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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을 보고
‘질의 관점’이냐 ‘입자 관점’이냐? 구조론은 ‘질의 관점을 얻어라’고 말한다. 그것은 팀의 관점이다. 팀으로 보면 대중이 싫어하는 캐릭터인 낸시랭, 강의석, 한비야도 팀에 꼭 필요한 선수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좀도둑질의 달인과 성대모사의 달인을 식객으로 거느렸던 맹상군의 구도계명과 같다.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골치 아픈 괴짜나 사고뭉치라도 팀의 관점에서 보면 다 써먹을 데가 있다. 명심하라. 우리는 팀이다.
당신이 감독이면 어떤 선수를 모아 팀을 꾸릴 것인가? 유능한 감독은 말썽쟁이선수, 괴짜선수, 피부색이 다른 선수도 잘 다스려낸다. 능력이 있는데 성격이 더럽다는 이유로 쫓아내는 감독은 역량이 없는 거다.
동기부여로 풀 수 있다. 인간이 실패하는 이유는 타인과 비교하는 콤플렉스로부터 동기부여 되기 때문이다. 야구선수들이 연봉협상때 ‘자존심 세워달라’는 괴상한 요구를 하는 것이 그렇다. 그게 입자 마인드다. 질의 마인드로 바꿔주면 된다.
뛰어난 감독은 팀의 관점을 주입하는 방법으로 외부와 비교하지 않고 내적인 동기부여에 성공한다. 김병현이 넥센으로 온 것은 그런 면에서 동기부여가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팀으로 보면 김병현은 고참 중에서도 주장급이다. 넥센에서 김병현은 단지 야구만 할 수 있는게 아니라 그 이상의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고향팀 감독으로 온 선동렬 감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른 곳도 아닌 고향팀이니 팀의 관점에서 접근하기가 편하다. 선수단 장악이 더 쉽다. 그렇다면 문제아 최희섭도 간단히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지난해 초 리더십 없는 최희섭에게 주장을 맡긴 것이 잘못이었다. 팀과 융화되지 못하고 헛도는 바퀴가 된 것이다. 이런건 차동장치로 간단히 해결된다. 차동장치의 유성기어는 겉도는게 오히려 잘 도는 것이다.
문제 안에서 해결하려 드는건 바보들의 방식이다. 문제에 고여있는 에너지를 빼버리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최희섭을 붙잡아놓고 인성교육시키려 든다면 최악이다. 성격 그대로 두고 필요한 때 써먹는게 맞다. 최희섭 대 선수단의 내적 갈등구도를 코칭스태프 대 선수단의 외적 긴장구도로 변경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유능한 리더는 끝없이 새로운 긴장구도를 세팅하는 방법으로 기존의 갈등구도를 밀어낸다.
면모일신하고, 분위기 바꾸고, 환경을 바꾸고, 목표를 바꾸고, 선수들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려놓는 방법을 쓴다. 무엇보다 입자 마인드를 극복해야 한다. 입자 마인드에 빠져 있으면 자신을 사건에 개입시킨다.
대중이 연예인을 바라보는 관점도 그렇다. 연예인에게서 모범을 기대하고 롤모델을 찾으려고 한다. 팀이 아닌 자신에게 뭔가 플러스 되는 것을 기대하는 태도. 바보다. 연예인은 감독도 아니고 선수도 아니고 기껏해야 응원단장 정도다. 연예인 역시 팀의 일원일 뿐이다.
대한민국이라는 팀에 보탬이 되는가를 생각하라. 연예인은 사고를 쳐서 우리 사회를 긴장시키는 역할이다. 얌전한 연예인은 보탬이 되지 않는다. 전혀다. 필자는 일관되게 사고치는 문제 연예인을 옹호해 왔다.
사고뭉치 괴짜들이 우리 사회의 내부 상호작용을 늘려 건강한 긴장을 조성한다. 미꾸라지가 든 수조를 폐사없이 운반하기 위하여 메기를 넣어두듯이. 차의 흔들림과의 대결구도를 메기와의 대결구도로 바꾼다.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을 보이는 적과의 싸움으로 바꾼다. 드러나지 않는 잠복한 긴장을 겉으로 드러내어 미리 폭파시키는 것이 고수들의 할 일이다.
영화 ‘부러진 화살’을 보는 관점도 그렇다. 팩트로 보면 이는 단순히 판결에 불만을 품고 판사를 테러한, 혹은 위협한 사건이다. 죄질이 결코 가볍지 않다. 판사에 대한 위해는 이탈리아 마피아나 하는 짓이다.
그렇게 팩트만 보자는게, 질이 아닌 입자로 보려는게 진중권류 쓰레기들의 마인드다. 표면이 아닌 이면을 봐야 한다. 왜 김명호 교수는 석궁을 쐈을까? 간단하다. 누구라도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는 피아노줄을 보면 건드려서 소리내고 만다.
그곳이 대한민국의 가장 민감한 성감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김명호 교수 자신은 지극히 보수적인 인물이다. 영화에 묘사되고 있듯이 ‘법대로’만 주장하는 사람이다. 진중권이 ‘팩트대로’만 주장하듯이.
이는 유아적인 발상이다. ‘뭐뭐만 하면 돼.’ 하고 자신의 역할을 좁히는 것이 전형적인 보수꼴통 마인드다. 히딩크는 그렇게 뒷짐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다했다. 그는 철저히 개입했다.
히딩크는 그라운드에 물 뿌려놓기 등의 꼼수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명박의 꼼수에는 우리쪽의 꼼수로 되받아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제대로 된 감독이라면 ‘나는 뭐뭐만 할거야.’ 하고 제 역할을 제한하지 않는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를 20여년 지켜본 바로는 감독이 ‘우리팀 아무개 선수가 잘해줘야 이길 수 있어.’하고 말하는 팀은 항상 지더라. 양승호 감독이 ‘이대호가 홈런을 쳐야 이기지.’ 하는 것 보고 질 줄 알았다.
어떤 틀을 정해놓고 끼워맞추는 식의 사고를 하면 잘못되고 만다. 반대로 밑바닥의 에너지 흐름을 조율하는 사람은 승리한다. ‘법은 아름다운 거야. 법대로만 하면 다돼.’ 이거 유치발랄한 보수꼴통의 사고이다.
진보적인 판사라면 법대로만 판결할 것이 아니라 판례를 바꾸어 잘못된 법이 바뀌도록 재촉해야 한다. 법을 고정시켜 놓고 인간이 법에 행동을 맞춘다면 마음은 편하겠지만 그 사회는 낙후해지고 만다. 활동반경이 축소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몸에 옷을 맞추는게 아니라 옷에 몸을 맞추는 것과 같다. 노인네들은 몸이 고정되어 있으므로 옷에 몸을 맞출 수 있지만, 자라나는 청소년은 몸이 매일 변하므로 옷에 몸을 맞출 수 없다. 옷에 몸을 맞추자는 생각은 결국 노인네의 편의주의에 불과하다. 진중권의 팩트지상주의 역시 먹물편의주의에 불과하다. 뭐가 팩트인지 대중은 모른다. 진중권이 ‘이게 팩트다’고 외치지만 대중은 믿지 않는다.
대중이 모르는 것을 가지고 어떻게 하든 대중은 불신한다. 대중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다. 그것은 에너지의 절대량이다. 밑바닥에 에너지가 고여있고 건드리면 터진다. 대중은 그것을 보고 열광한다.
김어준은 폭탄냄새를 맡는 능력이 있다. 어디에 에너지가 고여 있는지 알고 있다. 그것을 건드리는 방법이 어떠하든 상관없다. 어떻게든 도화선에 점화만 해주면 기폭되고 만다. 그 다음은 한나라당의 자체팀킬.
정리하자. 인간은 변한다. 어린이의 몸이 자라듯이 사회도 자란다. 법도 변해야 한다. 법과 인간 사이에도 끝없는 긴장이 조성되어야 한다. 긴장을 거부하고 법에 혹은 사회의 어떤 고정된 룰에 인간을 맞추려는 자가 보수꼴통이다.
팩트로 보면 김명호 교수는 단지 사법부에 테러를 한, 혹은 테러에 준하는 시위를 한 인물에 불과하지만 본질로 보면 김명호교수는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부분, 가장 민감한 성감대를 본능적으로 건드려버린 것이다. 이는 의거다.
이는 인간의 진화를 추동하는 본능 때문이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무엇인가? 에너지가 한 곳에 고여 있다면 그것이 사회의 리스크다. 그 에너지는 잠복해 있다가 어느 순간에 폭발한다. 사회를 위태롭게 한다.
그 지점을 본 사람은 어떻게든 그것을 건드리게 되어 있다. 누가 그것을 건드리는가? 괴짜가 건드리고 고집불통이 건드린다. 신해철, 김구라, 김제동처럼 캐릭터가 센 사람들이 그것을 기어코 건드린다.
우리 사회는 그런 메기들을 양성하고 격려해야 한다. 맹상군이 좀도둑 달인과 성대모사 달인에게도 역할을 주었듯이 우리 사회는 김명호 교수같은 사람에게 박수를 쳐주어야 한다. 모두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을 나태하게 만드는 일체의 시도에 필자는 반대한다. 보수의 본질은 ‘두려움’과 ‘귀찮음’이다. 생각하기도 싫고 판단하기도 싫다는 거다. 그러나 우리는 끝없이 생각하고 판단해야 하며 기존의 판단을 뒤집어야 한다.
왜?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니까. 나는 묻고 싶다. 왜 사냐고? 세상을 바꿀 생각이 없다면 도대체 당신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행복한 돼지로 만족하겠느냐고. 당신이 지구로 떠나올 때의 미션은 무어냐고.
제대로 된 판사라면 법과 다른 판결을 해서 잘못된 법이 고쳐지도록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실제로 법원은 일정부분 그렇게 하고 있다. 판사의 판결은 공동체와의 부단한 상호작용이어야 한다.
영국이라면 아예 헌법이 없다. 그러므로 법대로가 불가능하다. 법은 판례의 집합이며 그 판례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중요한건 우리 사회가 밑바닥의 에너지를 어떻게 관리하는가이다.
에너지가 고루 분산되지 않고 한 곳에 고여 있다면 위험하다. 온갖 차별과 편견과 왜곡과 꼼수와 조작이 적절한 에너지의 분산을 막는다. 에너지의 동맥경화를 일으킨다. 그 사회는 병들고 만다.
그 에너지를 건드려서 터뜨려버려야 한다. 그 팽대한 압력을 소진시켜야 한다.
이 참에 보수와 진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법대로만 주장하는 김명호교수와 팩트대로만 주장하는 진중권의 공통적으로 인간의 능동적인 역할을 줄인다는 것이다.
“다 필요없고 딱 요것 하나만 하면 다돼!”
이걸로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속인다. 갓바위에 3,000배만 하면 서울대 합격 문제없어. 1억짜리 굿 한 번만 하면 운수대통해. 기도만 하면 하느님이 다 용서해줘. 십일조만 내면 다 용서돼. 면죄부야.
진보든 보수든 이거 비겁한 거다. 용기있게 정면승부 해야 한다. 아슬아슬한 긴장상태로 나아가야 한다. 잠시도 핸들에서 손을 떼지 않는 운전기사처럼.
흔히 법치주의를 보수라고 하지만 법대로 했다면 고승덕이 폭로했듯이 한나라당은 전원 구속이다. 속임수다. 그들이 법치타령을 하는 이유는 자기들은 빽이 있으므로 다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법을 흉기로 쓸 의도로 그렇게 말하는 거다. 법치 좋아하네. 본질에서 보수와 법치는 아무 관련없다. 진정한 보수는 무엇일까? 그것은 없다. 보수라는 것은 일종의 환상이다. 보수가 법치를 들고나오는 것은 그것이 자기네의 유일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진보가 데모하다가 감방을 많이 갔기 때문이다. 지들은 감방에 안 가니까 그런 소리가 나오는 거다.
한나라당 비대위에 참여하는 이상돈이 원칙보수를 자처하지만 구실일 뿐 엄밀한 의미에서 ‘진짜 보수’는 지구에 없다. 서구유럽 어느 나라에도 없다. 그것은 가상의 어떤 이미지다. 신기루 같은 것이다.
진정한 보수 같은 것은 원래 없다. 보수는 단지 진보의 실패에 기생할 뿐이며 진보와 반대로 행동할 뿐이다. 그러므로 보수를 결정하는 것은 진보다. 진보가 데모하다 감방을 많이 갔기 때문에 법치타령 나온거다.
결국 보수가 있는게 아니라 보수심리가 있다. 보수심리는 어떤 판단하고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을 기피하는 거다. 고정된 기준을 정해놓고 인간을 거기에 때려맞추려는 거다. 보수심리로 보면 진중권과 김명호는 태생이 같은 과다.
진보 역시 어떤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딱 이것만 하면 진보라는 그런거 없다. 진보는 진리와의, 역사와의, 시대와의 끝없는 상호작용 그 자체다. 진보는 아슬아슬한 긴장상태를 유지하면서, 팀플레이를 강조하면서, 크게 세력을 길러가면서, 외부 환경과 조율하면서, 모든 변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모든 사회의 차단된 벽을 허물면서 역사의 물길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거다.
◎ 진보 – 시대와의 끝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아슬아슬한 긴장상태를 유지한다. ◎ 보수 – 어떤 고정된 틀에 의존한다.
구조론의 정답은 이러하다. 아슬아슬한 긴장상태를 유지하라. 어떤 경우에도 조종간을 손에서 놓지 말아라.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늘려가라. 괴짜 포지션도 때가 되면 필요하니 아껴두라. 어느 하나의 절대적인 기준에 맞춰놓고 판단과 결정을 그것으로 대리하게 하며 편안하게 가려하다가 리스크가 증폭되어 망한다.
그렇다. 결국 진보가 요구하는 것은 더 많이 생각하고, 더 깊이 판단하고, 새롭게 결정하고 더 아슬아슬하게 판을 가져가는 거다. 쫄지 말고 가는 거다. 쫄면 벽을 등지고 싶어 한다. 슬금슬금 한쪽 구석으로 간다. 구속에서 고립되어 말라죽는다.
미국 공화당은 중도적인 롬니보다 더 보수의 구석에 있는 깅리치를 선택하고 있다. 치열한 긴장을 견디지 못하고 맘편한대로 정한 거다. 깅리치가 맘은 편하다. 보수인 점은 확실하니까. 복음주의 기독교세력과의 내부갈등은 줄여주니까.
