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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아이는 없다.
흔히들 학급에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얌전한 아이를 착한 아이라 부릅니다. 물론 더 나아가 선생님 심부름도 잘하고, 친구를 잘 배려하고 공부까지 잘한다면 정말(?) 착한 아이라고 부릅니다. 동학년 모임시간에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과연 착하다는 뜻이 무엇일까요? 그 아이는 정말 착한 것일까요? 어른식의 표현으로 하면 인격이 훌륭하고 선한 사람일가요?
착한 아이는 없습니다. 내성적인 아이, 남에게 피해를 잘 주지 않는 아이, 현재상태로 친구를 잘 돕는아이(이유가 칭찬을 받기 위해서든, 친구를 돕는 것이 좋아서든...)가 있을 뿐입니다. 초등학교 2,3학년 때만 해도 심부름을 참 잘합니다. 그런데 고학년이 되면 심부름을 점점 꺼립니다. 교사의 특별한 심부름은 잘하더라도 교실봉사같은, 자기에게 맡겨지지 않은 일을 하라고 하면 인상을 찌푸립니다. 이제 서서히 독립성이 증가하고, 합리적인 사고(자기가 싫어하는 그 일을 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없음)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6학년이 학기말에 가까워질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 증가합니다. 5학년때느 선배들(작년 6학년)이 은연중에 통제(멋모르고 나내다간 한대 맞거나, 싫은 소리를 들으니까)를 받았기 때문에 교실 밖을 벗어나면 행동이 약간 위축되었던 것이죠.
착한 아이도 없지만, 못된 아이도 없습니다. 교육 상담사례들을 보면 '되먹지 못한 아이', '나쁜 아이'라는 표현도 곧잘 보입니다. 아이의 대충 어떤 성향인지 알 수 있게 하는 직관적인 표현일 듯 합니다. 그럼 과연 그 아이가 나쁜 아이일까요?
지나치게 방임상태에 놓인 아이, 부모님께 과도한 통제와 감정적인 화풀이를 많이 받은 아이들은 친구들에게 공격적인 아이가 되기 싶습니다. 상대방이 싫다는데도 장난이란 핑계로 계속 괴롭히고 폭력을 행사합니다. 형이나 누나가 너무 잘나서 열등감을 가진 둘째나 형(오빠)이나 누나(언니)에게 권력적으로 눌려서 장난과 신체적 억압에 시달린 동생들, 형제관계가 없는 아이들이 왕따의 주동자가 됩니다. 나쁜 것은 당해도 학습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착하다'고 칭찬하는 것 문제가 되는 본질적 이유는 아이를 '칭찬'에 얽매이게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착하지 않은데 착하다고 하니 혼란에 빠집니다. 또한 '착하다'라고 평가하는 사람이 갑이요, '착하다'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을의 입장이기 때문에 불평등한 관계에서 내려지는 부적절한 표현입니다. 인격을 규정짓는 착하다라는 표현 대신에 '선생님을 도와줘서 고마워', '친구가 욕을 했는데도, 네가 욕을 하지 않고 참아줘서 싸움이 일어나지 않았구나, 네 덕분에 선생님 마음이 편해' 이런식으로 본대로 느낀대로 i메시지 방식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칭찬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칭찬의 역습'이란 EBS다큐나 하임기너트의 교사와 학생사이, 각종 대화법 책에 자세히 나옵니다. 칭찬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합니다. 일례로 작년에 저희반에 수학 잘하는 아이가 있어서 저는 다른 아이들의 모델링을 삼을 겸, 그 아이의 장점을 살려줄 겸해서 'oo는 수학을 참잘하는구나'라는 식으로 칭찬을 했습니다. 문제는 이 아이가 시험공부에서 유독 수학에 많이 매달린 다는 것, 어려운 문제는 잘 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 수학 점수에 특히 목을 맨다는 것, 다른 아이들에 비해 못푸는 문제가 있어도 교사에게 잘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아이는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수학을 좋아하지 않는데 남들이 잘한다고 칭찬하고, 점수가 좋으니까 수학에 어쩔 수 없이 매달리는 것이었죠. 6학년 2학기 말이 다가올수록 수학 실력이 떨어지니 아이가 좌절하였습니다. 수학적 원리로 가르치려고 했지만, 학원에서 하는 문제풀이 위주식으로 학습습관이 고착화되서 교정이 어려웠습니다. 저는 그 아이에게 '문제를 참 열심히 푸는구나', '어려운 문제를 끝까지 풀어내는 것을 보니, 나중에 어려운 일들도 잘 이겨낼 수 있겠어' 라는 방식으로 칭찬했어야 합니다.
착한 아이는 없지만 나쁜 아이도 없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우리가 아이에게 우리가 윽박지르거나, 분풀이식으로 감정을 토해내기, 협박, 비아냥, 부정적인 예언, 인격적인 규정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무정부적 교실상태까지 가지 않도록 담임교사가 적절한 시스템을 마련하고 통제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필요이상으로 아이를 누르고, 반대로 잘못된 칭찬으로 규정지으면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 타율적인 존재,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지나치게 끌려다니는 의존적인 존재로 만들게 됩니다.
이제 다인수 학급 경험한지 일년 반 조금 넘습니다. 그런데 보입니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눌러서 얌전해진 아이는 자기 의지는 꺾이고 강제적으로 눌려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폭발합니다. 부정적인 말과 행동만 눌려진게 아니라 아이의 자율성과 잠재적 성장동력도 눌려있다는 것을. 반대로 교사의 감정적이고 통제적인 방식에 반항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이 아이는 자기만 망가지는게 아니라 친구들도 망가뜨립니다. 그 뿐입니까? 교사의 긍정적인 영향력도 받지 못합니다. 뭐든 되받아치기 때문에 성장의 에너지를 받지 못합니다. 반항심에 복수를 하려고 교사와 반 아이들을 더 괴롭게 만들겠지요.
학급에서 벌어지는 야생버라이티한 극한 문제에 대해
교장 교감도 모든 것을 담임교사 책임으로 보고,
동학년 선생님들도 그것은 그 학급문제로 나몰라라 하고,
학부모는 학교 핑계대고,
애들은 자기 방어하고 담임 선생님 잘못으로 돌리는 상황에서
다인수 학급으로 대표되는 열악한 교육환경과 각종 잡무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담임교사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저도 절대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순간 아이들을 대해야 하고 좋든 싫든 아이들과 1년을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위의 문제들이 해결되어도 교사와 아이들과의 관계의 문제는 남습니다.
선생님께서 아이를 인격적으로 대하기는 참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교사는 훈련되어져야 합니다. 교사역할훈련도, 비폭력 대화법도, 상담기술도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학급 집단의 생리를 이해하고 조절하고 아이들의 불만을 해소하고, 그들의 욕구를 긍정적인 교육활동으로 풀어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대에서 배운 이론적인 교육과정과 추상적인 상담교육으로는 입시위주의 과도한 사교육과 무분별한 대중문화의 홍수 속에서 괴로워하는 아이들을 교육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앞으로 교사역할훈련-비폭력대화법-상담기술에 대한 초등 교사모임이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교육적 방향제시와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아이디어, 다양한 사례들이 쌓여서 자유롭게 공급하고, 그것을 연수로 풀어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대화법을 공부하고 적용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윽박지르고 감정의 그네를 탈 때가 있지만,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재밌는 것은 화를 내고 가르칠 때나 화를 줄이고 가르칠 때나 결과는 비슷하다는 겁니다. 아니 오히려 감정적 말들을 줄이고 가르칠 때가 아이들과의 관계도 원활하고 힘도 덜들고 성취도 높았습니다. 제가 대화법으로 하니 아이들에게도 대화법을 접목시킬 수 있었고, 아이들간 갈등문제해결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현재 학부모님들과 매달 1회씩 대화법을 공부하고 적용합니다. 학부모 상담은 최고라고는 말못하지만 본능적으로 문제이해의 근원적 접근을 하기 때문에 그다지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계속 상담 공부를 꾸준히 합니다.
