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청춘에 맞수는 이건희다
유능한 유시민, 전능한 이건희, 청춘에 일.




 

맞수.

유시민에 맞수는 이건희가 맞다. 이건 나이키의 라이벌이 닌텐도였던 것과 같다. 요즈음 나이키에 맞수는 아이패드지 싶다. 오늘에 나이키는 아이패드를 재낄 수 있어야 한다. 아이팟 등과 손잡고 아이패드와 맞서는 나이키를 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 유시민에 맞수를 박근혜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건 일에 대한 감이 많이 떨어지는 거다.

 

국가.

유시민은 지난 6월23일 ‘국가란 무엇인가’ 저자 강연에서 직접 삼성을 언급했다. 정확히는 삼성과는 맞서지 못하는 대한민국 청춘을 언급했다. 반MB 집회에는 사람들이 모여도, 반삼성 집회에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저러고도 무사할까?’ 강연을 지켜보던 몇몇은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시민이 반삼성을 말 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진실을 말하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

정치로 범위를 좁혀 보자면, 이명박 정권을 낳은 것은 김영삼 정권이 저지른 과오에 있다. 독재세력과 결탁하여 독재세력을 끊어내지 못한 것이다. 이건 이승만 정권이 한 짓과 똑 같다. 이승만을 고리로 친일세력이 뿌리를 더 깊이 박았고, 김영삼을 숙주삼아 독재세력이 더 많은 서식처를 확보했다.

 

민주.

민주정권 10년 동안, 총칼로 독재하던 이들은 씨가 말라 갔다. 그러나 총칼 밑에서 머슴살이하던 재벌들이 기회를 잡았다.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사설권력을 확보하고, 이미 사유화되어있던 국가권력도 지켰다. 잠시 입법부와 행정부 권력을 내어줬으나 10년을 넘기지 않고 차례로 돌려받았다. 법으로 보장된 권력과 법 외 권력에 합을 정권이 행사할 수 있는 권력에 총량이라 본다면, 이명박 정권이 소유한 권력은 역대 최강일 것이다.

 

돈.

물론 2011년 6월 현재 주요 권력을 지도로 그려 본다면, 대한민국에 최고 권력자는 이건희다. 그러니 국민참여당에 대표이기는 하지만 국회의원 한명 없는 신생정당에 대표가 삼성을 건드리는 것은 분명 매우 위험하다. 그러나 국가 대한민국을 충심으로 걱정하는 정치인이라면 이건희를 두고 정치를 말할 수 없다. 말이 안된다. 오늘날에 대한민국은 ‘돈으로 독재하기’가 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유능.

유시민과 이건희 둘 다 능력 있다. 그리고 능력을 추구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전자는 가능을 추구하고, 후자는 전능을 추구한다. 가능을 추구한다는 것은 가능과 불가능에 경계에서 끊임없이 궁리하고 도전하여 가능에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다. 전능을 추구한다는 것은 전능한 권력에 소유권을 치열하게 지키면서, 무능을 과감하게 제거하는 것이다.



 

가능.

개인 유시민이 가능에 도전할 때, 집단 유시민은 불가능에 영역을 헤매고 다닌다. 개인 유시민이 도전에 성공하면, 집단 유시민은 덩달아 성공한다. 개인 유시민이 실패하면, 그 실패를 거름삼아 다음 유시민이 도전한다. 가능에 영역은 계속 넓어진다. 실패해도 유능해 진다. 개인도 집단도 유능해 진다.

 

전능.

개인 이건희가 전능에 지킬 때, 집단 이건희는 무능을 빠져 든다. 이건 필연이다. 개인 이건희가 전능하면 집단 이건희에 실상은 무능하다. 집단 이건희가 무능해도 별 차이가 없다. 개인 이건희가 전능하면 집단 이건희는 개나 소로 채워져도 전능하다. 집단 이건희는 썩는다. 병든다. 개인 이건희에 성공은 집단 이건희에 실패다.

 

승부.

대한민국 청춘이 지리멸렬한 까닭은 승부다운 승부를 피하기 때문이다. 승부하지 않고 숙이고 들어가려 하기 때문이다. 전능은 무능하다. 누구보다 전능한 자에 품 안에 있는 자들이 잘 안다. 그러니 털끝만큼이라도 무능한 사람은 들이지 않는다. 전능한 자라도 무능해지기 때문이다. 집단 이건희가 대한민국 청춘에게 요구하는 것은 전능이다. 전능을 추구하고, 전능에 복종하며, 전능을 의심하지 않는 이들은 집단 이건희에게로 가 그들에 일부가 됨이 마땅하다. 시작은 화려하여도 끝은 사람 꼴이기 힘들 것이다.

 

일머리.

전능 추구는 현대에 대한 교양 없음이다. 일머리 없음이다. 이런 유형에 능력추구는 딱 선진국 따라잡기용이다. 남들은 다하는 것을 아직 못하여서, 우리도 따라 가야할 때 써 먹을 수 있는 방식이다. 인류가 아직 못하고 있는 불가능에 영역을 만나면, 순간 길을 잃는다. 창조가 안된다. 가능에 영역을 벗어나면 한 없이 무력해진다. 나약해진다. 밖으로 나가면 막막해진다. 돌아와 처자식에게 역정이나 내고, 묶인 개 잘 묶여 있나 확인하고 패게 된다.

 

청춘.

맞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그런데 아프고도 별 건질게 없다면 제대로 아프지 않았다는 것이다. 맞설 놈과 맞서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맞아도 깜이 되는 맞수에게 대들어서 맞아야 한다. 아파도 격이 맞는 맞수를 넘어 서느라고 아파야 한다. 청춘을 걸 만한 상대와 붙어야 한다. 아파할 만한 사연을 가슴에 품고 아파야 한다.

 

청춘에 일.

대한민국 청춘에 맞수는 개인 이건희다. 아니다. 집단 이건희다. 아니다. 전능을 추구하는 금력(金力)이다. 일본제국 폭력 지배에 맨 가슴으로 맞선 청춘들이 있었다. 군부독재 총칼에 맨 주먹으로 맞선 청춘들이 있었다. 금권독재를 바로 보고 맞서야 한다. 돈으로 전능을 추구하는 개인과 집단에 천적이 되는 길을 가야 한다. 아파도 이 길을 가는 것이 2011년 대한민국 청춘이 아플만한 깜이 되는 일, 청춘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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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따위가 예술인가?
김기덕 아리랑으로 묻고 칸에서 답하다.


 





김기덕 영화.

김기덕이 일냈다. 영화를 찍었단다. 홀로 했단다. 아리랑이다. 100분짜리 영화. 프랑스 칸에서 여는 영화제에 냈다. 영화관에 걸렸고, 사람들이 보았다. 영화가 끝나자 사람들이 일어났다. 박수치고 환호했다. 박수와 환호가 5분여 동안 이어졌다고 한다.

 

김기덕 노래.

세상에 관심이 그에게 쏠렸다. 인터뷰가 이어졌다. 인터뷰 중 지금의 심정을 노래도 표현해 달라고 하는 요청이 있었다. 부르기 시작한 노래는 아리랑. 부르다 울컥했다. 울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었다. 그렇게 잠시 울고 아리랑을 마저 불렀다.


영화 따위.