이러한 사정은 한나라당이 상대적으로 중도적인 포지션의 이명박보다 더 구석에 있는 박근혜 카드를 내뽑다가 망하는 것과 정확히 같다. 레이건은 경직된 보수꼴통이 아닌척 해서 성공했다. 부드럽고 유머감각있는 척 했다.
결론.. 경직된 진보나 경직된 보수의 본질은 한 마디로 쫄았다는 거다. 그들은 자신의 역할을 줄이는 결정을 내린다. 자신을 되받아치기 전문의 수동적인 존재로 만든다. 그 결과 자신에게 역할은 주어지지 않는다.
인간 위에 법이나 제도를 놓고 인간을 수동적인 존재로 만드는 일체의 시도에 나는 반대한다. 인간의 활동반경을 줄이는, 바운더리를 좁히는 일체의 결정에 나는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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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 대 민주통합
한나라당 비대위가 정강에서 보수를 빼자니까 박근혜가 펄쩍 뛰었다는데 참 잘 하는 짓이다.
국민의 균형감각으로 보면, 여론조사에 나타나는 진보와 보수의 성향은 언제나 50 대 50이다. 논객들이 말하는 기준과 상관없이 유권자 자신이 시소의 탑 포지션을 차지하려는 원리에 의해 여론조사는 이렇게 된다.
정강에 보수를 박아놓는다는 것은 50을 버리고 간다는 것이다. 국민의 반을 버리고 정치를 하겠다는 것은 뭐 정치포기다. 그들은 정치를 포기했으므로 조만간 실제로 정치를 하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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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든 사회든 마찬가지지만 마지막 카드는 절대 뽑지 말아야 한다. 왜? 뒤가 없기 때문이다.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다음 단계의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카드는 위협용, 엄포용, 판 관리용이다.
박근혜가 보수 포지션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는 것은 결국 한나라당이 그 뽑지 말아야 할 마지막 카드를 쓰기로 했다는 것이다.
무엇인가? ‘이명박은 버리는 카드, 박근혜는 마지막 카드.’ 이게 한나라당의 성공방정식이었다. 원래 고수는 버리는 카드로 승부하는 것이다.
무엇인가? ‘중도실용 이명박으로 함 밀어보고 안 되면 보수정통 박근혜다.’ 이 공식이 국민에게 먹힌다는 거다. 실제 사실이 어떻든 국민에게는 그런 인상을 줘야 한다. 이명박이 사실 꼴통이지만 그건 비밀에 붙여야 하는 거다.
한나라당이 승리하려면 버리는 카드인 어중간 정몽준을 내밀고 마지막 카드인 정통보수 박근혜를 뒤로 밀어두어야 한다. 물론 이는 게임의 법칙으로 본 각자의 포지션이 그러하다는 것이며, 지금 한나라당은 이명박이 조져서 인기가 없기 때문에 어떤 카드를 내밀어도 지게 되어 있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게임의 법칙이다. 이기고 지고를 떠나 수순이 어떤 것이냐다. 박근혜를 당선시키려면 박근혜는 중도실용에 현실파, 이회창이 정통보수의 마지막 카드. 이렇게 판을 디자인하는게 공식이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무리다. 게임의 법칙 상 박근혜가 뜨려면 그렇다는 말이다. 박근혜가 결단을 내려 과감하게 보수정강 포기선언을 하고 자신은 미국 민주당 오바마와도 손이 맞는 중도실용에 합리적인 노선이라고 대외적으로 표방해야 한다. 실제로는 꼴통이지만 그건 비밀에 붙여야 한다.
말을 안해서 그렇지 사실은 자신이 진정한 햇볕정책의 계승자라고 사기치고 보수정통 이회창으로 뒤를 받치게 해야 그림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변신도 본인이 능력이 되어야 하는 거고 100단어로는 할 수 없다.
백단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사람을 내세우고 본인은 뒤를 받치는 거 뿐이다. 버리는 카드 정몽준을 중도실용에 합리적 개혁이미지로 화장해서 전면에 나서게 하고, 박근혜는 보수정통 간판달고 뒤를 받치는게 맞는 한나라당 공식이다.
어차피 산통 다 깨졌지만 게임의 법칙은 그렇다. 확실한 것으로 뒤를 받치게 하고 버려도 좋은 모호한 것으로 승부하는 것이 맞다.
각설하고 구조론이 말하는 바는, 국민은 누구를 찍든 그 사람의 다음 카드를 보고 선택하는 거지 현재카드를 보고 선택하는건 아니라는 거다. 다음 단계의 계획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나 이거 할테니 표달라’ 이건 아니다.
‘나는 일단 요기까지만 하고 빠질 것이며 다음에 또 누가 있으니까 그 사람을 보고 표 달라’고 하는게 맞다.
김대중 대통령 때, 충청사람은 다음 카드인 김종필, 이인제를 보고 찍어주고, 영남사람은 다음 카드인 노무현, 김정길 등을 보고 찍어달라고 한 것이며 노무현 대통령은 정동영, 정몽준, 고건, 이해찬이 그 다음 카드 역할을 한 것이다.
반드시 뒤를 받칠 다음 카드가 있어야 한다.
진보 쪽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인물이 다음 카드가 되는 경향이 있고, 보수 쪽은 상대적으로 수구꼴통이 다음 카드가 되는 경향이 있다. 왜인가?
진보쪽은 기본적으로 새정치를 실험하므로, 실험하다가 안될 경우를 대비해야 하니까 안정감있는 고건류가 다음 카드가 된다.
◎ 문재인(공격수)으로 치고 안철수(수비수)로 뒤를 받치도록 하는게 공식이다.
보수쪽은 진보가 실험하다 망쳐놓은 것을 설거지 하는 포지션이므로 진보쪽과 약간이라도 말이 통하는 카드로 승부를 보고, 그래도 안될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여 보수꼴통이 다음 카드가 되어 뒤를 받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박근혜의 이번 결정은 자신이 다음 카드가 되겠다는 결정인 것이다. 국민들에게는 이심전심으로 그렇게 전달되었다.
‘이 언니 겁이 많구나.’
이미 읽혔다. 근혜는 평생 다음 카드나 하다가 가는게 맞다. 팔자가 그렇다. 박근혜 인기가 절정에 달해있던 2년전에도 필자는 ‘박근혜? 아마 링에 올라오기도 벅찰걸.’ 하고 웃었다. 왜? 포지션이 나쁘다.
최근 문재인의 인기는 안철수 덕분이다. <- 요런건 고수만 아는 거다.
나쁜 포지션에 있다가도 주변에 어떤 인물이 나타나면 그 덕에 갑자기 뜨는 수가 있다. 노무현 후보에게 실망했다가 정몽준이 뒤를 받친다고 하니 단번에 떠서 이회창을 꺾어버린 것도 그렇다.
인물이 아니라 인물의 조합이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결론은 팀이다. 팀이 강해야 한다. 우리는 팀이다. 인물에 잡히지 말고 팀의 관점에서 사고해야 한다.
(그동안의 박근혜 인기는, '뭐하냐? 근혜 니가 명박이 좀 관리해조라.' <- 이런 희망이 반영된 것임. 박근혜 개인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이명박 박근혜 팀'에서 공격수 이명박이 워낙 헛발질을 하니까 수비수 박근혜의 역할을 높이려 한 것임.)
이런 구조는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관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요즘 민주통합당이 뜨니까 그리로 다 들어와야 되는게 아닌가 하고 말하는 사람 많은데 그게 다 결과론이다.
고수는 절대 자신이 가진 전력의 100퍼센트를 발휘하지 않는다. 100은 물론 200까지 발휘하고 싶은 욕심이 굴뚝같아도 참아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200석 정도는 기본으로 잡숴버리고 싶겠지만 참아야 한다. 밥상을 차려준다고 덮썩 그것을 받아버리면 안 된다. 물고기가 미끼를 물때는 타이밍이 아니다. 물고 달아날때가 타이밍이다. 조금 더 생각해야 한다.
구조론의 마이너스제어 법칙에 따라 들어오는 표는 절대 건들지 말고 빠져나가는 표를 못나가게 단속해야 한다. 2002년 노무현 후보가 들어오는 영남표 잡으려고 손벌리다가 03시계로 망한 예가 대표적이다. 반대쪽에서 다 빠져나갔다. (구조론에 따르면 플러스는 반드시 외부에서 누군가 푸시를 해줘야 함. 자가발전 안 됨. 그래서 팀이 필요.)
전쟁에서 이기는 법칙은 하나다. 예비병력을 투입하는 것이다. 100의 자원이 있다면 30으로 싸우고 70으로 뒤를 받치는게 정석이다. 궂은 역할, 미끼 역할을 할 사람은 항상 있어야 한다.
지금 당장 선거를 한다면 참 좋겠지만 선거는 4월이다. 그 사이에 무슨 돌발변수가 나타날지 모른다. 민주통합당은 120석, 통합진보당은 40석 정도로 배분해야 역풍이 안 일어난다.
만약 다 통합해서 200석을 노린다면? 되면 좋겠지만 그런 도박은 안 하는게 맞다. 반드시 역풍 분다. 떼거리가 많으면 약점이 생겨나고 급소가 드러나고 돌발상황 일어난다. 언제라도 저쪽이 쪽수가 많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둘로 나눠져 있기 때문에 원심력이 작용하여 저쪽이 쪼개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뭉치면 저쪽도 뭉치고, 뭉치는 모드로 가면 쪽수 많은 쪽이 유리하다. 손해보는 짓은 하지 않는게 맞다.
지금은 부자몸조심이다. 욕심을 줄이고 확실히 이기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은 개혁적 진보표와 한나라당에 실망한 보수표를 다 잡는 것이다. 그러려면 양동작전이다.
구조론으로 보면 권력은 항상 진보(상대적)가 잡게 되어 있다. 심지어 이명박 조차도 ‘왕조꼴통 김정일보다는 낫지.’ 이거 강조해서 된거다. 여기서 진보는 누구와 비교하느냐에 따라 상대적인 개념이다.
그러므로 좋은 비교대상을 가진 쪽이 유리하다. 신통찮은 사람도 좋은 비교대상이 있을 때는 확 뜨는 것이다. 심지어 김영삼도 ‘문민정부’ 운운하며 ‘나쁜군부’와 비교하는 수법으로 떴다.
◎ 더 나쁜 비교대상의 부재가 박근혜의 약점. 그 비교대상의 존재가 문재인의 강점.
◎ 지금은 이명박의 푸시에 의해 표가 들어오는 흐름. 들어오는 표는 안 건드리는게 맞고 표가 도로 빠져나갈 때 못나가게 막기 위해서는 양동작전이 필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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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꼼수의 본질은 권력이동
만유는 시스템이며 시스템은 방향성을 가진다. 에너지를 투입하면 양의 되먹임이 일어나서 무조건 그 방향으로 가속된다. 그러므로 두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 에너지가 있는가? 둘째 방향이 옳은가?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나머지는 상관없다. 바람이 어느 쪽에서 불든 배는 앞으로 간다. 눈 감고 가도 된다. 일이 안 되는 것은 작전을 잘못 짜서 그런 것이 아니라 원초적으로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다. 에너지를 만드는 것은 모순이다. 모순이 없으므로 못 가는 것이다. 이명박 5년간 무수한 모순이 생겨났다. 우리에게 에너지가 생겼다. 그렇다면 이제 방향만 잘 잡으면 된다. 방향은 곧 주도권이다.
먼저 치고나가는 것이 있어야 한다. 무슨 뜻인가? 모르는 사람들이 어쩌구 저쩌구 하며 묻어가기 전략을 쓰지만 다 헛소리라는 거다. 나꼼수가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답은 없다. 왜?
답은 이명박이 만드는 것이지 김어준이 만드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꼼수를 띄운 것은 첫째가 내곡동, 둘째가 디도스다. 둘 다 가카의 작품이다. 작품 중에도 예술이다. 나꼼수의 미래는 이명박에게 물어야 한다. 그 외에 오세훈 뻘짓, 나경원 생쇼가 있었지만 역시 작은 이명박들이다.
이명박이 모순을 만들었고 거기서 에너지가 나온다. 그렇다면 대양에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그 바람에 돛만 펼치면 배는 가는 거다. 그런데 모르는 자 있어서 돛을 이리 돌려라 저리 틀어라 하고 무식한 훈수를 늘어 놓는다.
중요한건 방향이다. 과연 김대업의 팩트가 옳았는가? 김대업에게 묻지 말고 이회창에게 물어라. 대통령 꿈 꾸면서 그는 아들 군대 보내려고 어떤 노력을 했는가? 그 에너지는 백 퍼센트 이회창이 만들어준 것이다. 과연 광우병 쇠고기 촛불항쟁이나 천안함 이슈에서 무엇이 팩트인가? 중요한건 이명박이다. 팩트는 중요하지 않다. 이명박이 에너지를 보태줬다는 점이 중요하다. 다 이명박 작품이다. 이명박 아니고 누가 그런 멋진 쇼를 연출하겠는가?
그렇다. 진중권 역시 반은 조중동이 만들어준 권력을 즐기는 것이다. 어쨌든 언론에 보도되기 때문에 떠드는 거다. 왜 언론이 진중권의 발언을 중계해줄까? 명심하라. 그 에너지의 반은 조중동에게서 나왔다.
나꼼수의 미래는 오직 특종에 달려있다. 그 특종이 바른 특종인지 오보인지는 상관없다. 왜냐하면 그 특종의 가치는 오직 이명박이 만들기 때문이다. 이명박이 정치를 잘하면 나꼼수가 어떤 모함을 해도 먹히지 않는다. 나꼼수의 힘은 그것이 현장에서 먹히기 때문이고, 그것이 먹히는 상황은 전부 이명박이 만들어 주었고 지금도 새로 만들고 있다. 아니면 벙커에서 뭐하겠는가? 열심히 만들고 있다. 김어준과 나꼼수를 먹여살릴 양식을.
중요한건 방향성이다. 방향은 공간에서의 방향이다. 공간을 장악하는 것이 진짜다. 나꼼수의 역할은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고 기성권력을 그 신권력의 하부구조로 편입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종이신문 보는 독자들을 정보에서 소외시켜 쪽팔리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끼리 웃고 떠들며 즐겁게 논다. 그들에게는 “니들과는 안놀아.” 하고 소외시키고 배제하는 것이다.