너무 글이 길었습니다. 정리합니다.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규정하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아이 발달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아이의 현재의 모습은 아이가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 질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아이를 미워하거나 화낼 필요가 없다. 아이 역시 교사의 적절한 교육적 이해와 방향제시가 필요한 독립된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이의 문제행동과 학부모의 편협한 교육방식 문제는 남기 때문에 교사역할훈련, 대화법, 구체적인 상담노하우가 필요하며, 그 역할을 인디스쿨 선생님들의 모임과 결과물 공유라는 초등교육 집단지성의 연대적 활동이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사족-
*교사역할훈련에도 대화법에도 상담기술에도 칼로저스라는 큰 인물로 부터 시작되었음을 봅니다. 그리고 그 제자 토마스 고든과 하임기너트가 꽃을 피우고, 그의 제자들과 그들이 쓴 책을 읽고 영향받은 현장 선생님들이 초등교육 현장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권정생작가(동화의 진면목) 와 이오덕 선생님(글쓰기교육의 선구자)이 한짝이었고, 김용택(아이 문학의 재발견), 백창우(권정생-이오덕-김용택-아이들의 문학을 노래로 승화시킨 음악의 선구자)가 함께 했음을 봅니다.
이제 우리 초등 선생님들이 할 일은 무엇일까요? 갑자기 이호철 선생님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보고 싶습니다.
Written by 이상우
현직 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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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여교사 폭행사건에 대해
(수원 여교사 폭행 - '친구폭행' 지시 부적절한 훈계)
아무리 선생님이 잘못했다고 해도 학생이 주먹질하는 것은 잘못이지요.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학생이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욱해서 대형사고를 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학생이 받는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닙니다. 저보고 고등학교 생활 다시 하라면 차라리 다시 입대하겠습니다. 군대는 안전하게 제대만 하면 끝이지만, 고등학교는 입시에 대한 압박감이 상상을 초월하고, 학교에 학원에 부모님 잔소리에, 친구들과의 알력과 경쟁 때문에 제정신을 유지하기도 어렵습니다.
저도 90년대 초 수원 동원고를 다녔습니다. 별의별 체벌을 다 당한 것도 힘들었지만, 공부에 대한 중압감과 휴일이 거의 없는 등교학습, 친구들과의 지나친 경쟁의식이 사람을 참 비참하게 하더군요. 고등학생만 그런가요? 초등 고학년부터 따지면 적어도 7-8년동안 학원과 입시지옥속에서 허덕이게 됩니다.
문제는 이제 민주화되면서 수직적인 인간관계는 합리적인 선이 아니면 통하지 않으며, 수직적인 인간관계를 권위적이고 감정적으로 사용하면 언제든지 교사가 험한꼴을 당할 수 있다는 겁니다. 지니쌤이 충분히 체벌(비교육적인 일체의 폭력)이 교사에게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글로 남겼으니 읽어 보세요.
제가 초등학교 6학년(86년)때 여자 담임선생님이 심한 장난을 친 남자 아이들에게 맞따귀를 시킨 것을 목격했습니다. 처음에는 웃으면서 장난으로 얼굴을 건드리던 애들이 나중에는 광인의 눈빛을 하고 사정없이 친구 얼굴을 후려쳤습니다. 갑작스런 상황에 담임 선생님도 놀라셨는지 다른 말씀없이 그만 두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때 남자 담임은 숙제를 잘 안해오는 학생을 두 분단 사이의 통로로 지나가게 하고 통로 사이에 앉아있는 아이들이 발거는 것만 빼고, 손바닥과 주먹을 휘두르고, 발길질하게 했었습니다. 한번은 반장을 불러서 마대자루로 생활태도가 고약한 아이의 엉덩이를 때리라고 시켰는데, 그만 반장이 긴장해서 허리를 내리치는 바람에, 맞은 아이가 매우 고통스러워서 팔을 허리에 대고 눈물을 흘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더군요.
2. 어떠한 경우라도 때리지 마세요.
며칠 전 아침이었습니다. 우리반의 예찬이(특수아동)가 아침에 늦게 온데다가 교실에 들어와서도 다시 복도로 나가고, 다시 들어오지 않으니 전담 시간의 다른 반 선생님들이 예찬이 보고 교실로 들어가라고 하고.. 저도 신경이 쓰여서 빨리 들어오라고 했는데... 그래도 안들어오더라구요. 요즘 제시간에 수업참여하기를 훈련하던 중이었는데, 저는 결국 폭발했습니다.
문을 확 열어제치면서
"야, 김예찬!", "빨리 안들어와!!!" "도대체, 언제 들어올꺼야!"
복도 전체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호통을 쳤습니다. 예찬이는 놀란 듯 하더니 문앞에서 멈칫 했습니다. 한 두 시간이 지나서 예찬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계속 제 옆에 있는 것을 피합니다. 제가 좀더 다가가서 얘기하려고 하니 "흥" 이러면서 고개를 돌립니다. 미안하다고, 선생님을 용서하라고 했지만, 예찬이가 놀라서 충격을 받으니 그간 공을 들인 점진적인 교육은 다시 퇴보를 하고, 나의 화를 받은 예찬이도 마음속에 각인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낼 것입니다. 화가 학습이 된거죠.
참 길게도 곁가지 얘기했습니다. 저는 아이의 주먹질을 두둔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교사분이 아이의 화를 돋구었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친구를 때려라? 책을 안가져오면 친구에게 꿀밤을 먹여야 합니까? 뒤에 나가서 서있게 하든지, 책이 없어서 못한 과제를 다음시간까지 해오게 하면 됩니다. 꿀밤에 욕설까지 해서 그 학생이 제대로 교육이 되겠습니까?
여선생님으로서, 고등학교에서, 남자애들 잡는게 얼마나 힘든지 눈에 선합니다. 그러나, 친구의 머리를 때리게 하는 것은 절대 허용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부당결부금지원칙 위반이요, 폭행교사(가르칠敎 부추길唆)에 해당합니다. 인도적으로 절대 허용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가장 비인간적인 처우입니다.
저도 전담시간에 가장 난리치고 선생님께 예의없이 행동하는 아이의 머리를 모자로 십여차례 때리고, 서너차례 머리 앞부분의 머리카락을 쥐어 당겼다가, 아이가 학교를 뛰쳐나가서 5시간 넘게 행방불명되어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릅니다. 그 아이가 참 미웠죠. 5학년때도 한 번 뛰쳐나간 것을 얘기해주지 않은 어머님이 너무 야속했죠. 그러나, 그것이 제가 아이에게 심한 마음의 상처를 남기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야기시킨 것을 정당화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이는 독립적인 인격체이자 성인과 동등한 인간임에도 아직은 발달과정상 미성숙하고, 여러가지 문제행동을 일으킵니다. 그때문에 교사의 적절한 조력이 필요한 것인데, 그 과정중 감정적인 문제로 아이의 인권을 침해하고(저도 하루에도 수없이 침해합니다만) 아이에게 화풀이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교사들 조차도 어렸을 적에 여러 교사에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던 경험이 있고, 이것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녹아져있다가 비슷한 일을 겪게 되면, 한 번 두번 참다가 결국엔 폭발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 감정의 폭풍이 큰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화나는 그 순간'에는 떠올리지 못하고 제어에도 실패한다는 겁니다.
3. 분노는 나의 것
살인범들이 사람을 죽일 때는 그 순간 자기가 사형당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답니다. 사람을 죽이고 나서야 비로소 객관적인 상황에 눈에 들어와 고통으로 몸부림칩니다. 교사를 살인범에 비유하고자 함이 아니라, 인간이 감정의 폭풍에 휘말릴 때의 위험성을 말씀드리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적인 감정 조절 훈련을 해야 하고, 그 분노의 상황을 위에서 내려다봐야 합니다. 자꾸 감정에 휘말리지 않도록 나의 감정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애랑 싸우는 것과 애를 교육하는 것은 종이 한장 차이입니다. 애랑 실컷 싸우고 애를 깔아 뭉개고 나서 '나는 교육을 했다'고 '나는 잘하려고 했다'고 우겨서는 안됩니다. 자기가 프로페셔널이 되지못하고 선무당식으로 아이를 잡아서는 안되는 거지요.