영화도 예술이다. 일반 분류로 보면 그렇다. 예술 중 한 분야로 쳐 준다. 종합예술로 분류해 준다. 그런데 백남준이 영화를 했다면 그래서 영화감독 백남준이었다면 지금에 백남준일까. 영화 따위를 했다면 말이다.

 

예술에 일.

위대한 사상은 그 자체가 승리이고 위대한 예술은 그 자체가 승리이고 축복이다. 출처 : 이병주, 지리산(펌 : 네이버 국어사전). 여기서 말하는 "위대한 예술"을 하는 예술가만이 독특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는가. 있다면 그것이 예술에 일이다.

 

깨우기.

지난해, 2010년 세계 인구는 70억을 돌파했다. 예술가란 70억 대 1이 되는 사람이다. 70억에 70억과도 맞설 수 있는 사람, 어쩌다 그렇게 되어버린 이들이 하는 것이 예술이다. 70억이 다 참아도 홀로 못 참는 사람이 예술 한다. 모두 잠들어도 홀로 깨어 잠들이 못하는 자 중에 예술가가 난다. 견디지 못해 사라졌다 홀연히 나타나 번쩍하고 모두를 깨우는 이가 예술가다. 예술가에 맡은 바는 깨우기다.

 

도구.

예술가에게 도구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한다. 글일 수 있고, 그림일 수 있고, 음악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깨우기"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예술가에게 도구는 그에 몸과 같아야 한다. 극단과 극단을 오가며 몸부림 칠 때 그와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에 인간이 중심에서 토해내는 절절한 것을 끝까지 지켜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예술 하는 도구가 지필에 한정되는 것은 예술가들이 처하는 절박함 때문이다.

 

영화.

영화라는 도구로 예술 할 수 있는가. 영화판에서 제작자이거나, 감독이거나, 배우이거나 낱개 인간이 뭘 어쩔 수 있다는 말인가. 투자자, 배급사, 제작자 등의 자본과 배우, 스텝 등의 동료와 지원자들에 둘러싸인 일인이 뭘 얼마나 더 완성할 수 있겠는가. 거대 자본과 뛰어난 동료가 없다면, 영화 하는 사람은 그냥 일개 생명체일 뿐이다. 결국 영화에 주인은 자본이 된다. 영화는 예술가에 도구가 아니다. 자본가에 도구일 뿐이다. 그렇게 영화 따위가 된다.

 



김기덕 예술.

아리랑에는 영화 하던 인간이 나동그라지는 몸부림이 찍혀있다. 영화 하려는 사람이 내지르는 비명이 담겨있다. 아리랑 속 김기덕은 영화 따위는 버리고 총을 택한다. 영화 만드는 짓 따위는 버리고 총을 만드는 일을 한다. 죽이고 죽는다. 아리랑이 흐른다. 총소리가 울린다. 보는 이들에 등뼈를 타고 신경다발이 쩌렁한다. 깬다. 예술이다.

 

위대한 예술가.

문명국가 국민들이 예술가를 높이 대접하는 것은 예술가는 은인이기 때문이다. 잠들려는 대중을 깨워 문명을 지키게 하는 이들이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예술가에 DNA는 권력과 불화한다. 공동체가 야만에 사로잡히면 제일 먼저 목숨을 내놓는 이들이 예술가다. 용기와 의지도 한 몫을 하겠지만, 그렇게 생겨 먹은 탓이기도 하다. 죽어가며 그들은 비명을 지른다. 위대한 예술가는 할 수 있는 모든 것, 그의 가진 모든 것을 던져 거대한 비명을 토해 낸다. 그 비명에 깨어야 산다. 깨어있는 사람들이 세우는 나라가 문명국가다. 예술가는 문명을 살리는 은인이다.

 

위대한 각성.

지금 인류는 전에 없던 진보를 하고 있는 중이다. 농업혁명도 산업혁명도 정보혁명도 아직 완성되지 않는 장쾌한 혁명에 과정일 뿐이다. 농업혁명으로 땅에 주인이 세계에 주인이 되었다. 산업혁명으로 바다에 주인이 세계에 주인이 되었다. 정보혁명으로 정보에 주인이 세계에 주인이 된다. 그런데 정보에 주인은 모든 인류다. 사람 모두가 주인이 되는 수준에 각성이 있어야 한다. 위대한 각성은 다음 진보에 기초다.

 
 



위대한 김기덕.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 정을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나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오". 은인이 부르는 노래 소리가 들리는가. 깨라. 예술가가 토해내는 비명소리에 잠을 깨지 못하는 생명체는 사람으로 치지 않는 것이 인류 역사가 전하는 상식이다. 님께서 깨우신다. 깨울 때 깨라.

 

위대한 나라.

위대한 예술가가 그를 알아보는 위대한 사람을 만나기를, 그런 사람들이 만나고 만나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나라가 깨어나기를, 그 나라가 김구에 나라, 장준하에 나라, 김대중에 나라, 노무현에 나라이기를, 그대와 나에 나라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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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재앙, 생존자의 일

 

재앙



재앙은 일상이다. 시간을 조금만 길게 보면 그렇다. 키가 백미터 정도 되는 거인이 발아래를 보듯 우리 삶을 내려 본다면 말이다. 그래서 백년쯤을 한 눈에 본다면 그렇다. 재앙은 낮에 강바람 불고, 저녁에 산바람 부는 것 같은 일과다. 몸을 거인처럼 키우지는 못하더라도 누구라도 거인의 시야는 가질 수 있다. 훈련하면 된다. 가르칠 수 있고 배울 수 있다. 익힐 수 있다. 재앙은 인간의 일상에 자신의 일정을 맞추는 법이 없다. 빈부나 귀천을 가리는 법도 없다. 사정권에 들어오면 모두 쓸어버린다. 거인의 시야를 익힌 이들이 거인처럼 행동할 경우 덮치지 못할 뿐이다. 인간의 몸은 작다. 그러나 인간의 사유는 몸의 한계에 구애받지 않는다. 몸의 크기를 넘는다. 새겨두자. 인간 두뇌의 고삐는 풀렸다. 재앙 보는 법을 익혀야 한다.

 
 

진보

인류의 진보는 재앙에 맞선 생존자들의 몸부림이다. 인류가 이뤄낸 기술과 문명의 진보는 재앙에 반응한 결과다. 다시 쓰나미가 오고, 토네이도는 거셀지라도 이겨낼 것이다. 자연 재앙이 반복되어도 이겨 낼 것이다. 인류는 더 강해 질 것이다. 사유하는 인류는 거인보다 훨씬 거대한 일을 할 수 있다.

 

전쟁
 



자연의 재앙과 싸우던 인간은 언제부턴가 더 무서운 재난을 만났다. 전쟁이다. 오늘날엔 전쟁 없는 뉴스를 상상할 수 없다. 전쟁은 항상 있다. 그럼에도 전쟁을 의식하지 못한다. 멀리 있는 전쟁은 크게 보면서도 가까이 있는 전쟁에 둔감하다. 눈을 감는다. 개울 풀숲에 머리만 쑤셔 박고 숨는 개구리다. 이것도 인간이다. 고삐 풀린 뇌는 시야를 좁히는 방향으로 달릴 수도 있다. 쥐나 개구리나 벌레보다 좁은 시야를 가질 수 있다. 시장이 털리고, 통장을 빼앗기고, 뺨 맞고, 목이 떨어질 때까지도 망상에 빠져 있을 수 있다. 인간이니 그렇다. 깨어야 한다. 번쩍!