그쪽을 버리고 이쪽으로 투항하게 하여 이쪽의 하부구조로 편입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권력이다. 나꼼수는 권력이며 사회의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나꼼수의 메시지는 “밥통들아 그쪽이 아니고 이쪽이야!”하고 줄 세우는 것이다.
방향성은 공간개념이다. 공간은 장(場)이다. 장은 통째로 움직인다. 장의 의미는 팩트가 옳거나 그르거나 하는 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내부에서 상호작용의 밀도를 높여서 장을 확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공간을 넓히기다. 공간을 넓히면,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 거기서 난장을 치든, 생선을 팔든, 야바위를 하든, 깽판을 치든 그럴수록 군중은 더욱 모여든다. 그리고 그 모여든 군중의 숫자에 비례하여 시장개설자는 이득을 취한다.
그러므로 김어준이 잘하든 못하든 공간이 확장되어 이득이 된다. 잘해도 이득이고 잘못해도 이득이 된다. 그게 치고나가는 방향성이다. 잘하면 좋다구나 하고 모여들고 못하면 구경났네 하고 모여든다.
인터넷이 처음 생겼을 때 너도 나도 인터넷붐에 편승했다. 그때 판단을 잘못해서 사업이 망한 사람들도 경험이 축적되어 경력직으로 취업했다. 왜 방향성이냐 하면 그 방향으로만 가면 잘못해도 이득이 되고, 잘해도 이득이 되므로 방향성인 것이다. 그러므로 다들 그쪽으로 가게 된다는 거다.
서부로 가서 금을 찾으면 대박이 나고, 금을 못찾으면 금광업자들을 대상으로 술집을 열면 되고, 그것도 안 되면 광부들에게 청바지를 팔아먹고 뭐 그런 거다. 그쪽으로 가기만 하면 무조건 먹는 것이 방향성이다. 이때 뒷사람이 앞사람을 밀고간다. 눈감고 있어도 떠서 간다.
심지어 거지를 해도 상거지로 대접받는다. 목 좋은 자리를 차지하여 구걸로만 깡통을 그득 채운다. 나꼼수를 듣기만 하면 그걸 듣지 못하는 조중동 바보들에 대해 우월하다는 자부심을 얻는다. 그런 거다. 집단 내부에 새로운 질서가 생기면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파이가 커지고 전체에게 모두 이득이 되며 손해보는 자는 없다.
방향은 주도권이다. 우리가 앞서가며 혁신하고 그들이 쫓아오게 하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를 모방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때 새로 가담하는 무리들이 계속 에너지를 조달하여 먼저 온 그룹을 위로 밀어올린다. 이때 전체가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판단은 필요없다. 생각도 필요없다. 저절로 가속된다.
구조를 알아야 한다. 왜 MS가 돈을 벌었을까? 표준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 게임개발자들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뒤에 온 사람들이 앞에 온 사람들에게 더 돈을 보태줄수록 더 이익이다. 서로 돈 내려 한다.
이게 방향성이다. 결을 따라가는 것이다. 효율성을 만드는 것이다. 김어준이 나꼼수를 엉성하게 하기 때문에 그만큼 따라하기가 쉽고 그 때문에 뒤에 와서 모방하는 사람들이 김어준을 위로 밀어올린다. 뭐 간단하다.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는 게임의 룰을 설계하는 것이다. 그 룰은 간단할수록 좋다. 결국 모두가 참여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방향성이다. 우리가 하면 조중동도 따라하고 한나라당도 따라하게 되는 것, 그것이 방향성이다.
만약 그대가 사바나에서 백만 마리의 사슴떼를 이끄는 두목사슴이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절벽쪽이 아닌 평원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좁은 길 말고, 넓은 길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따라올 수 있다. 조중동도 따라오고 딴나라도 따라오고 모두가 따라오게 방향을 잡아야 한다.
어려운 코스 말고 쉬운 코스로 방향을 잡는 것. 재미없는 코스 말고 재미난 코스로 방향을 잡는 것. 우연적인 요소도 살짜쿵 끼워주는 것. 어중이 떠중이도 따라오게 하는 것. 공간을 최대한 수용하는 것.
돌아가는 판 전체에 긴장을 불어넣는 것. 구석구석까지 소리가 들리게 하는 것. 상호작용의 밀도를 높이는 것. 그렇게 발동을 걸어주는 것. 거기서 승부가 결정된다. 빌게이츠가 그 방법으로 집금에 성공했던 것이다.
우리에게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에너지 - 이명박이 만들고 있다. 둘째는 방향성 – 우리끼리 잘 놀고 조중동은 안끼워주며 따시키는 방법으로 그들의 자원을 빼와서 이쪽의 하부구조로 박는다. 권력이동으로 질서를 재편한다.
그 외에는 닥쳐!
P.S
탑을 차지하고 주도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정도는 누구나 안다. 그런데 막상 닥치면 다들 바텀으로 몰려가 있다. 탑은 혼자 안 되고 반드시 세력화 되어야 한다. 팀을 만들고, 협회를 조직하고, 의회를 열어야 한다.
모르는 사람들은 대통령이 윗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의회가 먼저다. 먼저 의회를 구성하고, 그 의회에 의원들이 모여 헌법을 만들고, 그 다음에 대통령이 선출되는 순서다. 대통령은 입자고 의회가 질이다. 사람들이 입자가 되려는 노력은 열심히 하지만 질을 형성하려는 노력은 안 한다. 입자는 쉽다. 누군가 챔피언 먹고 있으면 도전해서 물리치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 된다. 그러나 토대의 시소가 움직여서 도로아미타불이다.
결국 우리가 질을 형성해야 한다. 풀을 형성해야 한다. 의회를 구성해야 한다. 세력화 되어야 한다. 그 방법은 먼저 창안하고 우리끼리 즐겁게 놀면서 다른 사람들이 이를 모방하게 하는 것이다.
아류를 생산하는 것이다. 아류가 난립하여 무질서해지면 표준에 대한 니드가 나타나서 원조의 위상이 강화하고 저절로 질서가 형성된다. 이 코스를 아는 것이 집단의 방향성을 아는 것이다. 김어준이 그것을 안다. 지금 김어준이 하는 것들이 한때는 진중권도 했던 거다. 즐겁게 놀면서 조중동을 치는 컨셉이다. 지금 그는 독설가 컨셉으로 바꿨다. 마이너스 전략에서 플러스 전략으로 갈아탄 것이다.
큰 세력의 문지기가 되기를 포기하고 작은 닭의 대가리가 되기를 열망하고 있다. 질에서 입자로 포지션을 바꾼 거다. 왜? 세력은 팀으로 가능한데 그는 혼자이기 때문이다. 왜 그는 팀을 이루지 못할까? 성질이 더러워서 그렇다. 진중권만 그런게 아니라 그쪽 동네는 다 그렇다. 걸핏하면 분열된다. 왜? 본드가 없어서 그렇다. 팀을 이루려면 접착제가 있어야 한다. 보수는 돈이 본드다. 진보는? 진보의 강력본드는?
김어준은 그 본드가 있다. 접착제가 있다. 그의 끊이지 않는 웃음이 접착제요 본드다. 유머와 위트가 본드다. 그게 있어야 팀이 되고 세력이 된다. 유머, 웃음, 여유, 포용력, 창의성이라는 본드가 있어야 질은 이루어진다. 팀은 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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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국회통과 이후
날치기 하면 정권 망하는 법인데 딴나라당이 대놓고 날치기를 했으니 아마 망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설치해 둔 지뢰에 여럿 날아갔다. 이명박 꽈당. 박근혜 꽈당. 손학규 꽈당. 홍준표 꽈당. 이명박이 쥐대갈을 굴려 FTA 비준여부를 총선에 붙여놓고 야당분열을 노렸으면 피곤할 뻔 했는데, 자폭해주어서 다행. 이명박은 FTA에 대한 국민지지가 높아서 날치기가 총선호재라고 믿은 모양이다.
정치의 역설은 역할을 하면 오히려 응징을 당한다는 거다. 그러므로 필자가 노상 강조하는 바는 ‘다음 카드’가 있어야 한다는 거. 다음 카드가 없으면, 패를 다 까보이면 공적이 있어도 팽 당하고 만다. 노무현 대통령이 행정수도 주고 뒤통수 맞은 것이 대표적인 예. 선물을 줄듯말듯 애를 태우면 말을 잘 듣지만, 주면 바로 등돌린다. 유권자는 ‘행정수도 유치는 노무현이, 건설은 불도저 이명박이.’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정치를 잘해서 짤린 경우는 많다. 반면 정치를 완벽하게 조져서 장기집권한 경우도 많다. 김정일처럼 완벽하게 조지면 완벽하게 장수한다. 잘하면 짤리는 이유는 역시 다음 카드의 문제 때문이다.
구조론의 기승전결 법칙대로다. 앞선 사람이 기를 하면 다른 사람이 승을 맡고, 그 다음 사람이 전을 하고, 그 다음 사람이 결을 한다. 기승전결의 진행단계마다 역할이 다르다고 믿는 거다. 집값이 오르면 한나라당 찍고, 집값이 내리면 민주당 찍는 것도 그렇다. 참여정부 때 집값이 오르니 이득본 사람들이 모두 한나라당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보기좋게 그들을 배반했다.
정치의 역설, 독재자가 나라를 위기에 빠뜨리면 국민은 불안해지고, 불안해진 국민은 보수적으로 되어서 독재정권의 장기집권을 가능케 한다. 그래서 독재자가 나라를 망치는 것. 망쳐야만 이득을 보니까.
반면 유능한 정치인이 나라를 부흥하게 하면 국민들 기가 살아나고, 기가 살아난 국민들은 터무니없는 오버를 해서 나라를 부흥시킨 정권을 도리어 파멸시키곤 한다. 가난할 때는 불만이 없던 사람들이 좀 살게 되면 불만이 늘어난다.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
대중의 잠들어 있는 욕망을 일깨운 죄를 추궁 당한다. 옛날에 자주 쓴 표현이지만, 물에 빠진 사람 옷보따리는 당연히 찾아줘야 하고 차비까지 챙겨줘야 한다.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아니면 애초에 건들지를 말든가. 그게 정치.
루즈벨트가 공황기에 나라를 살렸다는 평가도 있지만 반대의 평가도 있다. 루즈벨트가 엉터리 경제정책으로 나라를 지속적으로 망쳤기 때문에 지속적인 위기가 유지되어 장기집권이 가능했다는 거다. 일부 그런 측면이 있다. 박정희도 나라를 망쳐서 지속적인 위기조성으로 장기집권 한 거다. 박정희가 잘했다면 평화통일 되었을 테고.
결론적으로 FTA를 찬성하는 국민은 토사구팽의 법칙을 적용하여, ‘이명박 너는 할 일 다했으니 이제 그만 삶자!’ 이렇게 되고, FTA를 반대하는 국민은 당연히 그 가마솥에 장작을 보탠다.
정치인이 일을 잘 하는건 당연한 거고, 다음 카드를 지속적으로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실용주의는 다음 카드를 내놓을 수 없다. 보수주의는 원래 다음 카드가 없기 때문이다. 계획 같은게 없는 거다. 보수주의는 대개 전쟁이라든가 어떤 있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며 문제해결 다음엔 팽 된다. 반면 진보주의는 끝없이 새로운 계획을 내놓을 수 있다. 다음 단계의 계획을 내놓는 자가 승리자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 지금 진보진영은 복지에 몰입되어 있지만 주가에 반영된 거다. 복지로 부족하고 그 다음까지 내다보아야 한다. 그러려면 이명박 정권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삼성, 현대가 잘나간 때문에 ‘재벌한테 몰아주자’ 하는 분위기가 생긴 것. 몰아줘 봤더니 결과가 이거다. 그렇다. 삼성, 현대의 일등주의, 독점주의가 이명박 정권의 본질이다. 그 기저에는 깊은 열등의식이 도사리고 있다.
식민지와 분단과 독재를 거치며 온갖 트라우마를 겪고 상처입은 국민들은 자존심이 꺾이고 열등의식을 갖게 된 것이며 아직 극복하지 못했다. 그들은 일등주의, 성장지상주의, 성적제일주의, 벼락치기주의, 성과주의, 한건주의, 독점주의, 극단적 실용주의를 주장한다.
한 마디로 꼼수다. 그들은 꼼수로 어떻게 해보려는 생각을 가졌다. 그들이 좋아하는 일등, 성장, 성적, 독점, 성과, 한건, 실용은 본질에서 강한 것이 아니라 겉보기 형식만 그럴듯하게 해놓는 거다. 눈가림이다. 인격은 개판이라도 컨닝을 해서 성적표만 일등 만들어오면 된다는 거다. 그게 실용이다.
◎ 실용=꼼수=열등의식
예컨대 홍석천이 2002년 월드컵 사강의 비밀병기는 자신이라고 우기는 거다. 포르투칼전을 앞두고 콘세이상, 코투, 코스타, 바이아에게 술을 먹여서 한국이 사강에 갔다는 거다. 이런 이야기 하면서 매우 즐거워 한다.
즐겁냐? 부끄럽지는 않고?
이명박 하는 짓이 주로 그렇다. 자질구레한 꼼수를 쓰면서 매우 즐거워 한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도 자기 아들에게 위장취업까지 시키는 무개념 똥배짱의 본질은 ‘참을 수 없는 꼼수의 즐거움’에 있다.
그는 꼼수에 중독되어 있으며, 그 즐거움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내곡동이다. 투기해서 큰 돈 번다고 그러는게 아니다 ‘참을 수 없는 꼼수의 즐거움’에 이미 중독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서 평생 벗어나지 못하는 거다.
국민 전체가 이 수준이니, 삼성이 애플을 베껴도 ‘그거 잘하는 거야. 그래야지 암.’ 이러고 있다. 도대체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중국의 짝퉁에는 매우 화를 내면서 전여옥 표절에는 무감각.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는 판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다르다. 젊은 세대는 부끄러운줄을 안다. 왜?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식민지 모르고 625 모른다. 독재도 모른다. 트라우마가 없다. 길들여지지 않은 그들은 자부심이 있기 때문에 이명박류의 저급한 꼼수를 참지 못한다. 그들은 뒷구멍으로 손을 써서 일등먹기보다 정정당당한 탈락을 원한다.
이는 본질적인 차이다. 이데올로기의 차이, 세계관의 차이, 정체성의 차이, 가치관의 차이, 방향성의 차이다. 완전히 다른 두 종류의 인간 종이 한국에 공존하고 있다. 그 차이가 안철수 신드롬의 본질이다.