우리반 재성이(전두엽 이상으로 감정통합능력이 떨어짐)는 감정이 폭발하면 걷잡을 수가 없습니다. 온 난리를 칩니다. 그래서 재성이가 인터넷을 찾아서 화를 다스리는 법을 찾아보게 했더니
1. 자신이 화난 것을 인식한다.
2. 심호흡해서 마음을 가다듬는다.
3. 화나는 이유를 생각한다.
3. 문제상황을 전체적으로 조망한다.
4. 화로 인해 내리는 처방을 자제한다(화가 가라앉으면 적절하지 않은 처방임을 깨닫게 되므로)
5. 화가 가라앉지 않으면 문제 해결을 적어도 5분이상 늦춘다.
처음에 1~4번을 재성이에게 강조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그 처방은 바로 저한테 먼저 내려야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1학기때는 맞불로 재성이와 싸웠는데, 요즘에는 제가 감정 조절을 어느 정도 해나가니까 아이의 감정조절 능력도 많이 좋아졌고, 반아이들도 다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분노는 사실 남에게 내는 것이 아니고, 자신한테 내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한테 화를 내는 겁니다. 문제상황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는 능력의 한계를 감정으로 표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노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되고, 자신에게는 후회와 자책을 가져옵니다.
그동안 언론상에 충격적인 모습으로 보도된 교권실추 사례를 보면 거의 7-80%이상이 교사의 원인제공에 있었습니다. 만약 선생님이 업무상 잘못을 했다고 해서 담당업무 선생님이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낄 정도로 선생님께 심하게 대한다면 과연 우리는 참을 수 있을까요? 어찌할 수 없이 참더라도 며칠밤을 괴로워할껍니다.
다인수 학급에, 학생인권은 강화되고 교사인권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열악한 현실, 문제상황속에 매몰되어 교사의 감정적 폭발로 이어져 아이에게 비인격적이고 부당한 대우를 한다면 교사의 예기치않은 불행은 계속될 것입니다.
요즘 언론상의 교권침해 사례유형을 보면서 자칫 교권확립은 더 멀어지고, 교사가 폭행을 자초했다는-교사의 자질 논쟁으로-여론이 기울어질까 걱정됩니다.
Written by 이상우
현직 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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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따 퇴치 대작전
9월에 전학온 은지가 잠시 찐따(왕따와 비슷, 진짜 왕따, 찌질이)취급을 당했다. 전학 온 아이에 대한 텃세라 생각하고 이해하려 했고, 애들 모르는 사이에 중간에 내가 개입해서 잘 마무리 되었다. 그로부터 두달 넘은 지난 주 금요일 은지와 소현이가 자기들이 찐따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수진이와 정은이가 자기들끼리 수근대면서 은지는 원래 찐따고 은지랑 노는 소현이와 몇몇 애들도 찐따라는 말을 퍼뜨린단다.
사실 확인을 위해 저녁 때 용의선상에 오른 5명의 여자애들 집에 전화를 했다. 몇가지 앞뒤가 맞지 않는 증언들이 있었으나 확실한 것은 우리반 2명이 1반 여자애한테 "은지가 찐따", "은지랑 노는 애도 찐따"라서 우리반에 찐따가 8명~11명 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다음날 우리반 애들에게 친구를 찐따 취급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잘못인지 5분간 설교를 한 후 쪽지를 나눠줘서 우리반이나 다른 반에서 자신이 찐따 취급 당한 경험, 자신 외에 다른 아이를 찐따라고 놀리는 아이가 누구인지 써서 내게 했다. 대충 써서 낼 줄 알았는데, 고심하면서 15분 이상 써내려간 아이도 여럿되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각반에 주로 '기쎄고, 말발있고, 공부잘하는 여론주도 여학생집단'으로 구성된 3-4명이 찐따를 판별하는 '규정자'였고, 이 규정자는 각 반에서 약하거나 내성적, 또는 자기들 눈에 비호감인 외모를 가진 애들을 찐따 취급하고, 찐따와 노는 애들도 찐따로 취급한다. 그리고, 각반에 규정자들은 다른 반과 교류하며 다른 반의 찐따가 누구인지 파악한 후 다른 반의 2-3명의 '보급자'에게 비밀을 전제로 '찐따와 노는 애들도 찐따 된다'는 저주 협박주문을 퍼뜨린다. 그러면 순진한 보급자들은 자기도 찐따로 놀림받을까 두려워 찐따로 규정된 친구를 멀리하고, 귀중한(?) 정보를 자신과 친한 친구들에게 알려준다. 그로 인해 찐따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늘어난다. 반면에 2-3명의 찐따 규정자들은 자신들이야 말로 오리지널 찐따임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들의 영향력 행사에 자만심을 느끼고, 찐따들을 보며 재미를 느낀다.
주말에 집에서 애들이 적은 쪽지를 확인하고 우리반에도 찐따 규정자가 있음을 확인했지만, 따로 불러서 혼내지는 않았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스스로 멈추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길이기에. 일일이 불러서 혼내는 것은 인위적으로 잘못을 인정케 하는 강요하는 것이라 교육효과가 낮다.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것이 합리적이다. 당장은 응징하고 싶어도 기다려줘야 그 사이에 애들이 자란다.
월요일에 나는 설명했다. 세상에 나쁜 죄들이 많지만, 사람을 차별하고 소외시켜서 왕따로 만드는 것은 인종차별, 신분차별, 성폭행, 살인죄와 같은 범죄라고...나는 선언했다. 과거는 묻지 않겠다. 그러나 앞으로 '00는 찐따'라고 말하거나 '찐따랑 노는 00도 찐따'라는 말을 퍼뜨리는 친구들은 즉각적인 부모님 면담, '친구를 찐따로 만들지 맙시다' 라는 캠페인을 펼치게 하겠으며, 계속적인 봉사활동을 시키겠다고.
나는 선언했다. 과거는 묻지 않겠다. 그러나 앞으로 '00는 찐따'라고 말하거나 '찐따랑 노는 00도 찐따'라는 말을 퍼뜨리는 친구들은 즉각적인 부모님 면담, '친구를 찐따로 만들지 맙시다' 라는 캠페인을 펼치게 하겠으며, 계속적인 봉사활동을 시키겠다고.
-EBS프라임 다큐 초등 생활 보고서 1부 '차별'-
다음날 화요일 아이들에게 EBS 프라임 다큐 초등생활 보고서 '차별'을 보여주었다. 내용이 재밌기도 했고, 아이들과 바로 직결되는 부분이 많아서인지 43분이란 짧지 않은 시간동안 놀라운 집중력으로 TV를 시청했다. 아이들은 차별은 편견에서 시작되고, 근거없는 편견이 차별을 낳고, 차별로 인해 왕따가 생기고, 왕따당하면서 받는 고통이 얼마나 끔찍하고 괴로운 것인지 역지사지로 조금씩 깨달아갔다.
아이들은 반카페에 소감문을 올렸다. 근거없는 편견에서 왕따가 시작되고, 왕따 시키는 행위가 얼마나 잔인하고 끔찍한 것인지, 그동안 자기가 범했던 잘못을 반성하고 안하기로 다짐하는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김동렬의 구조론에 따르면 마음의 계기판은 존엄-자유-사랑-성취-행복의 순서로 나타난다. 흔히 말하는 자신감, 다른 사람 눈치안보기는 스스로를 존엄하다고 깨닫는데서 시작된다. 왕따가 공부잘하기는 참 힘들다. 인간관계의 고립과 자존감의 부재 속에서 제대로 공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공부 뿐만 아니라 운동이나 다른 교육활동에서도 계속적인 소외로 이어진다. 자신의 존엄을 깨달은 사람이 자유로울 수 있으며, 자유로운 사람이 사랑하고, 자신의 잠재력을 쏟아부어 성취를 이루어 행복에 이를 수 있다.