 

착각

전쟁과 재앙은 닮았다. 재앙은 자연이 일으키는 전쟁이다. 전쟁은 인간이 일으키는 재앙이다. 죽인다. 삶의 터전을 파괴한다. 둘 다 나쁘다. 전쟁은 더 나쁘다. 전쟁은 인간 관계를 파괴한다. 전쟁은 인류가 진보하면 할수록 더 극렬해지고 있다. 인류는 전쟁 청산에 실패했다. 착각 때문이다. 재앙은 생존자를 남기지만, 전쟁은 승자와 패자를 남긴다. 착각이다.

 

실패

일본은 야스쿠니 신사에 제2차 세계대전 전몰자를 묻어 놓고 ‘호국 영령’이라 주장하는 굿판을 벌리고도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프랑스는 약탈해간 조선의 의궤를 보내주면서 끝내 '대여' 라는 단서를 달았다. 프랑스도 일본도 실패다. 전쟁 준비 족속일 뿐이다. 프랑스 편에서 싸웠던 이들이나, 일장기 동여 묶고 사지로 나섰던 이들이나, 죽어 묻혀 있는 이들의 바람은 전쟁이 아니다. 싸우는 방편 외에는 다른 길을 열지 못한 조상의 한계를 넘어야 한다.

 
 

생존

전쟁도 재앙이다. 승자도 패자도 없다. 생존자만 있을 뿐이다. 생존자의 자리에서 전쟁의 부채와 자산을 모두 상속해야 한다. 승자나 패자나 미몽에서 깨어야 한다. 와신상담 오월동주는 그 개인에겐 드라마일 수 있다. 초딩들을 위한 자기개발용 옛날이야기 정도로 활용하는 건 봐 줄 수 있다. 그러나 남용은 금물이다. 인류라는 집단에겐 재앙일 뿐이기 때문이다. 승자의 수성도 패자의 공성도 다 모자란 이야기다. 진보하지 않으려는 핑계다. 승자의 오만이나 패자의 앙심이나 본질은 같다. 동전의 양면이다. 전쟁의 양 날개다. 나쁘다. 더 참혹한 재앙의 뿌리가 될 뿐이다.

 

거인의 일

오월이다. 우리 곁에 살던 거인이 떠난 달이다. 그 오월이다. 벼랑 끝에 선다. 그 거인은 변방의 작은 나라, 지방 동네 벼랑 위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전쟁이라는 재앙을 피하지 못해 안타까운 비명을 지르는 인류의 중심에 있었다. 인류가 치룰 재앙에 처음 재물이 될 민족의 운명, 그 중심에서 한발도 물리지 않았다. 거인은 온 몸으로 맞섰다. 그 죽음으로 잠드는 민족을 흔들었다. 깨웠다.

 

생존자의 일

전쟁은 "누가 어떻게 살 것인가?" 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재앙이다, 재해다, 사고다. 인류가 전쟁을 통해 결정한 것은 한 줄로 요약된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게 사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유, 존엄, 평등하게 사는 것, 사람 사는 세상이 인류의 결정이다. 생존자의 자리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열어야 한다. 인류 역사를 통째로 보는 거인처럼 살아야 한다. 거인의 시야를 탑재하고, 거인처럼 사유하고 거인처럼 움직여야 한다. 생존자는 자신의 위대함을 발견해야 한다. 위대해지는 것이 생존자의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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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캐나다 사람 피엘


피엘 빠리조. 우리나라와는 별 관계가 없는 한 캐나다인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떳다. 일본인의 전범 추모 행위에 이의를 제기 한 외국인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도 화제가 되었다는 이 동영상이 촬영 된 때는 2009년 8월 15일이다. 장소는 야스쿠니 신사, 제2차 세계대전 전몰자를 호국 영령이라 주장하며 묻어 둔 곳이다.

다모가스 도시오, 전 항공 자위대 막료장이라는 자가 "일본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에게 우리들의 마음으로 감사하는 날이 8월 15일이 아닌가 합니다."하고 중얼거리는 인터뷰 말미에 사건은 시작된다. "질문해도 될까요?" 라며 유창한 일본어로 질문을 던지는 외국인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가 '피엘 빠리조' 다.

 


 

항의

피엘의 질문은 "독일인이라면 체포되는 것을 알고 있느냐?" 는 것이다. 전쟁 범죄자를 추모하는 것이 불법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답변으로 거센 항의와 욕설, 손가락질을 당하고 두 번째 질문을 던진다. "일본의 이런 비상식적인 모습이 괜찮다고 생각하십니까?" 였다. 답으로 더욱 거친 항의와 욕설이 이어진다. 손가락질을 넘어 그가 메고 있던 가방을 끌어당기는 등의 신체적인 위협까지 당한다.

 

비난

그의 동영상 관련 기사가 올려지고, 댓글이 달린다. 대부분이 일본을 비난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비난만 하고 지나가기에는 너무도 중요한 인류의 역사, 안타까운 동아시아의 현대사가 담겨있다. 일본과 독일은 무엇이 다른가. 무엇이 독일과 일본의 차이를 만들었는가. 피엘이 던진 질문은 중요하다. 일본인들의 항의와 욕설에도 묻힐 수 없고, 일본을 비난하는 것으로도 가려져서는 안 된다. 정당한 질문에 진실한 답이 따라 줘야 한다.
 

 


 

전쟁

전쟁은 무엇인가? 사전 <한플러스국어사전, 성안당> 상의 풀이는 나라끼리 무력을 동원해서 벌이는 싸움이다. 나라나 그에 준하는 집단의 싸움이다. 무력을 동원한다. 죽고 다친다. 여기 경쟁 등 여타의 행위와 구별되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죽음이다. 죽는다. 죽음을 각오한 격돌이다. 전쟁은 왜 하는가. 이긴 집단이 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말로 해서는 안 되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 차이를 다른 수단으로 극복할 수 있다면 전쟁은 끝난다.

 

질문

질문을 보자. 전쟁 범죄를 미화하는 짓이 독일에서는 불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일본의 이런 비상식적인 모습이 괜찮은가? 이 두 가지로 요약된다. 피엘의 질문은 합리적이지만 어리다. 좋은 질문이지만 번지수가 틀렸다. 물론 이런 질문을 받고 일본이 정신을 차린다면야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기적이다. 일어나지 않는다.

피엘 질문에 답해야 할 국가가 있다면 미국이다. 전쟁 후 일본의 정치와 사회를 논공행상한 것은 미국이다. 패전한 국가의 논공행상이란 말이 격에 맞지 않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달리 쓸 말이 없다. 독일의 시민들은 패전을 인정하고 전범세력을 청산했다. 2차 세계대전을 주동했던 세력은 지금 독일을 주도하는 세력의 적이다. 정치와 사회 시스템으로 보면, 전후 독일을 재건한 국민과 정치세력은 모두 승전국의 유산을 상속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일본과 일본 국민은 승전 유산의 상속 자격을 박탈당했다.