◎ 수구꼴통 – 미국, 일본 쳐다보며 꼼수로 베낄 거 없는지 살핀다.
◎ 젊은세대 – 중국, 동남아 내려다보며 모범이 되도록 자세 잡는다.
필자는 FTA 찬성파나 반대파 모두 지나친 미국 중심적 사고에 빠져있다고 본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깊은 열등의식에 빠져 있다. 한 마디로 쫄았다.
◎ 찬성파 – 미국이 한국의 운명을 결정한다. 알아서 기자.
◎ 반대파 – 미국이 한국의 운명을 결정한다. 미국을 벗어나자.
둘다 틀렸다. 미국이 한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는 지났다. 미국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국과의 FTA는 통과의례일 뿐이다. 한국은 세계로 뻗어나가야 한다. 한국중심적 사고로 바꾸어야 한다. 이것이 노무현 대통령 본심이다.
우리가 세계의 운명을 결정한다. 젊은 한국인의 욕망은 이미 그 수준에 도달해 있다. 축구 월드컵은 2002년에 사강 해본걸로 되었고, 야구도 2009년에 WBC 준우승 했으면 됐고, 일본이 한때 워크맨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한국도 인터넷시대에 전혀 뒤쳐지지 않고 있다.
이제 한국의 철학과 정신이 세계를 지배할 때가 되었다. 김구 선생이 예견한 바다. 우리는 쫄지 않는다. 한국의 다음 목표는 성장과 복지의 지루한 논쟁을 넘어서 세계무대에 부끄럽지 않은 한국의 위상을 세우는 것이다. 그런 마음이 안철수 지지로 나타나고 있다. 삼성, 현대가 꼼수로 세계무대에 두각을 나타냈으니 됐고, 이제 본질로 이겨보자는 거다. 철학으로 이기고, 미학으로 이기고, 사상으로 이기고, 문화로 이겨야 진짜다.
지금 한국의 정치, 경제적 상황을 보자면,
이명박일당 뒤에 확실히 미국이랑 일본이 도사리고 있음이..
미국의 대중국전략에 따른 프로그램과 기술통제,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란 부정부패가 만연해야만이 자기들한테 이익이라 생각하는 전략..
이런 것들이 함께 해서 우리나라가 지금.. 이 모양, 이 꼴인 걸텐데,
이를 너무 단순화해서.. 오직 이명박의 개인적(?) 성향과 부정부패세력들(친일파등)의 안이한 인식으로만 치부하시다니............
이래갖구선 이 나라 미래가 안 보이겠는데요?
그 자는 명백히 미국과 일제의 간첩이었죠!
미국유학중에 포섭당했는지, 그 때부터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에 지속적인 초를 쳐댔으며,
거짓과 사기로 이 나라 권력을 장악했고, 결국엔 6.25동란을 야기시켰드랬습니다.
아실겁니다~
이승만이가 사실상 (김일성도 같은 식으로) 전쟁을 일으킨 거나 마찬가지란 것을~
또한, 국제적 여건에서도 2차대전 때에 만들어놨던 대량의 군수물자를 소비할 수비처가 필요햇다는 것도~
그래서.. 이런저런 걸 감안한 미국권력자들(소련권력자들도 한패라고 보는 편이... 유태인들이 이들 뒤에 있다고 봐도 무방할 듯)이 한국을 선택하여 사전에 미리 분단시켜놓구서 나중에 결국.. 이승만이가 최전선(?)에서 한국전쟁이 일어나게 분위길 이끌었음이 분명해 보인다는 것!
그 후에 그 자가 한 짓거리또한 오늘날에서 보면 정말.. 여러 가지로 유태인들이 벌이는 짓거리랑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지난 부시재선때 희한한 선거과정도 그렇고, 한국서 벌어진 최근의 일련의 정치, 경제적 사안들을 보노라면,
마치 미제영화 [노잉]에서 보았던 것처럼 무슨.. 예언이 맞아들어가는듯한 인상을 받게 됩니다만,
이 모든 게 결국.. 하나하나 계획된.. 전략과 작전에 따른 일련의 사건들이었음이 읽히고 있딴 것!
마찬가지로 이승만이가 벌인 4사5입또한 바로 그런 경우로 생각됩니다.
136명인가가 마지노선이었는데, 135명이 찬성했다는 것~. ㅋㅋㅋ
이걸 보며 사전 계획된 작전이었다 생각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암튼 우린 지금... 진짜로 매트릭스 세상에서 살고 있음이 분명함!
그래서 더욱 열받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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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론은 힘이 세다.
2로 1을 이겨보이는 것이 구조론이다.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이야기다. UFO 쫓고 비행접시 잡는 기발한 것은 없다. 그러나 그 당연한 것이 제 포지션을 찾아 하나의 법칙이 되고 공식이 될 때는 강한 힘을 가진다.
많은 법칙과 공식들이 있다. 공식들의 우선순위를 따져 밑에서부터 하나씩 조립해 가다보면 tree구조의 커다란 계통수가 만들어진다.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것을 차곡차곡 쌓아서 커다란 형태를 만들어낸 것이 구조론이다.
구조론은 법칙과 법칙이 쌓여 이루어진 건물이며, 공식과 공식이 가지를 친 나무다.
많은 것이 적은 것을 이긴다. 큰 것이 작은 것을 이긴다. 넓은 것이 좁은 것을 이긴다.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이긴다. 굳센 것이 약한 것을 이긴다. 부지런한 것이 게으런 것을 이긴다.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런데 많은 것과 큰 것이 붙으면 어떻게 되지? 넓은 것과 빠른 것이 붙으면 어떻게 되지? 이런 물음에도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속성이 같은 것을 비교하면 아는데, 속성이 다른 것을 비교하면 사람들은 그만 입을 다물고 만다.
밑바닥에서부터 한 층씩 쌓아올린 지식이 아니고, 중간에서 대강 토막쳐서 주워모은 부스러기 지식이기 때문이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 파편화된 부스러기 지식이 아닌 통짜덩어리 지식이어야 한다. 차곡차곡 쌓아올린 것이어야 한다.
많은 것은 빠른 것으로 에워싸서 제압하고, 빠른 것은 센 것으로 잘라서 제압하고, 센 것은 복제하여 통신함으로써 양동작전으로 제압하고, 복제하는 것은 외부동맹으로 고립시켜 제압한다. 이 순서대로 가면 어떤 돌발상황에도 유유히 대응할 수 있다.
이는 속성이 같은 것을 비교한 것이 아니다. 애초에 층위가 다른 것이다. 칼과 칼의 싸움이 아니라 총과 칼의 싸움이다. 이들 사이에는 정해진 우선순위가 있어서 반드시 순서대로 가야 한다. 마구잡이 안 되고 타이밍을 잘 조절해야 한다.
◎ 정당, 정재, 정소, 정시, 정량
막연히 양을 늘리다가는 한 곳에 몰려있다가 몰살되는 수가 있다. 막연히 나경원 속도를 올리다가는 나꼼수 기습딴죽에 걸려 보기좋게 나자빠진다. 적재적소로 부족하고 적시에 적량까지 추가로 진도를 나가줘야 한다. 정당한 주문에 정재, 정소, 정시, 정량으로 응답해야 완벽하다.
그러려면 에너지의 입력부터 출력까지 전체적인 그림을 가지고 대비해야 한다. 세팅된 무대 전역을 빈틈없이 커버하는 완벽한 회로도가 있어야 한다. 밑에서부터 켜켜이 쌓아올린 지식이어야 가능하다.
왜 구조론은 힘이 있는가? 2가 1을 이긴다. 이 정도는 초등학생도 안다. 그러나 대학교수도 막상 현장에서 문제를 맞닥뜨리면, 이 당연한 지식을 제대로 써먹지 못한다. 아는 척 하는 지식인도 늘 하던 일이나 잘 반복할 뿐, 낯선 상황에서는 그냥 과거의 경험으로 도망치고 만다.
어느 쪽이 2고 어느 쪽이 1인지 판단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그냥 경험을 들이대서 지난번과 같다고 우긴다. 25년 전의 일이다. 정말 그것이 궁금해서 여러 어른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2와 1이 겨루면 누가 이길까요?” “내 태어나고 나서 한 번도 세상이 뒤집어지는 꼴을 못 봤다.”
500년 동안 조선왕조가 망하는 꼴을 한 번도 못 봤으니 개화시절이라도 양반세상이 계속 된다는 식이다. 그들은 도무지 2와 1을 비교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독재정권이 무너지는 꼴을 자기 눈으로 본 적이 없다는 거다. 그러므로 인정할 수 없다는 거다. 내가 낱낱이 따지고들자 그들은 2가 1을 이긴다는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는 대신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 화를 냈다.
“넌 어려서 몰라. 임마!”
25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뒷방 늙은이가 되어 여전히 한나라당에 투표하고 있다. 더 치명적인 것은 2가 1을 이기는데는 상당히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총은 칼을 이기지만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처럼 솜씨 좋은 무사가 칼을 휘둘러 서투른 포수를 이길 수도 있다. 그러자 사람들은 ‘거봐! 내가 뭐랬어?’하고 구태의연한 태도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 멍청이들에게도 변명거리는 항상 있다는게 문제.
확실히 딴나라당 낡은 칼이 열린우리당 총을 이겼지만, 그때 총은 분명히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칼은 제 자리에 머물러 있지만 총은 날로 개량되고 있다. 결국은 총이 칼을 이긴다.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다. 결국은 2가 1을 이긴다. 우리는 패배하면서도 조금씩 발전하고 있지만 그들은 승리하면서도 늘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 가능성만 보여줘도 충분하다. 가던 길을 계속 가는 거다.
일시적인 반동에 속지 말아야 한다. 의연한 태도로 갈 길을 계속 가야 한다. 가능성만 보여줘도 이미 이겨있는 것이다. 지난 지자체 선거에서 우리가 승리공식을 보여줬으니 다음 총선과 대선은 이미 이겨 있다. 급소 한 곳만 쳐주면 상대가 알아서 자멸한다. 구조론의 포지셔닝 원리에 따라 오씨와 나씨가 알아서 역할해주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반동이 일어나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의 방법을 따라배우기 때문이다. 원래 종이신문은 진보의 것이었다. 지금은 조중동이 장악했다. 원래 인터넷은 우리가 선점했다. 2002년에 이명박은 알바부대 풀었다. SNS 역시 우리가 선점하고 있다. 조만간 그들은 SNS에도 무슨 짓을 벌일 것이다.
우리가 한 걸음 앞서가면 저들도 한 걸음씩 따라온다.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일진일퇴의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착시에 불과하다. 실은 언제나 우리가 앞서 있었다. 본질에서 우리는 단 한번도 뒤진 적이 없다.
본질은 혁신이다. 혁신의 경쟁에서 우리는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본질은 삶이다. 우리는 삶의 정당성 경쟁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우리는 언제나 혁신을 도맡아왔고 우리는 언제나 그 시대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정당한 삶의 모습을 제시해 왔다.
항상 우리가 앞서 있는데도 일시적으로는 저들이 앞선 것처럼 보인다. 이유가 뭘까? 우리나라가 후진국이기 때문이다. 후진국에서는 아무리 앞서도 오십보 백보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면 달라진다.
한국인이 세계에서 가장 머리가 좋다. 의사소통 속도와 의사결정 속도가 빠르다. 그러므로 조만간 우리가 세계사를 주도하게 된다. 그럴 때 그들은 어떤 협잡으로도 우리를 추월할 수 없다.
컨닝으로는 2등까지 가능할 뿐 1등은 불가능하다. 꼼수가 먹히는 동네가 마이너리그다. 꼼수가 먹혔다면 우리가 후진하다는 증거다. 그 질곡의 상황은 이미 끝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아직 이기지 못했지만 확실히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총이 구태여 칼을 이겨보일 필요는 없다. 단지 가능성만 보여주면 된다. 그리고 계속 진도를 나가는 거다.
그동안 삼성, 현대가 별짓을 다 해서 애플 뒤꽁무니, 도요다 뒤꽁무니까지 쫓아갔지만 그 방법으로 추월은 못한다. 확실한 1등이 되려면 범국민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건 꼼수로 안 되고 진정성으로만 되는 거다.
전국민이 미추를 가려보는 눈을 얻어야 한다. 잘난 일등보다 아름다운 일등이 필요하다. 지금 한국인들이 바로 그것을 욕망하기 시작했다. 점수내기 석차로 1등말고 본질에서 이겨보이는 것, 모두에게 기여함으로써 모두의 존경을 받는 것을 꿈 꾸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럴 때가 된 것이다.
역사는 기록한다. 역사는 단지 개척자의 혁신만 기록한다. 꼴통이 어떻게 얍삽하게 일시적인 반동을 만들었는지는 기록하지 않는다. 그것은 주가 아니고 종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작용이 아니라 부작용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기록할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구조론은 2로 1을 이겨보인다. 그러나 현장은 어떤가? 1이 2의 머리 꼭지 위에 올라가서 별 횡포를 다 부린다. 요령부리는 넘, 컨닝하는 넘, 새치기 하는 넘, 뒷구멍으로 협잡하는 넘이 승리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낙담할 필요는 없다. 밑바닥에서 하나씩 켜켜이 쌓아서 전모를 보라. 언제나 2가 1을 이기고 있다. 첨단을 보고 선두를 보라. 언제나 2가 1을 이기고 있다.
우리는 날로 성장하므로 2다. 저들은 점차 낡아가므로 1이다. 젊은이는 일어서고 노인은 주저앉는다. 누구도 시간을 돌이킬 수는 없다. 키가 커도 우리가 더 크다. 욕망으로 비교해도 우리의 욕망이 더 크다. 모든 면에서 우리가 우월하다.
꼴등이 억울하게 탈락했다고 하소연 할 일은 있다. 실제로 그런 일은 도처에서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다. 운이 좋아 살아남는 사람도 있고, 운이 나빠 미끄러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2등이 억울하다고 말할 일은 거의 없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면 그 무대 전체가 수준이하인 거다.
구조론은 당연한 일을 이야기하지만, 당연한 상식을 밑에서부터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서 전체적인 회로도를 그려낼 때 정당, 정재, 정소, 정시, 정량을 밝혀낼 때, 그 힘은 매우 세다. 구조론 회원 개인은 특별히 달리보이지 않는다 해도 밑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여서 크게 세력화 될 때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왜? 길을 알고 있으니까.