왕따문제는 인간 삶의 전제인 존엄 자체를 무너뜨리기 때문에 살인죄와 다름 없다. 주로 초등학교 4학년때 부터 서서히 나타나서 6학년이면 거의 고착화 되는 왕따문제는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의 노력으로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
그럼에도 대부분 현장에서 왕따 문제는 원래 있던 것, 처리하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일면 맞는 부분도 있지만, 상당 부분은 패배주의적인 시각에 불과하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여러 왕따 아이들의 변화를 시도했고, 학년이 바뀌어도 나아진 모습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올해 맞은 6학년 왕따 여자아이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문제는 현장에서 왕따 아이가 변하여도 애가 때가되서 변화했으려니 하고, 안변하는는 애는 원래 그러려니 한다는 점이다. 초등교육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이가 스스로 자신감을 갖고 자기 일을 해나가고, 함께 어울려서 일을 해나가면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다. 그럼에도 왕따 문제에 대한 현장 선생님들의 고민과 노하우는 너무 빈약한 듯 싶다.
왕따 문제는 교사가 가장 강조하고, 지혜롭게 애써야 할 부분이다. 올해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내년에 아이는 더 심해진다. 내후년에는 거의 회복 불가이다. 왕따문제 개선을 위한 교사의 관심, 기술적인 노하우, 협력작업 등이 마련되야 한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아이와 부모, 학생과 학생 사이에 있는 교사가 아니면 해결할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이상우
현직 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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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찬이 말문이 제대로 터졌다
3월달에 가장 말을 안하던 아이가 누굴까? 바로 예찬이다. 예찬이는 국어 수학 시간에만 사랑반(특수학급)에 내려가서 수업을 받고 다른 시간에는 우리반에서 수업을 받는다. 전부터 조금씩 말수가 늘긴 했으나 요즘 들어서 예찬이 말문이 제대로 트였다. 우리반에서 나한테 와서 가장 많은 말을 거는 아이가 예찬이다. "선생님, 얘기좀 할게요" 이말이 예찬이 말문의 시작이다. 이제는 우리학교에서 선생님들께 가장 인사를 잘하는 아이가 예찬이다.
내가 한것이라고는 애들이 예찬이를 놀리지 못하도록(바보, 코끼리도 흥<비염이 있는 예찬이가 자주 코먹을 때 하는 소리를 빗댄 말>) 개구쟁이 애들에게 엄하게 한 것과 몰려다니는 여자애들이 예찬이를 빤히 쳐다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예찬이가 달라지기 전에 너희들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는 부탁했다. 예찬이가 달라질 것이니 기다려달라고 했다.
사랑반 선생님과 얘기해보니 예찬이는 선생님이 보채면 오히려 반항을 하지만, 안따라와도 그냥 내버려두고 수업을 계속 진행하면 자연스레 수업에 합류한단다. 지난달엔 6학년 부장선생이 하시는 말씀이 "예찬이 쟤 정상 아니예요?"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소통이 되니까 예찬이는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그리고, 이제는 잘못하면 애들한테 사과도 한다. 그동안 쌓인게 많기도 했다. 그저께는 6학년인 예찬이가 3학년때 자기한테 500원 빌려간 녀석이 있다면서 억울해 했다. 벌써 3년전일인데.. 당장 그녀석을 내 앞으로 데려오겠단다. 예찬이가 지목한 아이는 상범이였다. 상범이는 끌려와서는 자신은 기억인 안난다고 했다. 그래도 예찬이의 상처나 묵은 감정이 치유되어야 더 성장할 것이기에 나는 상범이게 한쪽눈으로 신호를 주어 500원을 예찬이에게 갚게하고, 내가 상범이에게 50%할인 아이스크림을 사주기로 약속했다. 다음날 상범이는 돈을 갚았다.
반애들도 참 고맙다. 지난 10월 중순 전쟁기념관 체험학습에서 모둠별 조사활동시간에 예찬이를 5인조 남자모둠에 포함시켰다. 약간 걱정은 되었지만 20분씩 예찬이를 돌아가면서 살펴보되, 예찬이에게 과도한 관심도 주지 말고(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공격성향이 증가하기 때문), 적절히 교감하면서 넓은 곳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약 1시간 30분 동안 개구쟁이 녀석들이 예찬이를 잘도 도와주었다. 먼발치에서 보니 약간은 힘겨워하면서도 귀찮은 내색하지 않고 참아주었다. 남은 30분 동안은 내가 예찬이를 데리고 있겠다고 하자 얼마나 고마워하던지...
예찬이랑 대화가 어느 정도 통하니까 예찬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금방 알게 되었고, 예찬이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친구들과 생활하면서 어떤 것은 해도 되고 어떤 것은 하면 안되는지 이해하고 행동하는 것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난주 토요일에 사랑반 선생님이 결혼하는 날, 수업시간에 혼자서 공상하던 예찬이가 갑자기 내게 "선생님도 여자 친구랑 결혼해요?"라고 물었다.
순식간에 교실은 왁자지껄한 웃음과 환호, 나에 대한 야유로 뒤덮혔다. 다른 아이들의 확인사살도 이어졌다. '여자 친구가 있어야 결혼하지' 나는 잠시 뒤로 돌아 칠판 쪽으로 몸을 돌리고 허리춤에 손을 올린채 고개를 떨구었다(사실 나도 웃겼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더 커졌다.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후....'
'예찬이한테까지 저런 소리를 들어야 하다니'
사랑반이나 장애인협회에서 체험학습을 갔다온 다음날이면 여지없이 예찬이는 연신 무엇을 먹었고 뭐가 재밌었는지 아침부터 늘어놓기 시작한다. 어떨 때는 수업시간에도 자기 얘기를 늘어놓는다. 그러다가 수업시간에는 다른 얘기 하면 안된다고 하면 금새 "죄송해요, 지금은 금지?" 하며 금새 말을 거둔다. 이제는 자기가 알아서. "그거 일기로 쓸까요?" 하고 되묻는다.
요즘은 가끔 칠판에 스펀지밥 낙서도 하고, 점심시간이나 수업끝나고 나서는 가끔 내뒤로 와서 장난을 치고, 우리반에서 나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내의자에 앉아 몸을 돌리며 씨익 웃음을 보인다. 그동안 눌리고 닫혔던 마음문을 열고 이제 세상과 소통하는 중이다. 체육시간이면 아무리 불러도 친구가 끌어도 정글짐이나 미끄럼틀 위에 올라가있던 예찬이였는데... 어제는 자기를 안끼워줘서 속상했다면서(사실 체육시간에 끼려고 한적이 없었다) 오늘은 대장공을 같이 하겠단다. 공을 잡고 패스는 못해도 상대방 수비를 방해하는 시늉을 하는 것 같았다. 끝까지 경기장에 있던 것은 처음이었다.
자폐증세가 원래 약간 있어서 그런지 얘기할 때 눈을 잘 안마주친다. 요즘엔 슬슬 대화가 되니 예찬아 '나좀 봐라', '나좀 쳐다보고 얘기해라'고 하면 예찬이도 자기 나름대로는 나를 쳐다보려고 하는데 그게 잘 안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도 고민하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예찬아, 선생님 눈에 뭐 들어갔나봐", "예찬아, 선생님 눈에 뭐 묻었니?" 혹은
"예찬아~, 선생님이 만든 돼지코 봐라~"
이렇게 하니 예찬이도 점차 얼굴을 보고 눈을 마주치는 횟수가 늘어나더라.
요즘 예찬이가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지만, 얼치기 담임교사 만난 예찬이도 제대로 고생했었다.