 
 

2. 일본 전쟁
 



일본에서는 전쟁 주도 세력이 패전 정리 과정에서 살아남았다. 그것도 아주 건재하게 살아남았다. 군사강국 미국을 받들어 모시는 것이 그들이 살아남은 이유다. 일본에서는 패한 전쟁에 대한 청산이 없었다. 그러니 일본 사람들이 삶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종전이 없었다.

앞에서는 미국에게 숙여도 뒤에서는 절치부심, 와신상담 중이다. 그런 이들이 지금 일본의 주인이다. 일본이 전쟁 선언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힘이 없어서다. 힘만 회복 된다면 전쟁은 다시 시작된다. 이런 사정은 우리나라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 일본에서 전범들이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칠 때, 한국에서는 친일세력이 같은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두 세력은 두 국가 모두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성공한 두 세력의 마음속에서 전쟁은 끝난 일이 없다. 그렇다 일본은 오늘도 전쟁 중이다.


인류 전쟁

내용대로 말하면, 한국과 일본은 전쟁 중이다. 1, 2차 세계대전은 여기 극동 아시아에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왜? 논공행상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논공행상의 실패는 곧 전쟁의 시작이 된다. 무력이 부족한 세력은 무력을 키워서 준비하고, 무력이 강한 세력은 더 강한 무력을 길러 다음 전쟁을 준비한다. 더 확실한 승리, 혹은 지난 패전의 상흔까지 되갚아 줄 역전승에 대한 욕망이 강렬하게 자리 잡는다. 몸이 굴복했을 뿐, 머리는 승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쟁의 이유가 해결되어야 전쟁이 끝난다.

논공행상의 실패는 충분한 전쟁 이유가 된다. 미국을 비롯한 이긴 국가들의 이기적인 전후처리가 승전 국가들만의 잔치에 치우치면서 종전의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다. 1945년 9월 2일 일본이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은 기록상으로는 종료되었다. 그러나 곧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시작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전쟁 중이다. 세계 대전은 아직 진행 중이다. 유럽식의 정의만 외치는 분노나 미국식의 정의를 가장한 약소국 약탈로는 인류 전체가 진보할 수 없다. 그럼으로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다른 인류를 속박하고, 비참하게 하고, 차별하여 누리는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지속가능하지 않다. 인류는 아직 전쟁 중이다.


큰 전쟁의 처음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세계대전의 시작을 언제로 봐야 할까. 1914년 7월 29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이 쏜 포탄이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 떨어지기 시작한 날인가.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작업의 발달로 보자면 1705년 토마스 뉴커멘의 발명하고, 1769년 제임스 와트가 상용화에 성공한 한 증기기관이 작동한 그 날이 시작일 수도 있다.

사유의 발달로 보자면 1789년 8월 26일 인권선언(Dé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을 프랑스 제헌국민의회가 승인하고 선언한 그 날이 시작일 수 있다. 그 날 큰 일이 난 것이다. 큰 차이가 선언 된 것이다. 큰 차이가 만천하에 드러나 버린 것이다. 차이가 충분히 좁혀질 때까지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다만 불리는 이름만 바뀔 뿐이다.

 

큰 차이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 제1조는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 선언은 널리 퍼져나갔다. 1948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世界人權宣言,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으로 이어진다. 국제연합 총회에서 가입 국가 58개 국가 중 50개 국가가 찬성하였다고 한다. 국제연합의 결의로 세계에 선언하게 된 것이다.

제1조는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 이다. 프랑스 인권선언 후 159 년만 이다. 국제연합에서 신생 독립국 조선의 남한과 북한은 둘 다 나라 대접을 받지 못했다. 세계의 진보와 큰 차이가 난 것이다. 좁혀지지 않는 차이는 곧 전쟁이 된다. 한국 전쟁은 1950년 시작 되었다. 2011년 오늘까지도 한국은 아직 전쟁 중이다. 한국만이 아니다. 세계는, 인류는 아직 차이가 크다.

 

정리하면,
 

1. 큰 전쟁은 큰 차이 때문에 시작된다.

2. 큰 차이의 시작은 작업의 혁명, 사유의 혁명 때문이다. 차이가 좁혀져야 전쟁은 끝난다.

3. 유럽과 미국 등 2차 세계대전 승전 국가가 자국의 이해관계만 해결하는 논공행상을 했다.

4. 일부 지역에서 전쟁은 멈추었지만, 세계는 전쟁 중이다.

5. 큰 차이가 좁혀져야 전쟁이 끝난다.

 

 

3. 사람의 길





만델라의 선택은 피엘이 했어야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차이를 좁히는 방법, 전쟁이 아닌 다른 길이 있는가. 만델라는 아래와 같은 선택을 했다. 남아프리공화국이라는 국가의 국가폭력은 인류 성취한 수준의 한계 탓이다.

인간 차별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아파르헤이트는 남아공의 백인정권이 시연했지만, 백인정권의 시작은 만델라의 나라 밖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각성하지 않는 유러피안들에게 뿌리를 박고 있었던 것이다. 인류 전체가 각성하지 않는다면 길은 없다. 힘들고 괴롭고 위험해도 인류 전체가 각성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넬슨 만델라는 1994년 5월 27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하였고 진실과 화해위원회(TRC)를 결성하여 용서와 화해를 강조하는 과거사 청산을 실시했다. TRC는 성공회 주교인 데스몬드 투투 주교가 참여하였으며, 수많은 과거사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여 조사하였다.

인종차별 시절 흑인들의 인종차별 반대투쟁을 화형, 총살 등의 잔악한 방법으로 탄압한 국가폭력 가해자가 진심으로 죄를 고백하고 뉘우친다면 사면하였으며, 나중에는 경제적인 보상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또한 피해자 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피해자 무덤에 비석을 세워줌으로써,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의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잊혀지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

-  위키백과 -

 

 
 

사람 사는 세상




김대중의 '용서와 화해' 의 길, 노무현의 '사람 사는 세상' 의 길은 매우 위험하고 험한 길이다. 언제라도 이명박과 한나라당과 같은 세력에게 모든 것을 빼앗길 각오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이다. 권력을 잃으면 조롱과 박해와 죽음을 감수해야 하는 길이다.

군벌도 언론도 재벌도 입법권력 사법권력 행정권력 힘 있는 자들은 모두 이 차이가 좁혀지는 것을 원치 않는 나라에서 사람 사는 길은 험하다. 위험하다. 그러니 더욱 각성해야 한다. 유럽 안의 프랑스는 분노만으로 충분할 수도 있겠지만, 아시아 안이 한국은 분노만으로는 절대 부족하다. 각성해야 한다. 처절한 각성의 길 외에 다른 길이 없다. 각성 실패는 곧 전쟁 시작이다.


사람의 일

사람 사는 세상의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 이 각성은 작업의 발달과 사유의 발달에 근거한다. 사람은 그렇다 한번 정신이 들면 돌이 킬 수 없다. 물릴 수 없다. 격발된 총알이다. 쏘아진 화살이다. 태양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반드시 봄이 온다.