인간은 지적 생태계 안에서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의 반복을 통해서만 한 걸음씩 어렵게 진보하는 존재다. 그러나 처음부터 길을 알고 가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시행착오없이 지름길로 곧장 간다. 처음 한 명이 그 길을 갈 때 도드라져 보이지 않지만 천 명, 만 명이 그 길을 갈 때 세상은 바뀌고 만다. 21세기다. 그럴 때가 되었다. 인류문명의 수준이 거기까지 왔다.
### 독자 제위께 ###
인간은 결함있는 존재입니다. 가던 길은 잘 가지만 낯선 길을 못 갑니다. 낯선 상황에서는 본인이 판단하기 보다 권위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는게 더 빠르기 때문에 원래 인간의 뇌가 그렇게 세팅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권위자가 누구지요? 없습니다. 낯선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이때는 권위를 만들어야 합니다. 어떻게 권위를 만들지요? 시스템을 작동시켜야 합니다. 어떻게 시스템을 작동시키지요? 집단을 위기에 빠뜨려야 합니다. 어떻게 집단을 위기에 빠뜨리지요? 그것은 나쁜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명박괴물 등장이오. 한국인들 겨우 정신차렸습니다. 항상 이런 식입니다. 이런 과정은 선택의 여지없이 기계적으로 진행됩니다.
역사에서 늘 되풀이되는 이런 바보짓을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시스템을 건설하고 권위를 만들어야 합니다. 밑바닥에서부터 하나씩 구조의 벽돌을 쌓아올려야 합니다. 전체의 회로를 그려보여야 합니다. 2가 1을 이긴다는 진실을 믿는 분이라면 벽 돌 한장 보태기를 권합니다. 여러분이 구조론 시스템의 집단지능 안에서 하나의 세포 역할을 맡아주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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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위기의 본질
구조론은 내부의 결을 따라간다. 각자 하기 편한대로 한다는 거다. 인간은 말하기 좋은대로 말한다. 진실보다 거짓이 더 말하기에 편하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대놓고 거짓말을 하는 거다. 언제나 그렇듯이 진실은 이중나선 꽈배기구조로 꼬여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말하기는 매우 어렵다.
걍 이게 다 저놈 때문이다. 하고 소리나 꽥꽥 지르는게 빠르다.
이탈리아, 그리스가 왜 저 꼴이 되었을까? ‘이게 다 복지 때문이다’라거나 ‘이게 다 신자유주의 때문이거다’거나 하는 식으로 허황된 관념 들어가면 이미 진실은 사라지고 없는 거다. 급하게 만들어낸 언어 속으로 도피한다면 비겁한 거다. 양념 치지 말고 MSG 넣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볼 배짱이 있어야 한다.
실제로 존재하여 있는 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있는 것은 돈이다. 그리스든 이탈리아든 돈을 찍어내지 않아서 경제가 망한 거다.(여기서 돈은 다른 뜻. 구조론을 모르는 분은 오해하라고 일부러 쓰는 표현.. 정확히 말하면 기승전결로 전개하는 구조적 상호작용의 시간적 계속성을 담보하는 시스템적 수단.)
실제로 존재하여 있는 돈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야지, 존재하지도 않는 허상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 유럽경제의 중심은 독일이고 그 오른쪽에 체코와 폴란드와 헝가리가 이어져 있다.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은 산맥으로 막혀있다.
옛날부터 피레네 남쪽은 아프리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피레네 알프스 마케도니아로부터 터키까기 전부 산악인데 지리적으로 유럽의 중심부와 격리되어 있다.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터키, 전부 반도인데 반도는 흔히 교통중심지가 되지만 막히면 섬이 된다. 3면이 바다이고 1면이 트여있는데 그 1면이 막히면 바로 섬이다.
자세히 보면 트여있는 일면이 모두 산악이라서 사실상 섬에 가깝다. 고립된다는 것은 즉 돈을 찍어내지 못한다는 거다. 유럽의 동서통합이 남북분열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식민지 시대에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남쪽 아프리카와 아랍으로 이어지는 중심부였다. 그 좋던 시절은 지나갔다. 지금은 유럽의 주변부다.
이건 물리적인 진실이다. 한국 역시 이러한 딜렘마에 빠져 있다. 한국은 그동안 미국, 일본의 주변부였는데 미래는 중국, 러시아의 주변부가 된다. 역시 주변부로 밀려나서 고립된 결과로 망하고 있는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의 꼴이 날 수 있다.
한국이 중심부로 치고들어가려면 반도의 잇점을 이용해야 한다. 로마가 강해진 것은 그리스를 업고 스페인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리스가 중심부였고 지중해와 소아시아, 로마가 주변부였다. 스페인은 그런게 있는지도 몰랐다.
모든 사태의 출발점은 트로이 전쟁이었다. 원래 야만하던 그리스가 그새 컸다고 제법 문명을 배워 트로이를 침략한 것이다. 트로이인들이 서쪽으로 도망쳐서 건설한 나라가 로마다. 역사는 같은 패턴을 되풀이한다.
이번에는 로마가 그새 컸다고 원수를 갚는다. 조상의 나라를 침략한 보복으로 그리스를 쳤다. 패망한 그리스인이 지중해로 진출하여 아프리카를 경영하면서 스페인을 새로 일으킨다. 원래 그리스인이었던 카로타고인이 스페인으로 진출하여 한니발 앞세우고 로마로 침략하기도 한 것이다.
스페인이 새로 뜨면서 그리스가 주변부로 몰락하고 로마가 중심부가 된다. 이탈리아를 가운데 놓고 서쪽의 스페인과 동쪽의 그리스가 태극을 이룬 형세다. 북쪽은 야만한 바르바로이들이 살고 있었고 남쪽은 바다건너 사하라사막이다.
대만, 홍콩이 왜 망했겠나? 미국, 일본과 중국을 잇는 가교였는데 지금은 중국의 주변부로 편입된 것이다. 중심부가 되면 흥하고 주변부가 되면 망한다. 지금까지 한국인들은 미국, 일본의 주변부가 되려 하거나 혹은 중국, 러시아의 주변부로 꼽살이 낄 생각만 하고 살았다. 패배주의 극복해야 한다.
한국이 뜨려면 미국, 일본을 업고 중국, 러시아을 바라봐야 한다. 그 사이에서 힘의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 이것이 노무현 대통령 구상이며 우리가 앞으로 백년동안 밀어붙여야 할 프로젝트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이 구상대로 간다. 물리적인 구조가 그러하므로 어쩔 수 없다. 스스로 태극의 핵이 되는 거다.
이러한 본질을 외면하는 쓰레기들은 기본적으로 정치를 논할 자격이 없다.
경제는 결국 돈을 찍어내는 것이다. 돈을 찍어낸다는 것은 상호작용의 밀도를 증대시켜 간다는 말이다.(구조론의 관점에서 이해할 것.) 이탈리아 그리스는 지금 주변부로 밀려나서 냉전해체 이후 새로 들어온 체코, 폴란드, 러시아, 헝가리, 루마니아에 다 뺏기고 있다. 지금 한국이 유럽을 공략하는 교두보로 선택하는 지점은 그리스나 이탈리아가 아니라 동유럽이다.
그 옛날 로마인들이 스페인으로 진출하면서 그리스가 졸지에 거지된 것과 같다. 이건 소니가 삼성에 시장을 다 뺏기고, MS가 눈만 꿈벅 하면서 애플, 구글에 시장을 다 뺏기는 것과 같아서 어쩔 도리가 없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거다.
반도국가들은 중심부가 되든가 아니면 주변부로 밀려나든가 이게 한 순간에 바뀐다. 반면 대륙은 비교적 안전하다. 변화가 느리게 일어나서 가만 있어도 중간은 가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과관계를 거꾸로 말하는 습관이 있다. 복지나 신자유주의는 결과다. 복지는 산업위주의 경제가 망한데 따른 후폭풍이다. 복지를 안 하면 자본의 회전률이 떨어지므로 통화가 증발하여 망한다. 우리나라는 지금껏 수출로 메워왔지만 내수부족으로 한계에 도달한다. 절대적인 통화부족이며 이는 총활동량감소로 나타난다.
신자유주의는 냉전해체의 후폭풍이다. 노무현 대통령때 카드대란이 일어난 것은 IMF의 후폭풍이다. 이걸 마치 노무현 대통령이 새로 카드대란을 일으켰다는 식으로 말하면, 이명박이 집값을 잡았다고 말하는 식의 사기다.
인과관계를 분명히 파악해야 한다. 에너지가 들어온 측이 원인이다. 에너지가 어느 구멍으로 들어와서 어느 구멍으로 빠져나가는지 분명히 봐야 한다. 관념이 아닌 사실을 가지고 논해야 한다.
사람들은 진실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진실은 복잡한 법이고 말을 복잡하게 하면 오히려 신뢰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간단히 ‘이게 다 뭐뭐 때문이다’고 하면 사람들이 좋아하긴 하지만 그게 진실은 아니다.
한진중공업도 지리의 문제다. 지도를 펴놓고 한진중공업이 어디에 붙었는지 살펴보라. 영도 앞바다 거기에 아파트나 짓고 관광이나 하는게 맞지 거기가 조선소 할 자린가? 이건 뭐 김문수가 행주대교 앞에 경인운하 물류터미널 만든다는 개소리 만큼이나 말이 안 되는 거다.
배를 짓는다는 것은 하청업체에서 선체블록을 모듈로 만든 다음 조선소에서 조립하는 건데 반드시 배후에 넓은 공단을 끼고 있어야 한다. 군산이나 목포처럼 땅 넓은데 놔두고 비좁은 영도에서 조선소 한다는게 말이 되나? 하청업체 착취하는 재주 밖에 없는 자들이 비좁은 영도에서 할 일이 없다.
한진중공업은 전혀 경영을 할 생각이 없다. 우리나라가 세계 조선물량을 싹쓸이수주 해서 중국, 일본은 일감이 없다는데 한진중공업은 저 혼자 일본조선소가 되어 있다. 경영진이 애초에 그 땅에 아파트 지을 생각이나 하고 있고, 만만한 필리핀 수빅조선소나 짭짤하게 해먹을 생각이라 경영의지가 없는 것이다.
한진중공업에는 세 가지 대책이 있다.
1) 파산 및 그룹해체.
2) 땅 팔아서 아파트 짓고 목포, 군산으로 조선소 이전.
3) 경영진과 노동자가 합심하여 10년정도 버티다가 결국 파산.
지금 논의하는 것은 세 번째인데 그래봤자 경영진의 태업으로 될 일이 아니다. 경영의지 자체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경영진의 태만이 아니고, 경영진이 왜 태만해 졌는가다. 여기에는 구조의 문제가 있다. 그런 구조에 걸리면 반드시 태만해지게 되어 있다. 대부분의 인간은 꼼짝없이 걸린다.
스마트 시대에 빌 게이츠는 뭐하고 있고 스티브 발머는 뭐하고 있는가? 결국 영도조선소 꼴이 난 거다. 지리의 문제는 온라인에도 존재한다. 영도 땅값이 비싸진 것이 한진중공업이 망한 원인이다. 일본 역시 엔고 때문에 망하고 있다. 이러한 지대의 상승은 지금 애플이 겪고 있다. 왜 삼성은 되는데 애플은 안 될까? 그건 애플은 되는데 왜 MS는 안될까 하는 질문과 정확히 같다.
본질은 지대다.(지대라는 말 역시 구조론적 관점에서 이해해기.) 스티브 잡스가 하드웨어 붙잡고 PC나 조립할 때, MS는 시장을 만들었다. 세계 각국의 방대한 소프트웨어 업체와 호환을 이루어낸 것이다. 그 호환이 다시 MS의 발목을 잡는다. 굉장히 빨리 커지지만 더 이상 클 수 없다.
지대가 올라버리기 때문이다. 엔고와 같다. 영도 땅값이 올라서 선체블록을 싣고와야 할 하청업체가 도망쳐 버렸다. 지나친 에너지의 낙차가 상부구조의 경직성을 유발하는 것이 지대상승이다. 정상에서 눈덩이를 굴리면 가속도가 붙어서 잘 굴러가는데 방향전환이 안 되어 망하는 격이다.
효율성과 선택지의 반비례다. 땅값이 오르면 여기에는 100층 빌딩을 올리는 수 외에 방법이 없다는 식으로 선택지가 줄어버린다. 어떠게든 택지를 공급해서 강남 땅값을 낮춰야 한국이 산다.
손정의는 이러한 구조의 모순을 알고 있다. 소프트 뱅크의 계열사들은 업체마다 다른 이름을 쓰고 그룹의 통일성, 획일성을 낮추고자 하는게 그 때문이다. 낙차가 효율을 낳는데도 의도적으로 그 낙차를 줄이고 있다.
예컨대 MS가 익스플로러를 완전히 독립적으로 만들고, 넷스케이프와 공평하게 경쟁하며 윈도와의 호환성을 독점하지 않는 식이다. 물론 MS는 그런 바보짓을 하지 않았다. 윈도와의 호환성을 독점했고 그러한 호환성이 도리어 선택의 경직성을 유발하여 스마트 시대에 낙오하게 되었다.
재벌이 계열사를 늘려 효율을 얻을수록 지대가 상승하며(여기서 지대는 경영진의 의사결정 스트레스.. 계열사의 증가에 비례하여 의사결정의 속도와 질이 떨어짐. 유니폼 통일이나 프로야구 우승 이딴 바보짓만 잘함. LG는 그것도 못함.) 하청업체가 도망쳐서 영도조선소가 되는 것이다.
드물지만 이런 문제를 잘 해결한 사람도 있다. 징기스칸이 그 사람이다. 징기스칸은 자기 부하들을 직접 자기가 가르쳤다.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한 것이 아니다. 자기집 종들과 동생들, 아들들을 키워 각자 최고의 CEO로 길러냈다.
의사소통의 장벽이 제거되어 지대의 문제가 상당히 해소된 것이다. 강남 한 곳에 부가 집중되지 않고 여러 개의 부도심을 형성하는 다핵구도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도 결국 분열되어 망했지만 제법 오래갔다. 알렉산더, 나폴레옹보다는 확실히 오래 해먹은 거다.