지난 4월초엔가 영어실에 계속 늦게 가는 예찬이에게 오늘은 제대로 교육하리라고 다짐하고 예찬이와 합리적인(?)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예찬이는 화장실로 피하고, 정수기앞으로 피하고... 복도와 교실사이를 빙빙돌았다. 나도 슬슬 짜증이 나면서 오기가 생겼다. 우선 예찬이를 반강제적으로 교실로 끌고 와서 오늘은 꼭 담판을 짓겠다고 마음먹었다. 원래 말수가 없었다고는 하나, 당시 학기초부터 나한테 말도 잘 안하고 피한 것도 약간 서운했는데, 그날은 유난히 떼를 쓰고 자리에 주저 앉아 버리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덩치큰 예찬이를 일으켜 세우려고 안간힘을 써도 안되었고, 나는 드럼채를 가져와서 열셀 때까지 안일어나면 때려줄꺼라며 협박을 했다. 당연히 예찬이는 일어나지 않았고, 드럼채로 소리만 크게 나게 두꺼운 점퍼부분 반복해서 내리쳐도 징징대며 묵비권만 행사했다. 그때 나는 반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예찬이를 바라보며 이렇게 소리쳤다.
"예찬아, 너 잘못한 거, 알아 몰라? 갈꺼야 안갈꺼야? 안가면 혼나. 너 잘못했지?
그때 예찬이가 한 말이 아직도 선명하다.
"당신이 잘못했어!!!" -내게 손가락질까지 하며(이때는 정확히 내눈을 보고....)-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예찬이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난생 처음 반아이에게 '당신'이란 소리에 보너스로 손가락질까지 받으니 머리가 멍했다.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잘 기억은 안나지만 끝내 우겨서 예찬이 팔짱을끼고 겨우 영어실로 보냈던 것 같다.
예찬이는 나의 별이다. 반애들이 때로는 나를 허당 취급하고, 학교에서는 일처리를 잘못하는 교사지만, 예찬이의 변화모습을 볼 때 '나도 잘하는게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내가 더 성숙했다면, 예찬이도 더 발달하지 않았을까 반성하게 된다. 아무리 6학년 애들이 사춘기가 오고 되바라진 행동을 해도 교사가 베테랑이 되면 아이들의 생활에 지나친 참견자가 아닌, 진정한 조력자와 동반자가 될 수 있겠다는 소망을 얻었다.
진정 교사되는 길은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의 관계를 이해하고, 인간과 세상의 어우러짐의 과정을 이해할 때 온전한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 같다.
그날이 속히 오길...
그날을 모든 교사가 함께 하길...
------지난 7월 4일 우리반카페에 쓴 글------------------
예찬이네 놀러가고 싶었다.
예찬이가 집에서도 친구들을 맞이하고, 친구들도 예찬이네 집에서 예찬이랑 함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6년동안 예찬이네 놀러갔던 친구도 없었고, 예찬이가 친구들을 초대한 적도 없었다. 같은 아파트 동에 사는 두 명의 친구도 예찬이네 와본 적이 없다고 했다.
4월에 예찬이한테 친구들이 놀러간다고 하니까 싫어하던 녀석이 어제는 친구 10명이 자기 집에 간다니까 느릿느릿한 걸음이 두배는 빨라져서 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갔다. 친구들이 놀러가도 되겠느냐는 나의 제안을 흔쾌히 응해주신 부모님께 고마웠다.
친구들과 같이 돈까스를 먹고, 이것 저것 얘기도 하면서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머님 말씀대로 예찬도 좋아하고 친구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기쁨이 두배라고 하셨다.
6학년 들어와서 친구들이 예전처럼 예찬이를 놀리는 일이 줄어들었다.
예찬이가 싫어하는 빤히 쳐다보기, 사소한 일로 말싸움하기를 우리 친구들은 잘 하지 않았다.
그러자, 예찬이도 친구들을 꼬집꺼나 때리는 일이 줄어들었다.
자기한테 호의를 보여주는 친구애 대해 예찬이가 오해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친구들이 예찬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니까 예찬이도 달라졌다.
친구한테 사과할 줄도 알고 친구들과 얘기도 한다.
예찬이가 달라지니까 친구들도 달라졌다. 친구들이 달라지니까 예찬이도 달라진다.
무엇이 먼저일까?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처럼 알기 어려운 것일까?
우리 친구들이 먼저 달라졌다.
남에게 뭔가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달라지기로 마음먹은 우리 친구들이 자랑스럽다.
그동안 예찬이는 혼자서는 잘 지내는데, 오히려 친구들의 놀림과 괴롭힘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았고
자기를 방어하려고 하다보니 자기에게 피해를 주는 아이에게 복수를 하거나 선생님께 혼내달라고 이르기 바빴다.
그런데 친구들이 달라지니까 예찬이도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친구들에게 피해주는 일들이 줄어든 것이었다. 친구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그저께는 반을 대표해서 "다함께, 인사"를 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을 이해하기보다, 그 사람의 행동을 문제삼고 그 행동을 고치라고 지시하고 명령한다.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벌을 주겠다고 엄포를 늘어놓는다.
문제의 핵심을 봐야 한다.
문제의 원인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문제의 한 부분만 볼 것이 아니라 문제를 둘러싸고 있는 전체의 매커니즘(일의 원리)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문제로 생각된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있으며, 문제의 이면을 읽어낼 수 있다.
해결책(처방)보다 이해가 우선이라는 생각의 변화가 필요하다.
아직 예찬이가 공부시간에도 코를 너무 자주 풀고, 이동수업이나 사랑반 이동시 소요시간이 많이 걸려서
수업에 5~10분 늦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선생님은 앞으로 이 문제도 잘 해결될 줄 믿는다.
그것은 앞으로 선생님이, 우리 친구들이 예찬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때문이다.
예찬이나 선생님이나 우리 친구들이나 모두 우리 학급의 당당한 일원이다.
서로 약간 다를 뿐, 그것은 개성이고 다양성의 관점으로 이해될 부분이며, 차별이나 배제로 이해될 부분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 친구들이 예찬이가 노력한 것처럼, 앞으로 선생님도 더욱 노력할 힘을 얻는다.
에너지는 외부에서 온다.
그리고 그 에너지를 잘 활용하느냐 못하느냐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예찬이는 지적장애 3급으로 노래하기와 그림그리기를 좋아합니다.
written by 이상우
현직 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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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훈이를 데리고 서울 노들역 본동초등학교 근처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만나러 갔습니다.
애가 긴장을 많이 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낯선 사람을 만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자기가 컴퓨터를 월등히 잘하는 것이 아니라서 창피당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었지요. 집에서 나온지 2시간 반만에 오리님집에 도착했습니다. 만남을 주선하기 전에 오리님도 애한테 무슨 얘기를 해줘야 할지 걱정된다고 말했지만, 평소 말하기 즐겨하는 제가 적절히 질문과 재질문, 흐름 조정을 할테니 걱정 마시라고 했지요.
영훈이의 관심사는 게임 만들기인데 이 분은 게임제작쪽에 계신분은 아니라 약간 염려는 되었습니다. 오리님은 교사인 저보다 너무나 편하게 영훈이를 대해줬고, 영훈이도 무려 2시간 20분간 대화 동안에 한 번도 자리를 뜨거나 딴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수업시간에 낙서하기, 중얼중얼대고 딴짓하기가 일상인 영훈이의 의외의 모습에 제가 놀랐습니다. 수학시간에 전체 동물의 1/2=소의 마릿수 1/3=말의 마릿수, 1/6 = 8마리(돼지의 마릿수)를 구하는 문제를 기상천회하게 분모 3으로 통분하는 녀석. 1/2= 1.5/3, 1/6은 0.5/3으로 통분해서 1.5는 0.5의 세배이므로 8x3=24, 1은 0.5의 두배이므로 8x2=16 이렇게 푸는 녀석이었습니다. 수학을 풀되 교과서 방식이 아니고, 자기 방식대로 풀고, 풀이과정 2-3단계 과정은 그냥 생략하는 녀석이었죠.
