조하고 생산하게 되어있다. 거기에 가치가 형성이 되는 것이 주식이다. 필연적으로 시간이 흐르면 경제를 성장하게 되어있다. 님게임에서 게임이 진행 될 수 록 바둑알이 줄어드는 것처럼. 시간에 따른 필연적 흐름이 존재한다.
인프라와 컨텐츠, 노동력이 모여 안정된 시스템을 갖춘 기업에 투자하면 돈은 벌게 되어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다리지 못하고, 중간에 다른 방법으로 전환하거나 손절매를 하기 일수다. 눈에 보이는 정보의 량에 현혹된다. 그리하여 "10년전 그 주식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더라면..." 이라는 노래 들어본 적 없던가?
워런버핏이 단 한번 투자할 때, 개미 투자자들은 수 십, 수 백 번 사고 팔고를 반복한다. 돈은 워런버핏이 번다. 투자로 돈을 잃는 사람들은 정보의 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보의 량이 너무 많아서 돈을 잃는다. 본질은 인간은 창조하고, 창조하면 가치가 생기고, 때문에 시간이 흐를 수록 경제를 성장한다는 것이다.
5. 열심히 살지 말자.
말이 좀 이상하지만, 구조를 본다는 것은 고수가 되자는 것이고, 고수가 되자는 것은 열심히 살지 말자는 것이다. 물론 그 '열심히'의 의미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쉽게 말해서 노가다 하지 말자는 거다. 정보의 량에 휘둘리지 말고, 모든 경우의 수를 낑낑대며 계산하지 말고, 싫어하는 일에 '노력' 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학대하지 말자는 거다.
만약 김연아가 하루 8시간 연습했으면, 그녀가 8시간만큼 노력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처음부터 그녀에게는 시간따윈 상관없는 것이다. 연습 그 과정에서 스스로 만족할 뿐이고, 연습과 대회의 차이가 없다. 스스로가 무엇을 창조하는가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쥐어 패가면서 공부시켜, 대학가서, 토익 + 어학연수 + 공무원 시험에, 겨우 말단 사원되어서, 결혼하고 애 낳고, 여기저기 인맥관리 해야하고, 그렇게 세월은 가고, 늙어서는 갑자기 할 일이 없고... 그리 살다 가는 것. 무쟈게 열심히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 의하여 결정되어 버리는 삶. 이거 하지 말자. 조금씩 평생 쌓다보면 부자가 된다는 거짓에서 깨어나야 한다.
봄 : 낳음 > 여름 : 키움 > 가을 : 걷움 > 겨울 : 비움
구조를 모르면 100전 100패다. 자연의 구조에서 배워야 한다. 자연이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량이 아니라 질이다. 귀납이 아니라 연역이다. 하수는 쌓아서 올리고, 고수는 낳아서 키운다. 하수는 싸워서 이기려 하고, 고수는 이긴 다음에 싸운다. 이기는 씨앗(모델)을 낳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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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준점
중학교 시절 도덕시간 때의 일이다. 선생님께서 뜬금없이 칠판에 삼각형을 하나 그리시고 말씀하셨다.
"자! 여기 삼각형이 있는데, 삼각형은 실제로 존재할까? 삼각형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을 들어보자!"
그렇게 해서 상당수 학생들은 '삼각형이 존재한다'에 손을 들었고, 열댓명 정도의 학생들은 '삼각형이 존재하지 않는다' 에 손을 들었다. 나도 '삼각형이 존재하지 않는다' 에 손을 들었는데, 상황이 좀 묘했다. 아이들이 그럴 수 밖에 없던 이유는 직감적으로 선생님이 원하는 답은 "삼각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것은 알겠는데, 딱히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할만한 말이 없기 때문에 절충해서 손을 든다는 것이 그러한 결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전교에서 싸움을 가장 잘하는 녀석이 대표로 삼각형이 현실에 존재하는 이유를 말했다.
"삼각형이 눈에 보이잖아요! 눈에 보이니까 존재하는 거죠."
공교롭게도 '삼각형이 존재하지 않는다'에 대해서는 내가 말을 하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완전하지 않을 수 있잖아요. 지구는 둥그니까... 우리눈에는 평평하게 보이는 것도 사실은 약간씩 틀어져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지금도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말로 인해서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꽤 큰 칭찬과 급우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현실에 존재하기 위한 그 기준점은 정확한가? 만약 우주에 어느 운석 위에 삼각형을 그리면 그것은 완전할까? 질문 자체가 우문이었지만, 그럴듯한 답을 해버리고 말았다.