작업 발달과 사유 발달을 막을 수 있다면 모를까. 계절이 바뀌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모를까. 사람답게 일하는 맛을 알아버린 사람을 되돌릴 방법은 없다. 한국과 일본에 포진한 독재, 독점 권력자들, 그리고 그들에게 속한 자들은 반드시 청산된다. 오늘에 만취한 자들에게 내일은 없다. 오늘의 권력에 미쳐 다른 사람을 쥐어짜는데 골몰하는 자들은 반드시 망한다. 이미 대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사유의 진보

사람의 일의 시작은 사유의 진보에 있다. 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해야만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런 확고한 사유의 진보에서 사람의 일이 시작한다. 여기서 시작하는 일은 반드시 성공한다. 이 일은 실패해도 망하지 않는다. 망해도 끝나지 않는다. 실패의 소문이 사람을 모여 들게 한다. 크게 실패하여 망해도 사람들을 뭉치게 한다. 뭉치다 죽어도 더 많은 사람들이 따른다. 사람은 그렇다. 다음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일 할 맛이 나기 때문이다. 살맛이 나는 까닭이다.
 

작업의 진보

사람의 일의 실현은 작업의 진보에 있다. 증기기관이 발명된 것이다. 증기기관의 발명은 내연기관, 전기기관의 발명으로 이어진다. 핵심은 기관(機關)이 발명된 것이다. 기관은 이미 있었다. 태양계가 곧 기관이다. 자동 기관이다. 증기기관은 증기의 힘으로 움직이고, 태양기관은 우주에 속한 힘으로 움직인다. 이제 인간 육체노동이 생존과 진보의 필수 요소에서 제외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동 기관을 만들고 관리하여 완성하는 과정에만 개입할 수 있을 정도면 된다.

작업은 인간 육체의 몫이 아니라 자연 기관의 몫이 된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인류가 이룬 가장 큰 진보다. 가장 중요한 진보다. 우리는 이 큰 진보가 시작 된 다음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태양이 일하고 있다. 지금 인류의 가장 든든한 작업 파트너는 태양이다. 인류의 몫은 육체의 노동이 아니라 두뇌의 노동이다.


 

 

고삐 풀린 뇌

자유롭고 존엄하고 평등해 줘야 두뇌가 일한다. 고삐 풀린 뇌는 펄펄 날뛰고 싶어 한다. 지금까지 없던 일을 내고 싶어 한다. 큰일을 내고 싶어 한다. 큰 차이는 큰 성공으로 극복된다. 사람은 사람 일에 나서야 한다. 뇌는 달리고 싶다. 뇌는 춤추고 싶다. 인류의 모든 뇌와 어울려 빛을 발하고 싶어 한다. 두뇌의 축제, 이것이 사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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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의 성공, 신정아의 실패, 사람의 일



무엇을 믿습니까?


진화론은 충격이었다. "진화를 믿습니까?" 라는 질문은 해도 "진화가 맞습니까?" 라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침팬지와 사람이 같은 조상 밑에서 나왔다는 발견을 면대면 대화의 주제로 삼는 것은 현대에도 위험하다. 여전히 때와 장소와 사람을 가려야 한다. 교과서에서는 발견의 결과이지만, 현실에서는 믿음의 결과처럼 반응한다. 

 
 




《종의 기원에 대하여》(On the Origin of Species)는 1859년에 출판되어, 생물진화론의 새 장을 연 찰스 다윈의 책이다. 책의 원래 제목은 《자연선택의 방법에 의한 종의 기원, 또는 생존 경쟁에 있어서 유리한 종족의 보존에 대하여》(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이다. 1862년의 6판부터는 제목을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으로 바꾸었다. 자연선택을 통한 종의 진화에 대한 이론을 제시했다. 이 책은 출간 즉시 당시의 종교적인 믿음과 모순된다는 이유로 큰 논쟁을 일으켰다.



다윈은 1858년 린네 학회에서 논문 발표라는 형식으로 훗날 '진화론' 이라 불리게 될 주장을 시작했다. 1859년 ‘종의 기원에 대하여' 까지 발간하며 이 놀라운 주장을 계속하자, 영국 지성과 언론은 강렬한 논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다윈은 인간의 탈을 쓴 원숭이가 되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당하는 입장에서 충격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영국의 지성과 언론 중 다수는 한 박물학자을 미치광이로 만들어 이 논란을 끝내려 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헛되었다. 끝은 없었다. 더 큰 충격과 논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경악스럽고 발칙한 주장을 지지하는 발견이 쏟아 진 것이다. 이 거대한 충격을 일으킨 발견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4%의 차이


2005년, 다윈의 나라 과학잡지 '네이처'에 침팬지 게놈을 완전 해독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미국의 연구자들이 주도한 24살짜리 수컷 침팬지 '클린트'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 사람과 침팬지의 DNA서열이 96%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클린트'란 녀석과 나의 유전적 차이는 단지 4% 라는 것이다. 연구는 계속 되었다.








미국 스탠퍼드대, 조지아대, 펜실베이니아주립대 합동 연구팀은 침팬지와 인간의 게놈 지도를 비교 분석한 결과 인간 게놈에는 퇴화 흔적만 있지만, 침팬지 게놈에서는 여전히 견고한 구조를 갖춘 DNA 조각 2개를 찾아냈다. 연구진은 이 중 한 개가 두뇌 발달을 방해하는 물질이라고 결론 내리고 이게 사라지면서 인간 지능이 발달하기 시작했다고 결론 내렸다. 인간에게 사라진 또 다른 DNA 조각은 침팬지 성기에 가시(spine)를 돋게 하는 DNA였다. 이게 사라지면서 성교 때 암컷의 고통이 사라져 우리 조상들이 더 오래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됐다

 




2 조각, 성기엔 가시, 두뇌엔 고삐
 





아 그랬다. 그 녀석 '클린트'와 나의 결정적 차이는 2조각 이었다. 성기엔 가시, 두뇌엔 고삐. 성기에는 가시spine가 돋게 하던 것과 두뇌 발달을 방해하는 물질과 관련한 것, 두뇌 발달을 막는 고삐가 있었다는 것이다. DNA조각 2개가 나와 '클린트'를 이렇게 갈라 놓았다는 것이다. 두뇌 발달 방해 물질, 두뇌 고삐가 퇴화 되어 풀려 버린 나는 이 밤에 발달하는 두뇌를 주체하지 못하고 이 글을 쓰고 있고, 녀석과 녀석의 친구들은 뼈와 근육으로 된, 거기에 가시까지 돋은 성기로 침팬지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아! 그랬다. 그 녀석 '클린트'와 나의 결정적 차이는 2 조각 이었다. 성기와 두뇌. 성기에는 가시spine가 돋게 하던 것과 두뇌 발달을 방해하는 물질과 관련한 것, 두뇌 발달을 막는 고삐가 있었다는 것이다. DNA조각 2개가 나와 '클린트' 를 이렇게 갈라 놓았다는 것이다. 두뇌 발달 방해 물질, 두뇌 고삐가 퇴화 되어 풀려 버린 나는 이 밤에 발달하는 두뇌를 주체하지 못하고 이 글을 쓰고 있고, 녀석과 녀석의 친구들은 뼈와 근육으로 된, 거기에 가시까지 돋은 성기로 침팬지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침팬지의 성공
 

수컷 침팬지의 성공은 무리에서 가장 강한 놈이 되는 것이다. 가장 강한 놈이 모든 암컷들과 교미할 권리를 가진다. 암컷들은 발정기가 있다. 이 시기를 놓치면 실패다. 뼈와 근육으로 된 성기 덕에 많은 횟수의 교미가 가능하다고 한다. '뼈와 근육으로 된 성기'를 포기한 선택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 그런데 가시, 성기에 돋은 가시 덕(?)에 빠른 사정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랬다. 빨리 사정해야 성공인 것이다. 신속하게 많은 암컷에게 유전자를 전달하는 것. 그것이 침팬지의 성공이다. 유전자셔틀, 이것이 침팬지의 일이다.