물론 자기 식으로 풀다가 망한 적도 몇 번 있었어요. 비례식에서 외항의 곱과 내항의 곱은 같다는 공식을 안외우고 분수로 되어 있는 비례식의 미지수항을 자기식으로 자연수배로 푸니 풀릴 턱이 없어서 시험때 15분 동안 매달리다가 엉엉 울던 녀석. 그러다가 2시간 후 언제 그랬느냐는 듯히 해맑게 웃는 영훈이.
영훈이는 자기가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고, 오리님은 그 궁금증을 적절히 풀어주고 게임제작에 관한 책, 앞으로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줬습니다. 자기가 만든 플래시나 간단한 RPG 게임을 보여주고 조언도 들었습니다.
"게임 좀 제작할 줄 아는구나 하는 정도의 기술은 1년이면 배울 수 있단다. 하지만, 게임 제작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다양한 배경지식을 쌓는거란다. 역사, 신화, 박물관의 유물, 만화, 영화, 지리, 위인전, 자연과학, 무기, 공학에 대한 지식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경험해보는 것이 필요해. 독서도 많이 해야 하고, 상상력을 키울 수 있도록 다양한 이야기도 생각해서 써보고..."
프로그램 제작의 기본은 수학이니까 수학을 열심히 하고, 훌륭한 프로그래머가 쓴 책 들 중에 외국책들이 많으니까 영어도 열심히 해야 해. 그리고 영어가 좀더 향상되고, 네가 궁금한 게 있으면 외국게임회사에 네가 만든 게임을 알릴 수도 있고, 나중에 실력이 향상되서 대학졸업 후 그 회사에서 너를 뽑을 수도 있단다"
영훈이는 빨리 멋있게 게임을 제작하고 싶은 마음에, 3D기술같은 컴퓨터 프로그램 활용기술에만 너무 매달려서 게임에 대한 기반이 되는 외연을 소홀히 했던 점을 정확히 짚어주었습니다. 오리님은 영훈이 수준이 중학생 이상이고, 잠재력도 높다고 칭찬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노량진역에서 3000원어치 떡볶이+튀김+순대 세트를 사먹고 지하철타고 수원으로 내려왔습니다. 오며 가며 서있는 동안 영훈이가 피곤할 법도 했는데 전혀 피곤하다는 말을 안하더군요. 영훈이 어머님 또한 너무 기뻐하셨습니다. 영훈이가 너무 재밌었다고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무수한 얘기를 쏟아냈다고 합니다. 영훈이는 자기가 알아서 중학교는 용인의 기숙 대안중학교에 가겠다고 합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직접 부모님과 방문도 하고 결정한 겁니다.
오늘 어머님과 전화를 하면서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영훈이는 컴퓨터를 잘 다루니 기술부분을 맡고, 재밌는 얘기를 잘 만들어내는 명은이가 스토리를, 만화를 실감나고 재밌게 그리는 강현이가 그림부분을, 과학, 문화와 역사에 관심이 많은 독서광 홍준과 하경이가 제작과정에 자문위원으로, 그림과 글쓰기, 토의에 모두 능한 성하가 총감독을 맡게 하고...
단순 플래시든, 단순 게임이든 자기들이 만들고 싶은 것을 친구들이 함께 협력해서 완성된 한가지를 만들어서 성취감을 느끼고,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는것은 아이들에게 정말 멋진 일이 될 것입니다. 일의 1사이클(동기부여-계획-실행-보상-수정 및 보완)을 경험하지 못하는 문제풀이식 시험은 인간의 능력을 제대로 향상시킬 수 없습니다. 이미 개요가 짜여져있고, 정답이 유도된 틀에 박힌 학습지는 애들에게 도움이 안되죠.
영훈이는 오리님께 명함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교류하기로 한 거죠.
"선생님은 어렵지만, 나는 막내 삼촌이라고 생각해, 프로그래머 동료라고 생각해도 좋고"
"네가 최고의 프로그래머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줄게. 열심히 한 번 잘해봐 나중에 잘되면, 아저씨랑 선생님한테 맛있는 거 사줘야 해~"
수원역에서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영훈이가 제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왜 컴퓨터를 잘 못해요?"
"마자. 나는 영훈이보다 컴퓨터를 잘 못해. 그래도 영훈이를 잘하는 사람이랑 연결시켜 줄 수 있으니 좋잖아. 잘하는 것은 남들이 못따라 올 정도로 잘하면 되고, 못하는 것은 남한테 피해 주지 않을 정도로만 하면 돼"
사실 아이와 아이가 관심있어 하는 일의 전문가와의 만남은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제의 경험은 저의 첫번째 실험이었고, 이제는 수원의 다양한 직업단체군을 조사해서 아이와 해당 일의 전문가를 연계에서 그 직업에 대한 실제적인 이해를 돕고, 그 직업이 정말 아이가 하고 싶어하는 직업인지, 그렇다면 그 직업의 일을 하기 위해선 어떤 과정과 준비가 필요한지 경험할 수 있게 하려고 합니다.
초등교육 함께해요 카페에 올라왔던 어떤 선생님의 글이 아직도 떠오릅니다.
"Y대 사회계열을 다니다 교대에 와서...현장에 오니 교감이 쪼고, 별로 일이 만족스럽지 않다... 대학생 경제 경시대회 입상, 대단히 높은 토익 토플 점수 확보... 행정고시? 로스쿨? 의대? 어떤 선택을 해야 좋겠는지 조언 부탁드려요"
십수개의 리플이 달렸었는데 맨 아래 한가지 리플이 내맘과 똑같았다.
"선생님은 그 능력에 정작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선생님이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부터 고민해 보시고 결정하시라"
정말 공감가는 말이었습니다.
공부를 잘할수록 자기가 뭘 잘하고 뭘 좋아하는지도 몰라요. 글을 써도 선생님 보기 좋은 글, 발표를 해도 교과서적인 대답, 단지 남보다 성적이 우수하고, 부모님이 칭찬과 외적인 보상을 해주는 것에 만족하는 성적 우수아. 그런 아이들이 자라서 위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직 고려 선생님이 나오는 것이죠.
아이가 진정 자신의 잠재력을 계발 할 수 있도록 옆에서 기회를 제공하고 바람을 넣어주는 것. 그것이 교사가 해야할 중요한 책무이고, 대졸자 학부모와 수십만원짜리 학원이 못했던 것을 해내는 실질적 전문성일 것입니다.
written by 이상우
현직 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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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의 신모초등학교 중학년 교사는 숙제를 안해오면 얼굴에 스템프도장을 찍는다고 합니다. 크기가 그리 크진 않지만 그래도 맨눈으로 금방 확인가능하고. 집에 가기 전까지 못지운답니다. 추노를 연상시키는 이러한 행태에 학부모님 한 분이 학교로 찾아가 선생님께 정중히 말씀드렸더니 '교직 경력 20년에 이런 일로 찾아오시는 학부모님 처음이다'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명문대를 나오고 사회생활하다가 교직에 온 수지의 모학교 선생님은 수업을 너무 열심히 한 나머지 2학년 수학 내용을 너무 깊이 심화해서 지도하다보니 못따라가는 애들에게 윽박지르기가 예사고 못하면 복도에 나가서 서있기도 한답니다.
그 외에 화성 병점근처의 K모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은 학기초에 애들 성적이 안좋으면 '그동안 어떻게 지도하셨길래 애가 이지경이냐"고 하신답니다. 학력만 강조하고 애들을 쥐어짜는 스타일입니다.
수원의 W모 초등학교 5학년 담임은 사회성 발달이 늦고 발육이 늦은 아이에게 "나중에 키도 안클 녀석"이라고 폭언을 했습니다. 애가 하도 말을 안들어서 그랬다지요. 애가 선생님을 놀린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러나, 내막을 들여다보니 그 아이는 자기의 잘못된 생각에 확신이 있었을 뿐, 선생님을 약올리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 주변에 아는 사람들한테 들은 얘기고, 기억이 다 안맞을 수도 있겠으나, 믿을 만한 분이고 여러번 제가 확인했기 때문에 사실에 가깝습니다. 물론 저는 오히려 전달과정에서 와전되었길 바랍니다.
