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 교육 실험실/정의란 무엇인가?   article search result : 1

유병진 판사 이야기


우주적 정의?



판사가 어떤 판결을 내릴 때 시대적 정의를 초월한 지구적 정의, 내지는 우주적 정의를 이뤄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각종 소액사건심판이 넘쳐나는 지금의 사법부에서는 더욱더 보기 힘든 일이라 할 수 있다.

정의, 아니 '우주적 정의' 는 별로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면밀한 고찰을 해보면 뻔히 답이 나온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범법자라도 인간인 점을 이해하면 말이다. 무조건적인 관용을 베풀자는 얘기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남을 완전히 제거해버리는 것은 그 남에 자신이 기대고 있음을 망각하는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부분을 잘못 이해하면 떡검도 너그럽게 인정하라는 말로 오해할 수 있겠으나, 그건 아니다. 맥락이 그렇다는 말. 요령처럼, 수학공식처럼, '남' 이란 단어에 색검 떡검 넣어서 공식대입하여 답안 만들면 안된다는 거다. 정의는 최소한 인간미가 넘치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 판결이라는 것도 인류공동체가 진보하는 방향으로 맞추어진다면 언제든 다시 그 정의로움 때문에 지금처럼 회복하기 어려운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다시 되돌려지지 않겠는가?

아래 글은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9.28 서울 수복 이후 서울지방법원에 근무했던 어느 판사가 자신이 내린 판결에 대하여 술회한 내용의 일부이다. 이 재판에 적용된 법령은 [비상사태 하 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으로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비상사태 하의 특정 범죄들에 대하여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유기 징역에 처하고 
② 재판은 항소를 허용하지 않는 단심제로 진행하며 
③ 1인의 판사가 재판을 담당하여 반드시 40일 내에 판결을 선고해야 하고 
④ 판결에서 증거의 설명을 생략할 수 있다는 것 등 이었다. 



나는 여기서 소위 비상사태 하에서 발생했던 한 절도 사건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수 없다.




법률의 노예가 되지 말자


피고인은 당시 17,8 세 되는 두 명의 중학생이었다. 두 학생은 모두 독실한 가정에서 자라난 자제들이었으며, 대단히 순진하게 보였다. 이 두 학생의 범죄 사실은 다음과 같았다. 6월 28 일 오후 2시경, 두 학생은 밖으로 놀러 나가 경찰 책임자의 집 앞을 지나다가, 인민군들이 그 집의 가재 도구를 실어 내 트럭에 싣고 떠나는 것을 목격했다. 


열린 대문을 통해 집 안을 쳐다보니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두 학생은 문득 호기심에 끌려 그 집마당으로 들어서서 방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인민군들이 미처 실어 내가지 못한 양주 몇 병과 비눗갑, 기타 일용품 둥이 여기저기에서 눈에 띄었다. 그 물건들을 본 두 학생은, “야! 우리도 이것을 가져가자! 이까짓 것쯤 가져간다고 누가 뭐라겠니?" 라며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20 여 일에 걸쳐 경찰로부터 검찰청을 거쳐 재판소에까지 넘어온 사건이었다. 법률상으로 볼 때 그 학생들의 행위는, 비상시국에 편승한 소위 '비상사태 하의 절도' 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러면 아무리 관대하게 처분을 하더라도 징역 10년에는 처하여야 할 것이었다. 과연 두 학생에 대하여 그런 처분을 해야 할 것인가?

소위 절도란 사람 없는 집에, 혹은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들어가 물건을 훔쳐 내는 것이다. 그 두 학생의 행위가 범죄 의도의 측면에서 그다지 악질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절도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건만, 이 경우는 비상사태 하의 절도이기 때문에 사형이나 무기 징역,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라는 중형에 처하게 되어 있었다.

그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아마도 사회가 혼란해지면 온갖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이 클 뿐만 아니라, 그것이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고 생각한 나머지, 그런 범행을 미연에 완전히 봉쇄하기 위하여 “알겠지? 물건을 훔치면 10년 이상의 징역이야” 라고 경계하려는 의도에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본건 범행자들에 대해서도 10년 형을 선고해야 하는가?

아니다!

아무리 그런 규정과 요청이 있다 할지라도, 나는 그 정도의 중형을 과할 수는 없었다. 나는 법과 현실 간의 너무나도 큰 괴리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실로 법에 사로잡혀야 할 지경이라면 아니 법률의 노예가 될 지정이라면 나는 판사직에서 떠나 버려야 한다.

이러한 고민은 또 다시 재판의 목적과 법률의 준수 간의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는 데 이른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법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아니 법을 무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재판을 통해 하나의 규범을 창조하는 것이다. 이윽고 나는 무모하게도 무죄의 판결을 하였던 것이다.





조봉암 선생 1심 재판




1958년 조봉암 선생 1심 재판의 재판장이었던 유 판사는 "조씨 등이 북의 지령을 받고 이에 호응했다거나 간첩과 밀회했다"는 등의 공소사실은 인정되지 않는다며, 간첩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국가보안법 위반과 불법무기 소지만을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이 판결은 당시 큰 파장을 일으켜 "용공판사를 타도하라"는 시위대가 법원 청사 안으로까지 난입하기도 했으며 유 판사는 결국 그해 말 법관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그는 2년 뒤,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조씨가 받았다는 돈을 북한이 보내왔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전혀 없었다" 며 "내가 선고한 징역 5년이라는 것도 마음 아픈 판결이었다. 그 판결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고 말했다. 



기술자의 덕목


도대체 법은 어디로부터 나온 것인가? 뭐 법은 그냥 도구일뿐, 법적용은 기술자의 덕목일 뿐이다. 기술자 무시하는 발언아니다. 중요한 기술임에는 분명하고, 그 기술적용에 논리성과 사건 분석력, 판결문 구성력 등등이 요구되는 것이 사실이다. 모두 그럼 무엇을 하는데 쓰는 것인가? 법은 다분히 그 존재 자체가 인간에 대한 애정에서부터 나왔다.




인류공동체를 해하는 무리들을 엄중히 판결하여 처벌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무리들에게 존엄함을 보여줄 수 있는 , 즉 한편으로는 범죄행위에 대한 분노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범죄자에 대한 애정을 보여줄 수 있는 판사는 작금의 시대에 반드시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광기에 가까운 여론의 압력속에서도 유병진 판사의 판결문은 귀감이 될 수 있는 판결이라 하겠다. 몇천 건의 넘쳐나는 시대에 야합하고 정치에 부화뇌동하는 판결과는 질이 다른 것이다. 특히 삼성판결, 검찰의 기강해이 등으로 사법부의 본질이 의심스러운 이때야 말로 더욱 더 빛을 발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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