2. 生 의 모델
어느날 나는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고, 시간이 갈수록 나이를 먹고, 늙어서 언젠가는 죽게된다는 사실도 알게되었다. 삶은 영원히 지속될 수가 없다. 하지만 죽음은 형상이 없는 공포 그 자체였고, 죽음이 싫기 때문에 삶은 좋은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흔히 키우던 개나 병아리가 죽었을 때 경험하는 그런 것처럼 말이다.
죽는건 싫었지만, 그것이 어쩔 수 없다면, 그 살아있는 한정된 시간동안 무엇을 할까? 삶은 어떻게 생겼을까? 삶의 모델은 무엇일까? 엉뚱하게도 난 삶을 그림으로 형상화하려고 무척 애를 썼다.
초등학교 시절엔 '인생이란 반 아이들과 함께 레이싱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험을 볼 때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 각자 노력하는 것처럼, 살아가는 동안 각자의 레일에서 최대한 힘을 내어 앞을 향해 뛰어가는 것이다. 같은시간 더 빨리 더 멀리까지 도달한 사람이 천국에 가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삶은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데에는 오래걸리지 않았다. 그때까지만해도 난 삶은 공평하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반아이들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다고비 그들이 언제까지나 이렇게 한정된 공간에서 복작거리며 경쟁할거라 생각을 했나보다.
각자의 생은 그 시간도 다르고, 공간도 다르다. 그리고 공평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가끔은 정말 사악한 녀석도 있었는데, 그런녀석들은 늘 반칙과 위선으로 이익을 얻고, 거들먹거리고도 아무런 문제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아이들의 세계 뿐만이 아니었다. 어른들의 세계 역시 그랬고, 우리나라의 역사 또한 그러했다. 세상은 납들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다. 더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인생은 자기 맘처럼 제어가 되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내가 생각한 인생의 모델을 파기하였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한 두번째 삶의 모델은 각자 자기 삶의 레일을 없애고, 대신에 아주아주 커다란 선풍기를 집어넣었다. 이 선풍기는 '신' 이다. 만약에 신이 있다면 이런 선풍기와 같지 않을까? 보통 열씸히 살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예정에 없이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면 방향이 어긋나거나 뒤로 밀릴 수도 있다. 그런 바람을 만나지 않는 것은 순전히 운이라고 생각했다.
3. 삶은 항해한다.
고등학교 시절에서야 각각의 인생이 그 시작점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일용직 노동자의 아이와 거대기업 총수의 아이의 삶이 같을 수는 없다. 우리는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지만 교실을 나서면 완전히 다른 각자의 세계가 존재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내 인생에 개입하는 것이 꼭 '신'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각자의 삶이 나아가려 할 때, 삶은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그래서 내 상상속의 인생의 모델, 즉 '평지에서의 레이싱'은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바다 위의 항해'가 되어버렸다. 인간을 삶을 시작할 때부터 각자의 배를 타고 바다로 나선다. 어떤사람은 뗀목을 타고, 또 어떤사람은 타이타닉처럼 큰 여객선를 타고 시작하기도 한다. 뗀목이 가는 옆에 큰 여객선이 지나가면, 큰 배가 일으킨 파도에 작은배는 흔들리고, 뒤집힐 수도 있다.
때때로 태풍을 만난다. 태풍을 만나서 알 수 없는 곳을 밀려가고, 난파되고, 또 때로는 그 태풍에 의하여 목적지에 더 빠르게 도착할 수도 있다. "그래! 삶은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의 공간위에 각자의 배를 타고, 항해를 하는 것이다. 태풍은 신이고, 신 뿐만아니라 누군가의 삶이 때때로 나의 궤도에 영향을 준다." 이렇게 정리하니까 얼추 그럴듯해보인다.
그것은 '나비효과'와 같은 것이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파도에 휩쓸려, 궤도가 틀어지고, 그것은 또 다른 배에 영향을 주고, 또 다른 배에 영향을 주고를 반복하다가 결국 예상치 못한 엉뚱하고도 거대한 결론에 닿게 되기도 한다. 때문에 나의 인생은 예측할 수 없다.
자기가 원하고 목표한 삶 그대로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고, 목표한 삶에 닿아도 그것이 목표했던 그 때의 마음과 또 달라져있다. 때문에 삶을 항해하는 가운데에 최선은 내 배가 어디있는지를 분명히 알고, 타인으로부터, 세력으로부터, 신으로부터 흐트러진 내 삶의 궤도를 끊임없이 수정하는 수 밖에...
4. 삶은 둥굴다.