체벌이 없다고 애들이 잘 자라지 않습니다. 체벌이 없어도 아이들을 두렵고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너무 많습니다. 오히려 교사가 무감각하게 일상적으로 범하는 잘못들이 아이들을 힘들게 합니다. 공부좀 못하면 어떻습니까? 인내심을 가지고 지도하시는 것은 좋지만, 아이의 자존감을 뭉개면서까지 성적 끌어올려서 뭐에다 쓸까요? 잠깐 성적 반짝 오른다고 애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잃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럼에도 선생님들은 위에서 언급한 비인격적 처방에 대해서 대수롭게 여기지 않거나 그 정도는 담임 선생님이 알아서 할 문제로 치부하기도 합니다. 체벌과 성추행은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지만, 그외에 본인이 범하는 비교육적인 행동들은 관행처럼 허용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동료 선생님들도 그것이 문제가 있다고 해도 섣불리 말하지 못하며, 이러한 잘못은 크게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교육에 왕도가 없고, 선생님도 충분히 실수할 수 있지만,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교정콤플렉스에 빠져서 지나치게 아이의 생활에 개입하고, 반드시 아이가 잘못한 사실을 인정하게 만들려는 고정관념에 빠진 선생님이 많습니다.
뭐, 장난으로 애가 크게 기분 나빠하지 않으면, 충분한 신뢰가 있으면 특정 잘못에 대해 얼굴에 약간의 낙서(?)를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일상에서 자주 나타나고 벌이라면 그것은 문제가 큽니다.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입니다. 얼굴은 사람의 인격과 개성의 대표인데 그 얼굴에 스템프 도장이 웬말입니까?
숙제 안해오면 학교에서 끝까지 해서 보내는 것도 필요합니다만, 때로는 봐줄 수도 있어야 합니다. 학원 숙제는 꼬박꼬박해가면서 학교 숙제 안하는 것이 밉긴 하지만, 알아도 넘어가줘야 애들도 숨통이 트입니다.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과 숙제하는 시간 빼면, 애들이 집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많아야 3-4시간에 불과합니다.
어느샌가 교직에서아이들의 정서와 자존감은 무시하고, 과제완수와 규칙준수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늘고 있습니다. 왕따나 일방적인 폭력문제, 위험한 장난처럼 심각한 문제행동은 정말 따끔하게 혼내야 하지만 모든 규범을 지나치게 준수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만 됩니다.
저도 인간인지라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혼낼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심한 경우 아이들에게 사과를 합니다. 공개적으로 혼내기보다 개별적으로 불러서 혼내야 애도 덜 기분나빠합니다. 혼내기만 하는 것으로 한계가 있는 이유는 인간은 잘못때문에 혼낼 때보다 잘하는 것을 칭찬받을 때 잘 변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장황한 설교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필요한 얘기는 고장난 스피커처럼 매번 강조해야 하나), 선생님이 자신을 존중해주고 사랑해주고 믿어줄 때 변합니다.
통제와 명령으로 아이가 변하는 것은 자발성을 전제로 하지 않고 즉각적인 효과에 매달리는데 반해, 이해와 존중으로 아이가 변하는 것은 자발성을 전제로 하고 , 중장기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스스로 변할 할수 있다는 대한 자신감은 다른 영역에 까지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저는 최소한 수학 못 푼다고 윽박지르지는 않습니다. 1년차 때 화내고 그랬는데 효과도 없고 생각해보면 화낼 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공부로 성공할 수 있는 아이들이 15%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그 중 몇 십 퍼센트는 대기업에 들어갔다가 1년 안에 그만둡니다. 적성도 찾아보지도 않고, 관련 일에 관심도 없다가 남들 좋는 말만 듣고 안정된 직장에 들어가니 자기에게 맞을 턱이 없지요.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문제행동을 어떻게 하면 고칠까하고 고민하지만, 그것은 출발자체가 잘못되었 습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행동의 원인을 찾는 겁니다. 1분만에 찾을 수도 있고, 1년이 지나서야 찾을 수도 있습니다. 기다려보고, 관찰하고, 그 아이 입장이 되어보고, 반친구들한테 물어보고, 다른 반 친구들한테 물어보고, 학부모들한테 물어보고, 작년 담임 선생님, 그 전에 담임 선생님께 물어보고, 계속 고민하고 다시 생각해 보면서, 책도 찾아보고 주변에 교수님같은 교육전문가나 상담가에게 조언을 받아야 겨우 알 수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희반에 신경정신과와 관련된 약 먹는 아이가 둘 입니다. 특수아동도 있습니다. 틱장애 있는 아이도 있습니다. 학기초에 왕따 어린이였던 애도 있습니다.
6년간 인사도 제대로 안하고 친구들에게 놀림받는 스트레스에 친구들을 공격하고, 얘기도 안하던 지적장애 2급 아동이 보는 선생님들마다 인사하고 친구들에게 '미안해'라고 말하는데 3개월 걸렸습니다. 특수반 선생님의 역할이 제일 컸습니다. 계속 아이의 생활에 대해서 서로 얘기해주고, 쪽지로 알려주고, 궁금한 점은 서로 물어보고, '얘가 이러이러한 이유는 뭘까' 고민했습니다.
학년 부장 선생님이 '제가 원래 저런 얘였던가', '혹시 정상아 아냐?'고 반문하십니다. 5학년때 잘못을 지적하는 선생님 말씀에 절대 승복안하고 집에 가라면 몇차례나 집에 갈 정도로 소문난 아이도, 문제는 선생님께 있었지 아이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그 선생님은 아이와 싸운 것이지 아이를 교육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이해하고 기다려주지 않고 고치려고만 했습니다. 아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선생님이 받는 스트레스는 점점 커가고 스트레스 탓에 무리수를 쓰게 됩니다.
선생님의 무너지는 권위와 동료선생님의 시선, 부모님의 기대에 대한 부담때문에 문제행동의 교정에만 매달리니 상황이 더 악화된 것이지 요. 저도 2개월 동안 윽박지르고 부모님께 동의받고서 매질까지 했다가 존중을 바탕으로 대화속에서 필요한 정보는 제공하고, 아이 입장을 이해하고, 기다려주니 1주일에 2-3번씩 애들과 싸우던 녀석이 두달 동안 1번도 안싸웠습니다.
덕분에 학교 업무도 늦고, 일처리도 깔끔하지도 않으며, 제멋대로 학급을 방만하게 운영한다고 핀잔듣던 제가, 반애들의 정서가 안정되고 자신있게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잘 표현하니까 그 부분에서 만큼은 인정을 받습니다.
요즘 우리 아이들은 과잉과 빈곤의 양극화속에 살고 있습니다. 교육은 모든게 과잉입니다. 학교 수업도 과잉, 학원숙제도 과잉, 부모님의 잔소리도 과잉, 교육도 아닌 티비시청과 인터넷질도 과잉입니다.
그런데, 교사와 아이의 대화빈곤, 공부하는 방법의 터득빈곤, 부모와 자녀간의 대화기술빈곤, 운동 빈곤, 자연과의 교감 빈곤, 문화와 예술에 대한 관심빈곤, 무엇보다 존중받는 관계성의 빈곤이 제일 큽니다.
체벌은 나쁩니다. 이제는 필요악이 아니라 사라져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교권을 회복할 수 있는 장치들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며, 체벌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대하는 비인간적인 말과 행동, 교육방법 (인간존중의 한계를 넘는 벌포함)을 없애야 합니다.애들이 다 변한다고 말씀은 못드리겠습니다. 인디 상담실에서 나오는 스펙타클한 사례를 보면, 정말 저는 새발의 피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확실히 큰소리와 처방보다는존중과 이해가 효과가 큽니다. 제발 아이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말은 최대한 줄여서 없애시고, 비인간적인 행동은 하지 맙시다. 그래야, 애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감을 갖고 자라납니다. 공부요? 주변에 공부 열심히 해서 잘 된 친구 얼마나 있는지 살펴보세요.