구조는 결국 1과 2 사이의 문제다. 2가 1의 토대를 공유하면서 서로 대칭되어 맞섬으로써 상호작용을 증가시키는 것이 구조의 정답이다. 그러나 토대를 공유하는 강도가 높아지면 상호작용이 감소한다. 이는 남녀간에도 마찬가지다. 서로 취미가 맞아야 쉽게 친해지지만 반대로 상호작용이 줄어들어 어색해진다. 영역이 겹치게 되기 때문이다. 부부교사가 한 학교에 근무하는 것처럼 된다. 그게 좋지만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모순에 정답이 있다. 토대의 겹침에 따른 효율의 증대와 대칭의 맞섬에 따른 상호작용의 증대라는 모순된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면 고도의 정밀제어를 해야 한다. 복지만능이라거나 개방만능이라거나 하며 어느 한 쪽으로만 달려가면 반드시 외통수에 걸려 망한다. 이쪽만 가도 안 되고, 저쪽만 가도 안되며, 동시에 가도 안 되고, 우선순위대로 가되 몰아줄 땐 몰아주고 적절한 타이밍에 빠지고 방향전환 해야 한다. 알고 하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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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와 관하여 몇 가지 이야기
FTA는 큰 틀에서의 방향성 문제다. 원칙적으로 이 길로 간다는 것이 중요할 뿐, 그것이 당장 시급하다거나 혹은 그것을 못하면 죽게된다거나, 혹은 그거 한다고 당장 대박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살살 풀어서 연착륙시켜야 한다.
구조론으로 말하면 상호작용의 밀도를 높여가기다. 우리가 진짜로 얻어야 할 것은 무역을 통한 직접적인 수혜가 아니라 그러한 상호작용 과정에서 우리 자신을 단련시켜 가는 것이다. 독한 예방주사와 같다. 한국은 더 강해져야 한다.
우리는 도전하고 또 도전해야 한다. 도전과 응전을 두려워 말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더 단련되고 더 현명해진다. 앞으로 FTA는 세계 모든 나라와 체결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유불리는 논외로 하고 이 상황을 이겨내야 한다.
아마 10년 전 쯤일 것이다. 한창 중국붐이 일어나서 중앙일보 등에서 대대적인 중국특집을 내는등 요란을 떨었는데, 한겨레 역시 중국특집을 내서 대대적인 반격을 가했다. 물론 두 신문의 내용은 정반대였다.
중앙일보 기사는 ‘10억 중국인에게 냉장고 한 대씩만 팔아도 10억대’ 식의 과대망상 위주였고, 한겨레는 그러한 중국신드롬에 현혹되어 쫄딱망한 사람들의 예를 무수히 들면서 중국환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식으로 썼더라.
필자도 그때 한 마디 했더랬는데.. 10년 뒤에 누구 말이 맞는지 두고보자는 식.. 그리고 이제 10년 세월이 흘렀다. 과연 어떻게 되었는가? 한겨레가 걱정하던 대로 중국 가서 망한 사람도 많다. 연변 조선족 사회도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라. 누구 말이 맞고, 틀리고, 자시고 하기 전에 이는 인류문명사의 필연적인 흐름이다. 누구도 이를 부인할 수 없다. 도도히 흐르는 물결이다. 구한말의 개화와 같다. 항상 부작용이 먼저 나타나지만 극복해야 한다.
누구는 중국가서 쫄딱 망하고 누구는 중국가서 돈을 벌지만 원래 시행착오 없이 되는 일은 세상에 없다. 먼저 가서 쫄딱 망한 사람이 그래도 데이터를 벌어놨기에 뒤에 가서 주워먹은 사람이 있는 것이다.
결론은.. 그때 한겨레의 걱정이 전혀 기우였던 것만은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었다는 거다. 그때 중국 건너간 사람이 지금 모두 꿀빨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한국경제는 중국을 떼놓고는 논할 수 없게 되었다.
문제는.. 왜 한겨레는 항상 걱정하는 시어미 역할만 맡느냐다. 그래봤자 신문만 안 팔리는뎅? 신문 팔아먹자고 그랬다면 이해를 할텐데 그게 아니잖느냐 말이다. 왜 한겨레는 늘 손해되는 역할만 맡느냐 말이다.
의욕적인 젊은이의 진보기질이 아니라, 말 많은 노인네의 보수기질을 한겨레는 드러낸다. 그게 한겨레 신문이 안 팔리는 핵심적인 이유다. 경제문제에 관한 한 한겨레는 철통보수를 넘어 수구꼴통이다.
만약 김어준이 한겨레 편집장을 맡는다면 판매부수는 다섯배로 뛸 것이다. 그 전에 기자들이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르지만.
정답.. 한겨레가 경제문제에서 보수꼴통을 자임하는 이유는 하나다. 무식하기 때문이다. 무식하면 누구라도 보수된다. 무식하면 겁이 나고, 겁이 나면 숨으려 들거나 폭력적으로 나가게 되는데 그게 보수다.
한국인들의 정치적 진보/보수 성향도 학력조사 해보면 딱 들어맞는다. 한나라당이 보수하는 이유는 딱 하다. 첫째도 무식하니까. 둘째도 무식하니까. 셋째도 무식하니까. 다른 이유가 없다.
FTA를 두고 멕시코의 처지와 비교하는 사람이 많다. 평균 IQ 87인 멕시코와 평균 아이큐가 106인 한국을 수평비교 한다는게 말이 되는가? 바본가? 아이큐 20 차이면 하늘과 땅이다. 이건 절대로 비교될 수 없는 거다.
이건 머리 좋은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경제 역시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위는 경쟁력이다. 한국이 미국보다 더 경쟁력이 있다. 이유는 하나다. 한국인이 더 머리가 좋기 때문에. 더 의사결정이 빠르기 때문에. 더 활동범위가 넓기 때문에. 미국의 98과 한국의 106은 엄청난 차이다.
경제를 알고 떠들어도 떠들어야 한다. 경제란 간단하다. 그냥 돈을 찍어내면 된다. 물론 깊이 들어가면 한 없이 복잡해지지만, 간단히 한 마디로 핵심을 짚자면 걍 돈을 찍어내는게 경제의 정답이다.(이렇게 말하면 인플레는 어쩌고 하며 대드는 초딩 꼭 있음.)
‘근대’라는 것은 스페인 도둑들이 아메리카의 금은을 약탈한 데서 촉발되었다. 화폐증가에서 상업혁명으로, 경제발전으로 근대가 전개된 것이다. 단지 돈을 찍어내기만 하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절대적인 진리다.
그렇다 해서 무작정 종이를 찍어낼 수는 없다. 통화증발이 일어나서 여전히 화폐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쓸모있는 돈을 찍어내야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쓸모있는 돈인가? 그것은 약속이 지켜지게 하는 것이다.
‘돈을 찍어내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표현은 독자들의 반발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한 필자의 의도적인 표현이고, 엄밀하게 표현하면 인간의 총활동량이 늘어나면 경제가 살아나는데, 그 활동은 구조론에서 말하는 기승전결의 전개과정을 거치며, 그 연속적인 전개에서의 시공간적인 갭을 뒷받침하는 것이 통화이며, 통화가 기능하여 그 연쇄고리들을 잘 이어줄 때, 즉 약속이 지켜지게 할 때 경제가 살아난다.
당장이라도 러시아에서 대규모 금광이 발견되어 금값이 폭락한다면 통화증발로 돈이 사라진다. 금의 의미는 비교적 약속이 잘 지켜진다는 것인데 금값이 폭락하면 그 약속이 깨지는 것이다.
문제는 통화라는 것은 원래 소멸하는 속성이 있다는 거다. 조선시대는 엽전을 찍었는데 전황이라고 해서 시장에서 돈이 사라졌다. 부자들이 돈을 궤짝에 담아 장롱에 감춰두고 시장에 유통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돈은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사라진다. 그래서 경제가 망한다.
유사이래 돈은 언제나 부족했다. 단지 돈이 없어서 경제가 안 된다. 단지 돈만 있으면 경제가 살아난다. 돈을 찍어내는 방법 중의 하나가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는 것이다. 증권이나 수표, 어음 등 여러가지 화폐기능이 있지만 역시 부동산이 덩치가 큰 화폐다. 집값이 계속 오르면 집문서가 화폐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각국은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다 망했다. 어쨌든 부동산 투기는 일시적인 경기부양 효과가 있다. 부동산 부자들이 당장 그 재산을 팔아치우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계에 이르러 그들이 일제히 부동산을 팔아치우는 경우다. 토지를 수용당한 사람이 주변에서 대토를 구하면서 물가를 급등시키는 경우다.
부동산 화폐가 위험한 이유는 부동산 역시 통화증발과 마찬가지로 증발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토지는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거래량 감소로 부동산이 화폐기능을 상실한다. 부동산 증발이다. 요즘 복덕방에 가봐도 나와있는 부동산이 없다고 하는데 바로 그거다.
일본은 엔고로 망하는 판인데, 통화가치가 너무 올라도 역시 증발현상이 일어난다. 일본이 엔고로 세계를 사들이는 대신, 세계가 일본을 사들이는 역설이 발생한다. 일본국토 자체가 돈으로 기능하면서 경직성이 커진다.
돈이 돌아야 돈인데, 돌지 않는 돈, 죽은 돈, 궤짝에 갇혀 쓰여지지 않는 돈이 되는 것이다. 한국도 원고가 심해지면 조만간 중국인이 한국을 다 사들여서 기업이 공장부지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
엔고란 각국이 엔을 원해서 정작 일본인은 엔을 구경하기 힘들어지는 상황이다. 일본인 입장에서는 통화증발이다. 일본 소비자들이 돈을 외국에서 쓰고 일본 시장에서는 쓰지 않는다. 시장에 돈이 마른다. 돈이 증발하고 있다.
통화가 좋은 것은 금이나 부동산에 비해 가치가 없으므로 인플레로 가치가 소멸하기 전에 돈을 남줘버리려 하므로 경제가 살아나는 것이다. 만약 원고가 계속되어 한국돈의 가치가 올라가면 부동산이나 금을 팔고 원화를 소유하려 할 것이다. 회전률이 떨어져서 통화가 증발된다. 돈이 사라져서 경제가 망한다.
FTA란 일전에 있었던 통화스왑과 비슷하게 기능한다. 그것은 말하자면 돈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격이다. 그 돈은 비교적 안전한 돈이므로 그 돈이 경제를 살린다. 당장 수출이 어떻고 하는 것은 바보같은 소리다.
물론 기업에서 혁신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데 단지 돈만 찍어낸다고 경제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평균 IQ가 87인 멕시코가 아무리 돈을 찍어낸들 경제가 살아날 리가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복지도 그것이 일종의 돈을 찍어내는 일이라는 점을 꿰뚫어볼 수 있어야 한다.
◎ 복지확충=통화발행과 완전히 같다.
복지라는 것은 사회의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돈이다. 약속이 지켜지게 하기 때문이다. 각종 사회보장은 고속도로를 놓고 항구를 여는 것과 같다. 그 역시 돈이다. 고속도로나 항구나 빌딩은 어디로 도망가지 않는다.
돈방석이라는 말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비단을 통화로 썼는데, 비단 한 필을 방석처럼 엉덩이로 깔고앉았기 때문에 돈방석이라고 한다. 돈이 어디로 도망 못가게 돈을 깔고 앉았던 것이다. 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어디로 도망을 안 가서 약속이 지켜지게 하면 바로 그게 돈이다.
그런데 문제는 돈은 원래 도망의 속성이 있다는 거다. 돈은 가만 놔두면 살살 도망가서 전황을 일으키고 경제를 망가뜨린다. 그러므로 끝없이 새로 돈을 찍어내야 한다. 인플레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돈을 찍어내는 것이 경제정책의 요체다.
지폐나 동전은 여러 돈들 중의 하나일 뿐이며, 인간의 총활동량을 늘리는데 기능하는 모든 것이 돈이다. 경제활동이든 비경제활동이든 상관없이 총활동량개념으로 파악해야 한다.
무언가 인간으로 하여금 활동하여 움직이게 하는 것은 모두 돈을 찍어내는 것과 같으며, 그 움직임의 연쇄고리가 기승전결로 이어지면, 구조론의 질 입자 힘 운동 량으로 이어지면 바로 그것이 돈이고 그러한 연결에 의해 경제는 살아난다.
예컨대 어떤 작가가 책을 팔고자 한다면 최소 3000권이 팔려야 작가가 어떻게 해볼 의욕을 내는 거다. 그런데 한국의 인구가 500만명 밖에 안 된다면 포기해야 한다. 인구가 없는데 책이 팔리겠는가 말이다.
이때 단지 인구만 늘려도 총활동량이 늘어나서 경제가 살아난다. 복지도 이와 같다. 한국의 문제는 노인층이 생산도 하지 않고 소비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복지를 늘려서 단지 노인이나 빈민들이 소비만 하게 해도 경제는 상당히 살아난다. 미국도 근래에는 거의 소비만으로 먹고 사는 판이다.
같은 액수의 돈을 공장증설에 쓰느냐 복지확충에 쓰느냐의 우선순위 문제가 있을 뿐 어디라도 쓰면 반드시 경제가 살아난다. 공장증설에 쓰면 경제가 살고 복지확충에 쓰면 경제가 망한다는 생각은 참으로 무식한 이야기다.
요즘 기업들이 돈을 은행에 쌓아놓고 설비투자를 안 하기 때문에 지금은 복지확충으로 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며, 한국은 지금 복지가 유일한 경제회생책인 것이다. 지금 그러하다는 것이지 언제나 그렇기만 한 것은 아니다.
경제란 전체의 밸런스가 중요한 것인데, 대개 이것만 혹은 저것만을 외치며 밸런스를 무너뜨리다가 망한다.
FTA와 관련하여 주권운운 하는 사람도 많다. 그렇다면 EU는 뭐가 되는가?
이야기가 약간 엇길로 새지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땅이라고 우기면 필자는 그 일본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희는 미국의 속국이면서 왜 주권과 관계된 말을 하는가?’ 그 일본인은 보나마나 일본은 어엿한 주권국가라고 응수할 것이다. 그러다가 한국의 주권이 침해되었던 시대에 일본이 독도를 몰래 집어삼킨 사실이 드러나고 말 것이다.
말을 바르게 하려면 한국과 일본의 주권이 대등했던 18세기 이전시대를 기준으로 삼거나, 아니면 한국이 주권국으로 독립한 1948년 이후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일본은 교묘하게도 러일전쟁으로 한국의 주권이 유린되었던 1905년에 독도를 거저 주웠다고 주장하고 있다. 독도침탈과 러일전쟁은 절대 따로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도 일본인 중에는 조선은 원래 청나라의 속국인데 일본이 독립시켜주었다고 망언을 일삼는 사람이 있다. 만약 조선이 청의 속국이라면 지금 일본은 미국의 속국이다.