그래서 내가 완성한 삶은 모델이란 공처럼 둥글다. 지구가 구의 형상을 하고 있으니까, 삶 또한 그러하다. 그러니 지구에 N극과 S극 이 있는 것 처럼, 삶에도 그 시작점과 끝 점이 있는 것이다. 동그란 삶에 어느 한 점에서 시작되어, 우리는 그 표면의 바다를 각자의 궤도로 항해하고 있다. 어느 시점에서는 뗀목이 여객선이 되기도 하고, 여객선이 침몰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삶의 공통의 시작점이 존재한다면, 공통의 끝 점 또한 존재할 것이다. 인생의 끝은 무엇일까? 그저 어딘가에서 늙어 죽는 것? 아니면 아주 부자가 되는 것? 인류 공통의 절대성이 있는 그 곳. 어디인가? 각자의 상황과 그 삶의 궤적은 다르겠지만, '낳음' 으로서 삶은 그 끝에 닿는다. 인간의 생은 누군가의 창조로 시작되어, 자신의 창조로 끝을 맺는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내놓고도 굴복하지 않은 생각 그리고 생각의 결실로 인류는 진보한다. 갈릴레오가 말했던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그 말은 누가 들은건지 모르지만, 그것이 사실이건 사실이 아니건, 제 삶과 같은 크기의 가치를 낳아낸다는 것이 중요하다. 베토벤은 낭만주의를 낳았고, 마네는 인상파를 낳았고, 링컨은 미국의 국가구조와 민주주의를 낳았고,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낳았다. 그리고 인류는 다시한번 진보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낳음'의 단계, 인생의 종착점까지 가지 못하고 먼 바다를 헤메다 생을 마감한다. 누구도 저 넘어에 신세계가 있다고, 저기에 우리의 종착점이 있다고 말하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기껏 천국이냐 지옥이냐의 갈림길에서 서 있을 뿐, 그러는 동안 끊임없이 방황할 뿐이다. 누구도 인생의 모델을 제시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5. 두 개의 동그라미
이로서 하나의 세계가 완성되었다. 하지만 그 삶 이전의 세계가 또한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삶의 동그라미 이전에 또하나의 동그라미가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 내 부모는?, 인류는? 그렇게 물음의 끝에는 신이 있었다. 신은 만물의 씨앗이며 에너지인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신' 의 존재는 종교에서 말하는 신과는 다른의미인 것이다. 단지 생명의 씨앗으로서의 존재. 태초의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어 수만년의 시간이 흐르고 인간의 개체수는 계속하여 증가했을 테고, 그 가운데 인류는 곳곳으로 흩어져 환경에 적응하고, 무리를 지어 이동하고, 전쟁하고, 뒤섞이고, 다시 흩어졌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운명의 사슬로 먼 조상의 짝이 만나 자손을 낳고, 또 짝을 만나고, 낳고, 또 짝을 만나고 낳고 하여 어미와 아비가 존재하는 것이고, 그들이 짝이 되어 나의 삶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하나의 사이클이다.
신(질) > 인류(입자) > 나(힘) > 항해(운동) > 낳음(량)
신에서 시작하여 인류의 입자로 흩어지고, 다시 세월과 운명에 의하여 나라는 존재가 탄생하고, 나는 먼 바다를 항해하고, '낳음'으로 인류를 한단계 진보시킨다. '깨달음'이란 '깨다' + '알다' 가 합쳐진 말인데, 한마디로 깨우친 것을 아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는 꽤나 근사한 문구가 하나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하여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그렇다. 깨달음은 하나의 세계를 깨는 동시에 또 하나의 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삶은 또 다시 '낳음'으로서 신과 소통한다. 이러한 싸이클의 반복이 인류의 역사인 것이다. 우리는 모두 과거의 세계를 깨고, 새로운 세계의 접점에서 탄생하였다. 그리고 이로서 명료해졌다. 인간은 자손을 낳음으로서 개체의 량을 증가시키고, 문명을 낳음으로서 삶의 질을 진보시킨다.
중학교시절 도덕선생님이 '삼각형의 존재'에 관하여 물어왔던 것처럼,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는, 현상 이전의 기준점을 찾아야 한다. 삶은 길고, 또 그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먼 항해를 시작할 때에는 그 기준점이 될만한 것이 있어야 한다. 삶의 지도가 있어야 한다. 지도가 있고, 어느 곳으로 방향타를 잡을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그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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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제란 무엇인가?
싯타르타 부처는 "삶은 고통의 바다" 라고 했단다. 누구나 고통스러운 삶은 사는 것은 아닐테지만, 어쨌거나 그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표현을 고통이라고 하긴 했지만, 사실 삶은 문제의 연속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고통은 문제에서 나온다. 문제를 해결하면 고통은 사라진다. 예컨대, 무거운 짐을 옮기는데에는 많은 인력이 필요하고, 위험하고, 졸 고통스럽지만, 바퀴를 사용하면 그 힘은 최대 1/1,000로 줄어들고, 위험은 감소하고, 편리하다.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문제의 연속이다. 내가 태어나는 것은 내 부모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문제 이기도 하다. 또한 성장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생기고, 원하든 원치 않든 어떠한 공동체에 속하므로서 문제에 부딛히기도 한다.