 

신정아의 실패


신정아의 신간 ‘4001’의 출간으로 2011년 한국의 지성과 언론은 뜨겁다. 책 제목이 그녀의 수감번호다. 출간 이틀 만에 초판 5만부가 다 팔렸다고 한다. 자세한 책 내용은 봐야 알겠지만, 제목은 자신의 실패를 상징하는 숫자로 달았다.

1인칭 주관적 작가 시점이다. 한계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의 반응은 뜨겁다. 왜 일까? ‘4001’은 여간해서는 공개되지 않는 한국의 잘 난 강한 남자들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침팬지스타일이 부러우면 실패


이 기록 중 언론이 앞 다투어 공개하는 내용이 흥미롭다. 침팬지스타일의 수컷 인류가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은 한국에서 손에 꼽힐 만큼 성공했고, 더 큰 성공을 거둘 것으로 보이는 남자들이다. 한 남자는 한국 지성을 대표하는 이로 정치에서 까지 큰 성공을 이루었고, 다른 남자 또한 잘 나가는 언론인을 넘어 말 잘하는 정치인으로 자리 잡은 사람이다.

물론 이 남자들은 솔로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그녀는 그들을 ‘싫어’ 했다고 한다. 진실은 하늘과 땅과 그들과 커피숍 의자와 자동차 뒷 자석만이 알지도 모른다. 오해라면 풀면 된다. 거짓이라면 진실을 밝히면 된다. 그러나 침팬지가 부러웠다면 그 지점에서 이미 실패다. 이런 식의 힘자랑이 이야기가 부럽다면 그 순간 모두의 실패다. 사람은 침팬지와는 다른 길을 진화했기 때문이다. 조선에서 제일 잘 한다고 난봉질로는 침팬지를 넘지 못한다.

 

 

인류의 선택
 




DNA 구조의 발견에 따르면, 먼 옛날 인류의 아버지는 오직 한사람을 찾아 평생을 함께하는 쪽을 선택했다. 뼈와 근육이 아닌 살과 핏줄로 된 성기에, 돌기마저 버린 것이다. 이와 함께 두뇌의 고삐를 풀었다. 짝짓기의 중심이 성기에서 두뇌로 옮겨진 것이다. 많이 짝짓는 쪽을 버리고, 오래 짝짓는 쪽으로 향한 것이다.

상속 받은 재산이나 세력 없이 일해서 성공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런 일을 해낸 사람들을 자수성가 했다고 한다. 자수성가하는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기 분야가 있다는 것이다. 한 우물을 판다. 끝장을 본다. 그에 따른 성공과 실패를 겸허하게 수용하며 성장한다. 자기 분야를 찾는 일에 신중하고, 한번 정하면 끝까지 밀어 붙이는 사람들은 실패해도 성공한다. 똑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의 일
 

사람의 일이란 무엇인가. 노래로 하자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이루는 활동일 것이다. 일이란 '님과 함께 살 공간과 에너지' 를 확보하는 것이다. 사람 일의 성공은 공간과 에너지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님’이 있어야 성공이 완성된다. 님을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오직 하나를 만나는 것이 ‘사람 스타일’이다.

침팬지의 길과 사람의 길이 있다. 600 만 년 전부터 각각 다른 길로 달렸다. 잠깐 혹 할 수는 있어도 너무 부러우면 완전 지는 거다. 사람의 길을 권한다. 종종 엄한 데로 달려 때때로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지만, 고삐 풀린 두뇌는 인류의 장점이다. 기회다. 가능성이다. 남는 에너지는 창의하는 일에 쓰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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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승진 재앙이야기다. 해고는 죽음이고 고통이다. 해고는 없어야 마땅하고, 피하지 못한다면 그 고통은 최소화해야 한다.



승진은 선 해고다
 

현직에서 파면, 해임, 해직, 면직, 모가지 당한 것이 먼저다. 다만 보다 좋은 조건에 임용되는 것을 동반하는 것이 승진이다. 승진으로 날개를 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승진과 동시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승진으로 날개를 다는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고, 잘 할 수 있고, 잘 맞는 자리를 꿰어 찼기 때문이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은 자신은 잘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자신이 좋아하고, 잘 맞고, 잘 하던 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승진 구조




직책이나 직위에 따른 직명이야 부르기 나름이지만, 시장에서 서비스로 이어지는 구조를 보면 다섯이다.


사장 > 사용자 > 관리자 > 실무자 > 서비스



승진 명칭


시장에는 서비스가 넘치고, 사용자는 돈이 넘치면 된다. 새로운 사업분야가 탄생하는 것이다. 일거리가 있으니 일자리도 생긴다. 자리마다 직함이 생기고, 승진 경로가 생긴다. 조직마다 그 특성이 맞는 다양한 명칭이 만들어 진다.
 

 시장  = 소비자 >
사용자 = 투자자, 주주, 사장 >
관리자 = 사장, 부장, 과장, 팀장 >
실무자 = 과장, 대리, 직원, 스태프, 팀원>
서비스 = 결과물

 

승진은 해고보다 어렵다. 승진은 선, 해고 후 임용이다. 승진의 성공은 해고의 성공과 임용의 성공, 두가지 성공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기에 어렵다. 그냥 직원이다가 대리 달면 축하 받고, 과장 되면 꽃다발에 과일바구니도 받고, 실무자로 실력을 인정받아 다른 실무를 맡거나, 비중있는 실무를 맡아 권한이 커지고, 보수도 많이 받는 경우는 대분분 잘 적응한다.

하지만, 실무자에서 관리자로 넘어 갈 때는 상황이 다르다. 해고의 충격이 크다. 임용된 자리 또한 원하던 자리가 아닐 수 있다. 해고인 줄 모르고 당하면 더 크다. 알아야 살 길이 있다. 승진은 해고다. 쾌속 승진은 실재로 빠른 해고로 이어진다. 기업은 역량은 관리자의 자리부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관리자의 수준을 넘어서면 해고다. 사용자가 된다는 것은 다른 세계다. 적응과 성공이 쉽지 않다. 매뉴얼에는 없는 책임이 몰려오고, 잘 다룰 수 없는 권한이 몸과 마음을 휘감는다. 苦다.


 

자리의 힘





멍석이 깔리고, 자리에 올려지면, 실체가 드러난다. 자리는 포장을 벗기는 힘이 있다. 실무자로는 멀쩡하고 훌륭하던 사람이 관리자에 이르면, 과욕을 부려 너무 과도한 업무를 맡고, 팀원들의 희생을 당연시 하다가 일도 망치고 사람도 잃은 후에야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찬찬히 자신을 찾아보면, 실무자 자리에서 해고된 사실을 전혀 모른체 열심히 일하다 망연자실해 하고 있는 내가 있다. 관리자에서 사용자의 자리로 간다는 것은 더 심하다. 이건 뭐 사람으로 삶이 끝나고 다른 존재들의 세계가 시작되는 것으로 느낄 만큼 다르다.
 