이런 문제는 너무 절대화 시켜서 곤란하고 상대적인 관점으로 이해해야 한다. 주권을 강력하게 내세워야 할 상황도 있고 그 반대의 상황도 있다. 범죄자의 인권도 소중한 상황이 있고, 범죄자는 혼줄을 내야 하는 상황도 있다. 주권이든 인권이든 무작정 절대화 하여 그것을 신앙의 경지로 밀어올리려 한다면 어린애다.
카다피가 망한 것은 각국이 리비아의 주권을 침해했기 때문이다. 주권은 침해될 수도 있다. 그게 진보의 입장이고 더욱 사회주의 입장이고, 세계주의 입장이다. 주권을 신앙수준으로 말하는 것이 수구꼴통의 쇼비니즘이다. 물론 우습게도 한국의 수구꼴통은 오히려 그 반대라서 문제지만.
주권 운운하며 입에 거품을 무는 애국자들이 알고보면 애플의 아이폰을 쓰고 삼성 갤럭시폰을 비난하는데 앞장선다. 그렇게 애국자라면 당연히 삼성폰을 쓰고 현대차를 타지 그러시나?
한국인이 오히려 아이폰을 쓰고 일본차를 타는 시대가 와야 한다. 우리가 삼성의 봉이고 현대의 봉이냐?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일본인은 일본제품만 좋아한다고 하는데 그게 바보같은 짓이다. 원래 신사는 이국취미가 있어서 자신이 관심을 가진 나라의 양식으로 서재를 꾸며놓는다든가 하는게 있어야 한다. 역시 밸런스 문제다. 자기 것도 제대로 모르면서 남의 것을 추종해도 문제고 그 반대라도 답답하다.
구조론으로 보아서 고립은 필망이다. 애플이 아이폰을 무기로 한국의 스마트폰 시장을 유린하니, 오히려 삼성이 세계에 갤럭시폰을 팔아서 돈을 벌었다. 구조론으로 말하면 상호작용의 원리다. 아이폰이 한국 스마트폰 시장의 반을 가져갔는데 그러한 외세의 경제침략에 대항하다보니 오히려 삼성이 세계시장을 다 먹을 판이 된 것이다. 역사에 이런 일은 부지기수로 일어난다.
미국이 FTA를 무기로 삼아 한국을 침략하면 할수록 오히려 한국이 세계를 집어삼킨다. 그것이 경제다.
기승전결이 있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있고, 일시적 위기도 있고, 좌절도 있고, 극복도 있는 것이며, 중요한 것은 고립을 피하고 꾸준히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단련하여 내는 것이다. 온갖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기 자신을 단련시켜 낸 자는 흥하고, 얍삽한 실용주의로 가서 곶감만 빼먹으려 하는 자는 망한다.
미국은 본래 영국인들이 식민한 땅이다. 한때 미국의 값싼 농작물이 유럽 농부들을 좌절시켰던 것도 분명하다. 한국 농민이 피해를 받지만 그것은 우리가 내부에서 복지를 강화하고, 농민을 돕는 방법으로 해결할 문제다. 복지와 개방은 절대적으로 같이 가는 것이며 복지없는 개방, 개방없는 복지는 무리다.
그때 그시절 한겨레는 ‘한국은 중국에 올인하다 망한다’고 목이 터져라 외쳤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뻥이요’다. 절대로 망한다거나 절대로 흥한다는건 없다. 정답은 원래 없다. 꾸준한 상호작용이 진정한 정답이다.
그러나 그건 IQ가 받쳐주는 나라만 되는 거다. IQ 87인 멕시코가 하면 뭐를 해도 안 되고, IQ 106인 한국이 하면 뭐를 해도 된다. 지금 한국은 고립되어 있다. 무조건 외국과의 상호작용을 늘려야 한다. 이것이 구조론의 입장이다.
P.S..구조론으로 풀면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전개에서 질이 탑 포지션이다. 질은 상호작용의 밀도다. 단기적으로는 물론 시끄러운 요동이 있겠지만, 피아간에 상호작용의 밀도를 높이기만 하면 장기적으로는 반드시 이득이 된다.
구조론은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설명한다. 중간을 생략하고 입력부와 출력부만 보기 때문이다. 중간에 롤러코스터를 타더라도 입력부와 출력부만 보면 상호작용의 밀도증가는 반드시 공동체의 이익으로 귀결된다.
경제 역시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다. 돈만 찍어내면 되는데, 돈이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시공간적 고리들을 이어줌으로써 상호작용의 밀도를 높여 부를 창출한다. 역으로 가만 두면 상호작용이 감소하며 이는 통화증발로 이어져서 경제가 망한다.
짐바브웨나 북한처럼 그냥 종이를 찍어놓고 그걸 돈이라고 우기면 역시 통화가 증발한다. FTA는 증발하지 않는 형태로 돈을 찍어내는 고전적인 여러 수법들 중의 하나다.
스티브 잡스가 설사 남의 아이디어를 상당히 훔쳤다 하더라도, 아이디어는 입자고 상호작용의 밀도가 질에 해당하며, 그것은 최고의 팀을 지휘하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필요한 인적 자원을 조달하고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팀원들 간에 상호작용의 밀도가 높아진 것은 분명하며, 이는 누가 쉽게 흉내내기 어려운 스티브 잡스만의 특별한 재능이다.
너무 구조론에 얽매여 이 문제들을 보신 거 같습니다~
그 이면의 어떤 숨은(?) 의도 같은 걸 간과하신 듯 해요~
아무래도 이번 글은 좀.. 추천하기 그렇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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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문재인 유시민
‘정답은 원래 없고 오답을 배제하면 남는 것이 정답이다.’ 이것이 필자의 마이너스 제어 이론이다. 지금으로서는 정동영, 김근태, 손학규와 같은 ‘한 물 간’ 오답을 배제하고 어장관리를 하며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맞다.
그 어장에는 안철수, 손석희, 이해찬, 문재인, 유시민, 천정배, 한명숙 등 다양한 어종이 서식하고 있다. 설사 그 중의 하나에 지극한 마음이 있더라도 그러한 마음을 들키지 않는 것이 전술적으로 유익하다. 그것을 들키는 즉 탑 포지션의 유리함을 잃고 바텀 포지션의 열세를 면하지 못 한다.
그러나 박봉팔은 어떤가? 마치 자신이 정답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이쪽이 정답이야’ 하고 내내 한 쪽만 가리키다가 점점 꼴이 우습게 되어 가고 있다. 서프라이즈? 어휴! 그 쪽은 말도 꺼내지 말자.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이나 한겨레나 다 마찬가지다. 다른 논객들도 마찬가지다. 조중동이나 그 주변의 거지새끼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신이 정답을 콕 찍어주겠다며 한 쪽 방향만을 가리키고 있지만 편협하다. 그들은 점점 자기네의 동선을 좁힌다.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고 만다. 점차 성공의 확률을 떨어뜨린다.
두 갈래 길 앞에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나쁜 길을 선택한다. 이는 단기적 손실을 초래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공동체의 이익으로 귀결된다. 이명박은 백 번의 선택 기회가 있었는데 백 번 다 나쁜 코스를 선택했다. 그 결과는 구조론에서 말하는 공동체의 소통지능 향상으로 나타났다. 확실히 이명박에 의해 한국인은 더 똑똑해졌다.
유시민이라도 이런 오류는 피해가지 못한다. 유시민의 선택은 단기적으로 유시민 자신에게 유익하지 않으나 진보진영 전체에 이득이 된다. 앞서가는 유시민이 본인에게 나쁜 선택을 계속하면 뒤따라가는 안철수, 박원순이 이득을 본다. 그들은 주워먹는다.
고정된 정답은 없다. 인간의 행동은 상대방의 행동을 보고 거기에 대항하는 형태로 결정되는 것이며, 그렇게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상호작용 과정에서 집단지능을 향상시켜 가는 그 자체, 시스템을 합리화시켜 가는 그 자체, 그러면서 내재적인 역량을 축적해 가는 그 자체, 그러한 공동체의 진보과정 그 자체가 정답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인이 더 현명해진 것이 우리가 얻은 진짜 정답이다.
우리는 군부의 1987년보다 더 현명해졌고, 영삼의 1992년보다 더 현명해졌고, 김대중 대통령의 1997년보다 더 현명해졌고, 노무현 대통령의 2002년보다 더 현명해졌고, 이명박의 2007년보다 더 현명해졌다. 2007년에 잠시 바보가 되었지만 이 또한 굴뚝시대에서 IT시대로, 지역대결에서 세대대결로 넘어가는 거대한 방향전환 과정에서 필요했던 속도조절로 보아야 한다.
박원순, 안철수가 적당한 타이밍에 로또를 잘 긁었지만 유시민과 정동영이 좌클릭하면서 중간을 크게 비워놓았기 때문에 그들이 빈 공간을 잽싸게 나꿔챈 것이다. 범진보진영 전체로 보면 유시민이 특히 필요한 역할을 해준 것이다.
유시민은 좌클릭해서 먼저 배후에서의 안전을 확보한 후 우클릭하는 전술을 채택하고 있는데 이는 징기스칸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전략이다. 그 방법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세상이 그러한 전술적 방법들에 의해서만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내재한 에너지 자체의 결을 따라 움직인다는 점이다.
유시민이 어디로 가든 상관없이 정치는 정치 자체의 결대로 가는 것이며, 역사는 역사 자체의 맥박대로 가는 것이며, 유시민과 그 역사의 맥박 사이에는 일시적인 호흡의 불일치가 있을 수 있고, 유시민이 이번에 잠시 찬스를 놓쳤지만 언젠가 기회는 다시 온다. 다시 기회를 맞아 박자를 잘 맞춘다면 유시민은 지금 좌클릭해서 높여둔 확률로 그 흐름에 올라탈 수 있다. 반드시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욕심을 버리고 포지션을 넓게 가져가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정답은 무엇인가? 보폭을 넓히고 피아간에 상호작용의 속도를 끌어올리면서 점차 확률을 높여가는 것이 정답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 자신을 단련시켜 우일신 하는 것이 정답이다. 우리가 강해지는 것이 정답이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 유시민이냐 셋 중에서 하나를 찍으려 하지 말고, 노무현 대통령이 꾸려놓은 환상의 팀에 의해 우리가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돌아보라.
지금 우리에게는 이해찬, 문재인, 한명숙, 유시민, 박원순, 안철수, 손석희, 천정배, 송영길, 최문순, 안희정, 정동영, 이광재, 김두관, 정세균, 문성근, 유홍준, 천호선, 이재정이 금강산의 많은 봉우리들처럼 버티고 서 있다. 박근혜 뒤에는? 아무도 없다. 우리는 그만큼 강해진 것이다. 우리가 이토록 강해졌다는 것이 진짜 정답이다. 우리는 더 강해져야 한다.
정치는 팀 플레이다. 우리는 지금 좋은 팀장을 갖고 있지 않지만 차차 손발을 맞춰가고 있는 중이다. 그것이 정답이다.
언론의 사명
좋은 언론은 두 가지를 해야 한다. 하나는 독자들을 대신하여 선택을 해주는 것이고, 둘째는 이기는 승부를 해주는 것이다.
무언가 선택을 해서 독자들에게 선택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언론사의 할 일이다. 조선일보와 한겨레는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적어도 독자들에게 확실한 신호를 주고 있다.
반면 한국일보는 동시에 두 방향을 가리킨다. 독자들에게 아무런 선택도 해주지 않는다. 이는 언론사 본연의 의무를 위배한 것이다.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무언가 선택은 해주고 있지만 그 선택의 폭은 매우 좁다. 그들은 자유주의로 크게 그물을 치고 복지로 점차 목표를 좁혀가는 마이너스 방법을 쓰는 것이 아니라, 농구공을 던져 슛을 성공시키듯 처음부터 편협한 목표를 제시해놓고 운좋게 골을 성공시키려는 무리한 플러스 방법을 쓰고 있다.
이때 선택의 폭이 좁기 때문에 독자들은 낙담하고 만다. 독자들에게 선택을 해주어야한다는 목표를 상당히 무산시키고 있다. ‘이것도 안돼, 저것도 안돼’ 하고 계속 NO를 외쳐서 선택을 기다리는 독자들을 뻘쭘하게 만들고 있다. 환경은 급변하고 독자들은 초조해진다.
언론은 먼저 선택을 해주어야 하고, 다음 이기는 승부를 해주어야 한다. 한겨레의 문제는 거듭 패배한다는 점이다. 목표를 좁게 잡을수록 패배할 확률이 높다. 또 과거에 집착할수록 패배할 확률이 높다. 목표를 넓게 잡고 미래를 지향하며 스마트폰이라는 확실한 무기를 가지고 이기는 승부를 해주는 것이 지금 김어준의 포지션이다.
승리는 정치인들이 골방에서 임의로 결정한 노선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산업의 혁신에서 얻어진다. 아이폰이 진보진영의 보선승리를 끌어낸 것과 같다. 산업을 적대시하는 바보같은 결정은 자충수가 된다.
김어준의 포지션은 설사 지더라도 역량을 축적함으로써 다음번 승부에서 승리할 확률을 높여서, 승리에 대한 확신을 주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합리적이다. 처음부터 보폭을 넓게 잡으므로 그동안의 축적한 성과들을 떠내려보내지 않고 재사용한다는 점에서 효율적이기도 하다. 목표를 좁게 잡으면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성과를 떠내려 보낸다는 점에서 역량의 낭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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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있는 노인 이명박
이번 서울시장 보선은 확실히 세대대결로 판이 짜여졌다. 조선일보는 이를 ‘이성적인 5060’과 ‘감성적인 2030'의 대결로 규정하고, 이제는 한나라당도 나꼼수로 대표되는 젊은이의 감성에 코드를 맞춰야 한다. 뭐 이런 식으로 썼더라. 그래서 ‘명품수다’로 나꼼수 따라하며 젊은이들처럼 웃고 떠들면 된다? 천만에!
노인의 이성과 젊은이의 감성? 유치한 거짓말이다. 차라리 무식한 노인과 똑똑한 젊은이의 대결이라고 하는게 맞다. 5060과 2030의 가장 큰 차이는 고등교육을 받았는가 그렇지 못한가에 있다. 60년대만 해도 중졸이면 배운 축에 들었고, 70년대는 고졸이면 대접을 받았다. 1970년에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8.4프로였다.