기본실력 쌓기는 중요하지만, 질릴 정도로 쓸어담고, 주워 먹이는 교육은 아이의 다른 재능조차 말살합니다. 물론 추가적인 수업제공이 아이의 정서와 다른 재능을 말살시킬 것인지, 자존감을 향상시키고 공부하는 힘을 키워줘서 아이의 재능과 시너지를 일으킬 수 것인가에 대한 결정은 전적으로 교사의 안목과 열정으로만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다시 베이직으로 돌아봐야 할 것은
1. 인격존중에 어긋나는 교육적 처방들을 없애고, 인격존중의 문화를 만들자
2.문제의 처방찾기가 아닌, 원인파악과 계속적인 이해노력이 문제해결의 중심이라는 겁니다.
덧붙여 생각할 것은 문제로 본 것이 사실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의심부터.
3. 내가 혹시 아이를 교육하는 건지, 아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아이와 싸우는 건지...
스트레스를 덜 받고, 내 감정을 조절하는 여유를 가져야 비교육적인 처방을 안내립니다.
" 인간적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십대와 통하는 대화기술의 머릿말 중에서-
written by 이상우
현직 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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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반에 왕따 여자 아이가 있습니다.
2년간 누적 왕따였습니다. 그 아이는 7년동안 베프가 없습니다. 어머님이 내성적이시고, 어렸을 때 너무 엄하게 하셨던 것이 원인입니다. 애들은 약한 애들, 자기 눈에 별볼일 없는 애들은 귀신같이 찾아내서 괴롭힙니다. 혐오스런 별명을 붙이고 폭언과 폭력, 가혹행위를 일삼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반에 왕따가 있다면 변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2년 동안 이 아이가 말하는 것을 들어본 아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친구가 물어봐도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어렴풋이 끄덕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얼굴에 미소가 보입니다. 2년간 발표를 안하던 아이가 2달간 2번 발표를 했습니다.
지난 주 상담주간에는 어머님, 아버님 다 오시라고 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자리에 앉았습니다. 1시간 20분간 얘기를 했습니다. 어머님도 아이가 마음문을 열고, 인간관계를 넓히기 위해 대화법 책 읽으시기로 했습니다.
저도 같이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요즘은 제가 농담하면 여느 애들처럼 웃습니다. 2년간 왕따였는데, 지난 두 달동안 우리반 아이 중에이 아이에게 바이러스라고 놀린 아이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교우관계 조사해보니 이 아이가 싫다고 쓴 아이들이 과반이 넘습니다. 아직까지는 애들이 말을 걸기 전까지 먼저 말하지 않습니다. 반에서는 아직도 애들 뒷담화를 하면서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4공주가 활개를 칩니다.
4공주들이 따로 따로 찢어져서 다녔으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0%입니다. 그래도, 가능한 찢어놓습니다. 부모님들께도 너무 어울리지 않도록 해달라고 전화를 드립니다. 왕따는 변합니다.
먼저 교사가 변해야 합니다.
아이의 마음이 안정될 수 있도록 하고, 선생님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선생님께서 자신에 대해 기대를 갖고 있음을 깨닫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얻게 해야 합니다. 자신도 마땅히 존중받아야 될 존재임을 자각하게 합니다.
다음으로 학부모가 변해야 합니다. 아이에게 윽박지르거나 아이를 방임해서는 아이가 안변합니다. 문제학생 뒤에 문제부모의 상관관계는 경험적으로 7~80%정도는 됩니다. 부모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명확하게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합니다.
교사가 자기 자식을 부정적으로 본다고 오해할지도 모르나, 어쩔 수 없습니다. 차근차근이든 직설적이든 아이의 정확한 상태를 알려야 합니다. 그러면서 정보를 나누고 협력해야 합니다. 부모가 조금씩이라도 교육되어야 합니다. 부모의 노력없이 아이가 변하지 않습니다.
교사가 변하고 부모가 변해도 애들이 변하지 않으면 왕땅 어린이는 변하지 않습니다. 교사가 변하듯, 애들이 그 아이에게 먼저 다가가며 부담을 덜어주고 마음문을 열도록 해줘야 합니다. 교사가 다른 애들을 배려하고 존중하면, 애들도 왕따 어린이를 배려하기 시작합니다.
편한 인사부터 시작해서, 모둠활동에서 의견 나누기 등, 작은 것 부터 실천할 수 있습니다. 왕따를 괴롭힌 아이는 호되게 혼을 내야 합니다. 왕따 아이에게 하는 장난은 장난이 아니라 폭력 그 자체입니다. 장난이었다는 말을 한 번은 넘어가 줄 수 있지만, 두 번은 안됩니다.
교사가 변하고, 부모가 변하고, 반친구들이 변한 다음에 아이에게 조금씩 변화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 주변사람들이 먼저 변한 이유는 그래야 그 아이에게 변화를 자연스레 요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상태, 얼굴표정, 말걸기, 행동하기, 글쓰기 등 다각적인 부분에서 아이는 변할 수 있습니다.
인내심과 지혜를 요구하는 치유과정
이러한 노력들은 고도의 인내심과 지혜를 요구하는 거대한 치유과정과도 같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인간이 인간다운 대우를 받으면 스스로가 변해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선배 선생님들께 많이 듣는 말이,
"쟤는 원래 그랬어요. 부모는 더 해요, 말이 안통해요"
"괜한 기대를 걸었다가는 선생님만 기운빠지고 상처받을 꺼예요" 였습니다.
작년에 6학급 전교왕따였던 저희반 3학년 왕따 아동이 활발하게 반의 구성원으로 되는데 3개월 걸렸습니다. 2학년 애들한테도 무시당했고, 무표정에 수업시간에는 일절 말을 하지 않던 아이였습니다. 다행히 저학년이라 왕따가 고착화된 것은 아니고. 집에서는 명랑한 아이였습니다. 열등감이 컸던 아이였는데 반친구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6학년 아이가 변하는 것은 3학년 아이보다 몇 배는 힘든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도시의 큰 학교에서는 이미 소문이 나있고, 교육환경도 팍팍하니까요.
앞으로 아이와 실제로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5개월 정도입니다. 2년간 맡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듭니다. 1년 맡고 중학교 올려보낸 후 더 후유증이 클 수도 있다는 주변 선생님들의 조언도 들립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다릅니다. 인간다운 대우를 받았을 때, 인간답게 소통하는 방법을 알고 실천해 보았을 때 아이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겁니다. 제작년에 체구가 유난히 왜소했던 6학년 아이도 거친 중학교 생활을 잘하고 있습니다.
그때 서툴었지만 1년 동안 부대끼며 소통하고 배려하고, 방방이 같이타고 떡볶이 사먹고 물고기 잡고 나무 열매 따라 다니면서, 아이가 많이 성숙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졸업후 전화를 해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정말 힘들면 선생님이 바로 달려가서 도와주겠다고 하니까
"돈뺏고, 귀찮게 하는 애들 있는데, 그래도 견딜만 해요"
"제가 알아서 할 수 있어요. 어떨 땐 그냥 넘어가고 피할 때도 있고, 화낼 때도 있고
심하면 선생님께 말씀드리면 되요" , "그래도 친한 친구도 있고 학교 생활 재미있어요"
아직도 갈길이 멉니다.
왕따가 왕따에서 벗어난 사례를 저는 듣고 싶습니다. 잘될 것 같았는데 잘 안된 사례를 저는 듣고 싶습니다. 왕따 문제를 잘 이겨내신 선생님들과 교류하고 싶습니다.
따돌림 당한 어린이가 중, 고등학교 가서 어떻게 되었는지, 따돌림에서 벗어났던 경험이 있던 아이가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따돌림 당하는 아이가 없는 학교가 현실이 될 것을 믿습니다.
written by 이상우
현직 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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