 

최종 승진


끝이 아니다. 사용자 다음에 '시장' 이 있다. 시장이 될 수 있어야 다 가보는 것이다. 소비자로 불리는 자리. 국가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이 자리에 임용되면 그 수준 차이가 너무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게다가 개인이 개인의 권한을 소비하는 경우는 그 댓가를 개인이 치루면 그만이다. 문제는 국가나 기업을 대리하는 개인의 수준이다. 국가권력이나 기업권한을 소비하는 자리에 있는 개인들의 선택이 불러오는 댓가는 국가나 기업에 속한 사람들과 그들과 연결된 모든 사람들이 치뤄야 하기 때문이다.
 

승진한 자는 해고됨을 알아야 산다.

실무자의 자리에서 해고된 것을 알아야 관리자로 산다.

관리자의 자리에서 해고된 것을 알야야 사용자로 산다.

사용자의 자리에서 해고된 것을 알아야 시장으로 산다.



승진 재앙





해고에 실패한 승진은 재앙이다. 최종 승진의 자리는 시장, 소비자의 자리다. 실무자, 관리자, 사용자의 자리를 철저하게 정리할 수 있어야 승진감이다. 사용자의 자리를 겸하여 시장의 주인노릇까지 하려는 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이들의 망동은 개인만 망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업도 나라도 망하게 한다. 큰 나라들이 이런 자들의 수중에 떨어지면 인류도 앞날을 장담하지 못한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큰 난리이다.

40 미터의 쓰나미가 다시 온다고 해도 일본 정도의 수준에 이른 국가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원전폭발을 방조한 시장의 수준을 혁명하지 않는다면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이라 해도, 인류 유일의 군사강국이라 해도 반드시 망한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국가나 승진으로 망하지 않으려면 기억하자. 승진은 해고다. 자리 정리 확실히 하자.
 

우리나라? 우리회사?

李시장, 金팀장 이야기는 여러분께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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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구조를 말로 풀자면, 다음과 같다.



내기> 만남 > 나눔 > 맡음 > 하기



1. 인간


일 내는 측이 있고, 일 하는 측이 있다. 결자해지라고 일을 낸 측이 해결하면 끝이다. 우주만물은 대부분 그렇게 돌아간다. 우주를 한 눈에 보자면, 생명체란 것들이 정말 특이한 중에도 특이한 것이다. 생존가능한 공간도 특이하고 시간도 그렇고 에너지를 활용하는 것도 그렇다. 작은 행성에서 옹성거린 것이지만 35억년을 존속하고 있는 것도 특이한 사건이다. 이 생명은 다른 무생물과 달랐다. 그러던 중 그 생명체 중에서도 특이한 생명 인간이 나왔다. 일에 민감한 특이하고도 특이한 생명이다.




2. 지진해일





지진해일이 일본 북동부를 덮쳤다. 현재 피해규모 산정 불가다. 미야기현 미나미산리쿠초는 도심지역을 덮친 뻘물로 만여명이 연락두절 상태. 이런 대형 재앙을 내는 강한 지진이 14년을 주기로 발생한다고 한다. 일본 북동부의 대규모의 해일 범람지대가 있는 것이다. 산이 있고 들이 있던 곳이 뻘밭이 되었다. 산과 들은 한동한 뻘밭을 집삼아 사는 생명들이 차지가 되고, 살아 남은 들 짐승들은 다른 들을, 산 짐승들은 다른 산을 찾을 것이다. 빗물이 바닷물을 밀어내고 뻘을 씻어내면 다시 돌아와 삶을 이어갈 것이다. 14년에 한번 지진에 반응한 바닷물이 뻘을 밀어 올리면, 태양에 반응한 빗물이 바람을 타고 흘러와 비로 내려 뻘을 밀어내다. 산은 산이되고, 들은 들이 된다. 이 큰 파도를 일으키는 지진은 대륙판이 움직이기 때문이고 대륙판이 움직이는 까닭은 지구핵 움직이기 때문이다. 지진해일은 지구핵이 일을 내고, 대륙판과 바다가 일을 한 결과다. 비는 태양이 일을 내고 바다와 대기가 일을 한 결과다.




3. 쓰나미, 지진해일과 인류의 만남


1946년 태평양 주변에서 일어난 알류샨 열도 지진 해일이 당시로서는 자연재해 사상 최대 규모의 희생자를 내자 세계 주요언론들이 '지진과 해일'을 일컫는 '쓰나미(tsunami)'라는 일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당시 하와이에서 참사를 목격한 한 일본계 미국인이 이를 '쓰나미'라고 말한 것이 이 단어가 외국에 알려진 계기로 전해지고 있다. 2년 후 1948년 미 정부는 하와이에 지진 해일 경보센터를 건설하면서 이 센터의 명칭에 영자로 표기한 '쓰나미'를 포함시켰다이후 1963년에 열린 국제과학회의에서 '쓰나미'가 국제 용어로 공식 채택됐다쓰나미의 한자 표기인 '진파(津波)'는 사실 '항구의 파도'란 뜻이다선착장에 파도가 밀려온다는 의미로 일본의 '쇼와시대(昭和時代)' 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여현재에 완전히 정착표기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쓰나미는 한국인들에게는 낯선 용어이지만해일 피해가 잦은 일본에서는 문학 작품과 그림 등에서 종종 표현될 정도로 일반화 되어있다현재 쓰나미는 여러 나라에서 강력한 시대 흐름 등을 일컬을 때에도 자주 사용돼 대표적인 일본식 영어로 자리잡았다.

- 위키백과 -


'쓰나미'가 국제용어로 체택된 해가 1963, 대륙을 덮치는 거대한 파도와 지식인들이 만난 것이다. 태양과 지구핵 사이의 일에 인류가 개입되었다. 쓰나미는 바다를 접하고 사는 사람의 생사를 결정하는 사건이 된 것이다. 목숨이 달린 일이다. 바닷가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은 곧 일류의 일인 것이다.




4. 쓰나미 다루기


용어의 탄생은 일을 만난 표다. 만남이 나눔으로, 나눔이 맡음으로, 맡음이 하기로 이어진다면, 쓰나미는 더 이상 재앙이 아닌 이벤트가 될 것이다. 사람이 죽고 동네가 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모이고 지역이 흥하게 되는 큰 일거리가 될 것이다. 쓰나미로 사람이 죽는 지금을 원시시대처럼 느끼게 될 수도 있다. 인류는 일 머리가 있다. 지금까지의 성공에 비춰 본다면 시간의 문제일 뿐 인류는 쓰나미를 처리 가능한 일거리로 만들 수 있다. 쓰나미 다루기라는 직업분야가 생기는 것이다.




5. 태양


태양이 은하를 한바퀴 도는데 걸리는 기간이 대략 2억년이라 한다. 현재 태양계의 추정 나이는 4568백만년. 이 나이는 지구가 태양을 한바퀴 도는 것을 1년을 했을 때, 지구라는 행성의 태양 한살이를 기준으로 한 것이고, 태양이 은하를 한바퀴 도는 기간을 태양의 1년 혹은 태양의 한살이로 본다면, 태양의 은하 살이는 22번을 넘어 23번째를 향해 가고 것이다. 태양의 은하살이 21번과 22번 사이에 공룡이 있었다. 발생하고 진화하고 번성하고 멸종했다. 마치 지금의 인류가 온 지구를 채운 것처럼 공룡은 번성했었다. 지금은 흔적만 남았다.