옆집 순이한테 쳐 맞은 것도 문제요, 학교에서 왕따 당하는 것도 문제요, 등록금이 치솟는 것도 문제요, 취직이 안되는 것도 문제요, 장가 못가는 것도 문제요, 직장에서 짤리는 것도 문제요, 쥐박이 삽질하는 것도 문제다. 삶은 문제 덩어리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진보이고, 그렇게 문제를 해결해 온 것이 역사인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 기준점을 설정하는 것부터 문제해결의 시작이다.
2. 자전거를 타다
자전거를 탄다고 가정하자. 자전거를 타고 갈 때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넘어졌을 경우다. 자전거가 넘어지면 다치거나, 짐이 깨지고 손상될 수 있다. 그래서 자전거를 탈 때에는 넘어지지 않도록 잘 타야 한다.
모든 문제는 자전거를 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자전거가 넘어졌다는 것은 그 이전에 자전거를 '타다(Ride)'가 전제 된 것이다. 자전거를 탄다는 그 자체가 하나의 일(work)이 진행중인 것이고, 자전거가 넘어진 것은 진행되던 일(work)이 방해를 받거나 중단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가 생겼다면, 보통 문제가 되는 '사건'을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이전에 어떤 일(work)가 선순환 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가 일어나는 사건(accident)은 작은 단위이고, 문제의 전제가 되는 일(work)은 큰 단위다. 그러니 문제의 현상만을 봐서는 결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자전거를 타는 행위는 자전거의 패달을 밞아서 에너지를 얻었을 때 가능한 것. 잘 가다가도 더이상 패달을 밟지 않으면, 점점 속도가 줄어들다가 결국 쓰러지고 만다. 또 다른 경우를 상상할 수가 있는데, 자전거의 패달을 막 밟아대며 속도를 높여 전진하다가 커브길을 만나면 핸들을 부드럽게 꺽어주며, 무게중심을 진행방향 쪽으로 기울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곧 넘어지게 될 것이다. 서 있을 때와 타고 갈 때의 밸런스 개념이 다르고, 직선구간에서의 밸런스 개념과 커브구간에서의 밸런스의 개념은 다르다.
한 개인이 애초에 자전거를 타지 않으면 넘어질 일도 없을테지만, 인류가 자전거를 타지 않으면 진보하지 못해 문명은 퇴보했을 것이다. 잉카문명은 동시대에 유럽권에서는 상상도 못할 세련된 문화를 꽃피웠지만, 바퀴를 발명하지 못해서 진보에 한계가 있었다고 한다.
바퀴 > 수레 > 자전거 > 자동차 > 비행기
마찬가지로 현대인이 인터넷을 하지 않으면, 개똥녀 사건 따위는 애초에 없었겠지만, 반대로 정보의 속도가 느려서 의식이 진보하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결국 밸런스는 두 발로 한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왼 쪽 발을 내딛으면, 무게 중심이 불안정해서 자연스레 오른 쪽 발을 내딛고, 또 불안정해서, 왼 발 > 오른 발 > 왼 발 > 오른 발... 을 교차하며 나아가는 것이다.
수영도 왼 팔과 오른팔을 저어가며 나아가는 것이고, 정치도 진보와 보수가 교차하며 발전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보다.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도 하지만, 인류가 살아가기 위해서 계속해서 문제를 필요로 하기도 하다. 인류의 숙명이다.
3. 에너지 혹은 밸런스
문제란, 문제가 되는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이전에 에너지의 선순환(work)이 무엇으로부터 방해를 받은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일(work)는 에너지가 가는 길, 1cycle 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죽은 것이 문제가 된다면, 사실 '죽음'이라는 사건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연속해오던 삶이 방해를 받은 것이다. 맞아죽건, 병으로 죽건, 스스로 목숨을 끊건 간에, 삶이 어느 시점에서 선순환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죽음은 삶의 그림자일 뿐이다.
누군가에게 주먹으로 얻어맞았다면, 보통 문제가 되지만, 만약 나의 직업이 권투선수 라거나 이종격투기 선수라면, 똑같이 맞는다는 행위가 있더라도 그것은 일의 선순환일 수가 있다. 요는 사건, 행위를 볼 것이 아니라, 포지션과 진행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일(work)는 자전거의 패달을 밟는 것처럼, 에너지가 있어야 하고, 자전거의 핸들을 움직이는 것처럼 밸런스가 맞아야 성립된다. 반대로 말해서, 온 세상에 모든 문제는 그 에너지가 고갈되었거나, 밸런스가 무너졌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고, 그러므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끌어오거나, 밸런스를 맞추어야지만 해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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