태양 해일

다음 23번과 24번의 사이에도 인류가 남아 있을까? 14번 만에 몰아치는 쓰나미를 넘어 2억년만에 오는 쓰나미도 해결할 수 있을까? 2억년을 주기로 오는 재앙의 수준는 14년 주기의 쓰나미와는 비교 할 수 없을 것이다. 바닷가 사람들의 목숨이 달린 것이 아니리라 지구 생명 전체의 목숨이 걸린 것이다. 이번 쓰나미 다루기에 실패한다 해도 다음을 쓰나미 다루기에 도전하는 것도 역시 인류이겠지만, 인류가 공룡과 같은 운명을 맞이하고 전혀 다를 생명체가 도전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 다르다. 성공할까?

해일다루기

구조는 같다. 똑 같다. 14년 주기의 쓰나미나 2억 년 주기의 재앙이나 일의 구조는 같다. 작은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큰 일도 도전해 볼 수 있다. '제대로 한다'는 것은 '구조를 아는 것, 진리를 아는 것, 존재를 아는 것'이다. 일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내기> 만남> 나눔> 맡음> 하기



1. 일이 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신과 우주> 자연과 생명> 인류와 아기가 내는 일이 먼저다

    껍데기만 갑들에 것들에 속지 말자.

2. 만나면 나눌 수 있다. 일은 그렇다. 나눌 수 있다. 아무리 거대해 보여도 결을 따라 나눌 수 있다.

3. 나누면 맡게 된다 맡으면 하게 된다.




월요일.

일요일 다음날이다. 하루, 시간을 지구의 자전 주기로 나눈 것이다. 나누어진 하루를 일곱으로 나눈 것이 요일이다. 나누기가 되고 나면 맡기와 하기는 그냥 된다. 월요일의 태양이 떠오르면 일을 맡은 사람들의 거대한 행렬이 시작될 것이다. 70억 인류가 만드는 거대한 일하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내게 맡겨진 것이 작아도 인류에게 맡겨진 것은 결코 작지 않다. 존재를 보라.



월요일은 갑은 고용주 사장들이고, 을은 피고용인 직장인들이다.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돈에 메어 직장에 묶여 있을 지라도 스스로를 묶진 말아야 한다. 진리를 들으라.



사장 위에 주주가 있고 주주 위에 시장이 있다. 그리고 시장 위에 쓰나미가 있다. 결국 쓰나미가 갑이다. 사장의 명령을 받더라도 자연의 절대 명령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쓰나미는 반드시 오고 인생은 짧다. 구조하라.

건투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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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행을 하는가. 잘 하는 여행이라는 게 있는가?

여행, 미지의 세계로 나가는 설레임이 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겪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할 만한 것이다.
좋은 스펙 중에 세계를 둘러 본 경험, 여행도 꼽힌다. 여행을 잘 하였다는 걸 어찌 알까?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 이야기다. 자신의 여행 이력을 소개하며 한 말 중에 사람도 많이 만나 봤다. 그래서 알게 된 것이(내용이 인상에 남아 기억하는 것이라 김총수 발언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 사람, 별거 없더라는 걸" 느꼈다는 것이다.

내가 면접관이라면 이런 넘 눈여겨 본다. 뭐 대 놓고 이렇게 말 할 응시생은 별루 없겠지만 말이다. 근데 이 느낌이 스펙 잘 쌓은 사람이 풍기는 기상이다.

서울대를 제대로 나온 넘은 이런 느낌을 풍겨야 진짜다. '서울대 별거 아니다', 외국어 제대로 한 넘이라면 '외국어 별거 아니다. 우리말만 하면 누구라도 하면 된다.' 뭐 이래줘야 기본은 한 거다. 학력을 쌓든 경력을 쌓든 입상을 하든 입바른 소리가 아니고 실재 그런 느낌을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이가 제대론 거다. 이건 좋은 경우고

스펙을 무슨 완장처럼 생각하는 넘들이 최악이다. 영어 좀 한다는 게 뭐, 서울대 나온게 뭐, 고시 패스가 뭐, 돈 좀있는게 뭐, 얼굴 좀 이쁜게 뭐란 말인가.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입장권같은 거다. 그 입장권이라는 것도 남의 잔치에 침흘리는 무리 틈에 그대가 있는 탓에 준비해야 하는 입장권이란 것이다. 그러니 난 그런 입장권도 없어 하는 없어타령으로 괴롭거나 우울하거나 급좌절하겠다는 느낌조차 허락하지 마시길 바란다.

스펙 좋으니 연봉도 잘 받아야 하고, 권한도 있어야 하고, 자리도 보장되야 하고, 과거는 묻지 않아 줘야 하고..... 뭐 이런 넘들은 제발 쥐들에게 몰려가 줘야 한다.


 


멀리 여행을 떠나는 것은 영국 파리 자유의 여신상 따위에 감탄하려는 것이 아니다. 여기도 이러저러한 사람들이 업치락 거리고 살고 있구나. 뭐 이 따위들을 보고 느끼는 것은 짐승도 하는 것이다. 바로 거기 지구 반대편에서 내가 떠나온 자리를, 나를 조망하는 것. 그것이 여행의 이유다. 거기서 보는 나,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어찌 보이는 지의 감을 가지고 돌아와야 먼 여행에 시간과 돈 들인 값을 하는 것이다.

영국 파리 별거 없더라. 그래도 영국 파리 보고 와서 그런 느낌을 가지는 것이 좋다. 그러나 뒤산 매바위 위에 올라 담배갑만 해진 집 주변을 보며 느낄 수 있어도 모자랄 것이 없다. 끝장을 보고 돌아와 내 자리에서 굳세게 서서 나를 덮쳐오는 파리들을 풀라스틱 파리채로 다가 과감히 쎄려 줄 수 있다면 훌륭하다.

말을 붙여 보자면, 4차원 스펙. 나라는 개인에 세력이라는 차원이 겹쳐줘야 한다. 목숨처럼 사모하던 스승을 새벽 닭울기 전에 세번이나 모른다 모른다 저 추악한 넘은 모른다하고 도망치고 나서야 문득 알게 될 수도 있고, 친구랑 유학가다 잠결에 목말라 마신 물한바지로 문득 알게 될 수도 있고,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문득 알게 될 수 있고, 세속의 변호사로 잘 나가던 사내가 어쩌다 맡은 시국사건에서 고문당한 초췌한 몰골로 변호사인 자신을 정보기관의 끄나풀로 의심하는 피고인 청년들을 대면하며 알게 될 수도 있다.

무려 70억에 가까운 인류가 좁아진 지구위에서 가쁜 숨을 헐덕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5000만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꾸역꾸역 오늘을 살아내고 있다. 나만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스펙질은 허무하고 위험하다. 망해야 하는 세력의 공범자가 되거나 방관자로 살며 방관수당이나 챙기거나, 독극물로 자식들을 키우고 장물을 창고에 쌓으며 그대의 인생을 허송하게 된다.

깨어있는 시민이 진짜 스펙이다. 깨시라. 4차원 스펙의 세계로 오라. 그대에게 더 나은 스펙을 요구하거든 돌아서 "빠이" 하여 주라. 니들만의 잔치에 낄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하라.

 

 

담(談)

직업상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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