어느 나이 많은 유권자가 신문기사에 리플을 달아서 ‘너희 젊은 것들에게는 노인의 지혜가 없어! 너희들이 공산당을 겪어보기나 했어?’ 하고 어거지 훈계를 했지만 그의 리플에는 쓸쓸한 비애가 묻어나고 있었다.
확실히 노인에게는 지혜가 있다. 이명박의 다양한 꼼수 시리즈를 보면 알 수 있다. 처음 나꼼수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명박이 ‘한 꼼수’ 한다는 정도로 알았을 뿐, 저렇게 기가 막힌 꼼수의 대가일 줄은 몰랐다. 내가 무엇을 상상해도 이명박은 상상 그 이상을 보여주었다. 매일 하나씩 가카의 새로운 꼼수가 발표되고 있는 판이다.
무엇인가? 노인의 지혜란 기껏해야 한 개인의 판단일 뿐이다. 이명박 꼼수같은 거다. 그러나 젊은이의 지혜는 70억 인류가 가진 지혜의 총합이다. 왜 노인은 패배하고 젊은이는 승리하는가? 고립된 노인은 자기 한 사람의 지혜를 쓰지만, 스마트폰을 쓰는 젊은이는 스티브 잡스의 지혜를 곧바로 빌려쓰기 때문이다. 이것이 구조론에서 말하는 복제이론이다.
◎ 노인의 지혜 - 그래봤자 혼자생각 ◎ 젊은이의 소통능력 – 70억 인류가 가진 지혜의 총합
한국인의 평균 아이큐 106은 미국의 94나 영국의 100보다 높다. 그런데 왜 미국과 영국이 잘 사는 것일까? 그들의 지혜는 15억 백인인구가 가진 지혜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그 쪽에 더 지성인이 많고, 천재가 많고, 각 분야의 고수가 많다. 그들이 잘 사는 이유는 그들 중 몇몇 뛰어난 자의 재능을 15억 백인시장 전체가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혜가 유통되는 시스템과 생태계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국에는 없는 것이다.
◎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능력 – 이것이 21세기를 결정한다.
스티브 잡스가 가진 재능은 타인의 아이디어를 알아보는 능력이다. 그의 많은 아이디어들이 실은 동료들의 것이었음이 그의 자서전을 통해서 밝혀지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그저 이 아이디어와 저 아이디어를 연결했을 뿐이다.
뛰어난 것을 생각해내는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서 부족한 2프로를 찾아내고 마침내 그것을 채워내는 능력은 특별한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통찰력이나 직관력 따위가 아니다. ‘짠~!’ 하고 떠오르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 같은 것이 아니다. 착각하지 말라 그것은 애초에 차원이 다른 거다.
그것은 장기전을 벌이며, 점차 확률을 올려가는 방향판단의 능력이다. 어떤 핵심을 장악한 포지션의 우위 상태에서 조금씩 퍼즐을 조합해 가는 능력이다. 물이 낮은 곳으로 모이듯 방향이 정확하면 결국 한 곳에 모두 모여든다.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교차로에는 마법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예술가와 엔지니어를 접목시키는 것이며,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능력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구조론에서 말하는 방향성이다. 그것을 두고 그냥 직관력이니 통찰력이니 하고 얼버무린다면 구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애초에 레벨이 다르다.
왜 한국의 삼성, LG, 네이버 같은 멍텅구리 IT들은 스티브 잡스에게도 있고 손정의에게도 있는 방향판단능력이 없을까? 간단하다. 방향판단이란 것은 단기적으로 손해보고 장기적으로 이익보자는 것인데, 단기적으로 손해보면 그 손해를 누가 책임져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재벌들은 몇 십 만명의 직원을 먹여살려야 한다. 애플은 고작 1만명이다. 직원 숫자가 많은 만큼 한국의 재벌들은 리스크에 약하다. 한국인이 특별히 방향판단을 못하는게 아니라 애초에 방향판단을 할 생각이 없다. 재벌의 폐해다.
그렇다면 스티브 잡스는? 잡스는 방향판단 하다가 짤렸다. 본인에게 책임이 돌아갔기 때문이다. 바르면 짤린다. 이건희는 방향판단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짤리지 않았다. 그는 짤릴 생각이 없기 때문에 방향판단을 하지 않는다.
손정의 역시 방향판단에 능한 사람이다. 손정의 역시 IT거품이 꺼지자 한물갔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기적같이 부활하여 제 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는 점에서 스티브 잡스를 닮았다.
방향판단을 하려면 시스템을 이해해야 한다. 시스템을 이해한다는 것은 충성스런 부하를 거느린 장군이 일개 부대를 이끌어 한 번의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과, 육해공 합동으로 이루어진 참모본부에서 여러 차례의 전투로 이루어진 전쟁 전체를 지휘하는 것이 다른 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 노인의 능력 – 1회의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능력 ◎ 젊은이의 능력 – 여러 전투로 이어진 전쟁 전체를 승리로 이끄는 능력
한국의 문제는 고립이다.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고립의 문화가 생겨나서 다양하게 소수자를 고립시키는 기술들이 발달되어 있다. 명박산성부터 시작해서 사회 곳곳에 담장을 쌓고, 격리하고, 배척하고, 물먹이고, 짓밟는 노하우들이 전수되고 있다. 조중동이 잘 발휘하고 있는 그 능력 말이다. 이렇게 고립되면 시스템적 사고를 하지 못하고 1회의 단발성 전투에서 승리하는 노하우만 발달하게 된다.
이명박은 집권이후 두 분 대통령 제거에 성공하고, 미네르바를 탄압하고, 윤도현과 김미화, 김제동을 억압하는 등 거의 모든 자질구레한 전투에 이겨왔다. 그리고 전쟁에는 졌다. 중요한 것은 이명박이 작은 전투에서 이기면 이길수록 큰 전쟁에는 질 확률이 점점 높아간다는 점이다.
서구사회처럼 개방과 공유의 문화를 발달시킨 나라는 성공하고 조중동처럼 폐쇄와 배타의 문화를 발달시킨 나라는 망한다. 시스템적 사고는 개방과 공유에 의한 생태계에서만 성립한다.
◎ 조중동 능력 – 적이 있는 상태에서 적을 이긴다. ◎ 방향판단 능력 – 적이 없는 상태에서 판을 꾸려간다.
이번 선거는 젊은이의 소통능력이 고립된 노인을 이긴 선거였다. 우리가 뒤처져 있을 때는 앞선 사람의 지혜를 베끼는 학습능력이 중요했다. 이것이 고립된 곳에서 1회의 전투라면 먹힌다. 조중동이 가진 능력이다.
그러나 지금은 소통능력이 중요하다. 우리가 충분히 앞서있기 때문이다. 앞서 있는 자에게는 적이 없다. 그럴 때 스티브 잡스의 능력이 필요하다. 애플은 누구와 경쟁하여 이긴 것이 아니다. 아무도 없는 판에 혼자서 치고나갔다. 애플을 처음 설립했을 때도 그랬고 토이스토리나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를 만들었을 때도 그랬다.
필요한 것은 가치있는 것을 알아보는 능력, 천재를 알아보는 능력, 방향판단을 하는 능력, 장기전을 수행하는 능력이다. 상대의 행동을 보고 거기에 대응하는 능력이 아니라 그것이 없는 상태에서 능동적으로 치고나가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시스템적 사고, 생태계적 사고가 바탕에 깔려있어야 한다. 1회의 전투가 아니라, 여러 전투가 연결된 전쟁 전체를 승리로 이끄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건 다른 거다.
그것은 어떤 핵심을 장악하여 탑 포지션을 차지하고, 필요한 자원을 조달하여 조금씩 퍼즐을 맞추어 가며, 한 단계씩 확률을 끌어올려서 모든 외부에서의 돌발변수가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하도록 조직하는 능력이다. 바로 그것이 있어야 한다.
조중동 꼴통들은 뭐 평생 이런 쪽으로는 생각해 본 적도 없겠지만 지금 한국이 필요로 하는 것이 그것이다.
후진국은 수직적 경쟁을 통해서 성장하지만, 선진국은 수평적 조합을 통해서 가치를 창출한다. 후진국은 1회의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학습능력을 통해 승리하고, 선진국은 여러 전투로 이어진 전쟁에서 전후방과 외부동맹세력을 조율하여 선순환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능력으로 승리한다. 이 시대에 최고의 능력은 최고의 팀을 만드는 능력이다. 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21세기의 대한민국을 책임져야 한다.
노인과 젊은이가 1 대 1 대결을 벌이면 노인의 지혜가 젊은이의 패기를 이길 수도 있다. 만약 1회의 사건으로 모든 것이 종결된다면 노회한 꼼수노인이 이길 수도 있다. 이명박 노인의 꼼수 지혜는 필자도 탄복할 정도다.
그러나 세상을 밑바닥에서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구조론에서 말하는 시스템이다. 그것은 진화하는 생태계다. 시스템의 세계는 여러 사건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고 여러 사람이 팀을 이루고 있다.
이 때는 개인의 학습된 능력보다 여러 사람의 능력을 합치는 소통능력이 중요하고, 위험을 피해가는 노인의 지혜보다, 위험을 경험하는 젊은이의 도전정신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 위험을 피하면 더 큰 위험이 닥치지만, 위기를 겪고가면 오히려 면역이 되기 때문이다.
필자가 ‘나쁜 길로 가라’고 말하는 뜻이 여기에 있다.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는 생태계의 원리이며, 생태계의 원리는 좋은 것을 취하는게 아니라 나쁜 것을 배제하는 것이다. 나쁜 것을 많이 경험한 쪽이 나쁜 것을 빨리 배제하여 승리한다.
이건 전혀 다른 것이다. 1회의 시합으로 끝나면 좋은 것을 가진 쪽이 이기지만 여러 전투의 연결로 가면 나쁜 것을 배제하여 약점이 없는 팀이 이긴다. 이는 프로야구나 월드컵 결승만 봐도 알 수 있다. 1회로 승부가 끝난다면 윤석민, 이대호가 필요한데 7차전까지 가려면 약점이 없는 팀이어야 한다. 월드컵에서는 메시가 있어도 안 된다.
거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플러스적 사고가 아니라 마이너스적 사고를 훈련해야 한다. 몸에 좋다며 이상한 보약 따위를 먹는 것은 플러스적 사고다. 나쁜 술, 나쁜 담배, 나쁜 정크푸드 등 나쁜 것을 끊는 마이너스적 사고가 건강에 보탬이 된다.
이는 애초에 접근법이 다르다. 이는 통찰력이나 직관력 차원이 아니고 그 이상의 레벨에서 작동하는 거대한 방향판단이다. 스티브 잡스 전기에 나와있듯이 그는 일관되게 마이너스를 외친 사람이다. 세개나 되던 마우스의 버튼을 당장 한개로 줄여라는 식이다.
아직도 스티브 잡스의 능력을 단순한 개인의 통찰력, 직관력 혹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상상력이라고 여긴다면 한참 모르는 것이다. 아직도 젊은이의 감성 대 늙은이의 이성 운운한다면 미친 거다. 전체과정을 책임지는 시스템의 제어 개념, 생태계의 조율 개념은 원래 다른 거다. 조중동 바보들은 절대로 모르는 거대한 세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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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공중분해가 정답"
-보선, 총선, 대선 징검다리 효과-
그림은 15프로 개표 상황이다. 한나라당이 서울에서 겨우 4~5곳을 앞서고 있을 뿐이다. 차기 총선에는 투표율 더 올라간다. 내년 총선에서 서울은 거의 한나라당 전멸이라고 봐야 한다.
그동안 젊은층이 투표를 안 했던 이유는 선거구도가 지역대결로 가서 재미가 없었기 때문인데, 이번에 보선승리는 세대대결로 되어 젊은층이 짜릿한 경험을 했다. 특히 이효리를 비롯하여 연예인들이 대거 나서준 SNS의 맹활약이 젊은층에게 재미를 부채질하는 도구가 되었다.
총선에서 투표율은 더 높아질 수 밖에 없고, 그렇다면 극단의 경우 서울에서 강남구 하나만 한나라당이 건질 수도 있다. 왜? ‘총선승리=명박탄핵’이라는 빅재미 이벤트에 대한 흥미를 도저히 뿌리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건 너무나 ‘빅재미’인데다가, ‘인과응보’라는 옛 성현의 가르침과도 통하므로 심지어 수구꼴통들도 귀가 솔깃할 사안이다. 수구꼴통 입장에서도 명박은 재앙이다. 남의 손을 빌려서라도 응징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 지난 번 글에서 말했듯이 서울시장 이기면 총선은 자동으로 따라오고, 총선에서 이기면 대선은 자동으로 따라온다. 징검다리 효과다. 점입가경 모드다. 사람들은 현실성 있는 목표를 제공하면 무조건 따라오는 법칙이 있기 때문이다. 총선과 대선의 대다수 공약이 서울시를 끼어야 성립되므로, 이제 한나라당은 무슨 공약을 해도 비현실적인 목표가 된다. 나비 한 마리의 날개짓이 세상을 바꾸는 법인데 이미 나비의 날개짓은 시작된 것이다.
선거는 논리가 아니라 심리다. 대운하공약은 한나라당 지지자가 봐도 말도 안 되는 황당한 공약이지만, 그게 대선에서 상당히 먹힌 것은 상당히 흥미있는 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운하를 보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운하를 두고 벌어지는 치열한 공방을 보려고 했던 것이다.
명박탄핵 이벤트는 현실성 여부를 떠나 여야간에 치열한 공방을 불러 일으킬 흥미있는 쇼가 되므로, 일단 콜을 외치고 보자는 대중의 심리가 작동한다. 그들은 옳고 그르고를 떠나 상대방의 반응을 보고 결정하려 하며, 무조건 상대의 격렬한 반응을 얻어내는 쪽으로 결정한다. 인화성이 좋은 이벤트가 있으면 무조건 찍는다.
무엇인가? 내심으로는 대운하를 반대하면서도 이명박의 황당한 공약에 재미들려서, 순전히 호기심 때문에 이명박 찍은 사람들 많았다. 그들은 실제로 원하던 ‘빅재미’를 얻은 것이다. 일단 나무에 올려놓고 흔들어도 흔들자는 심리대로다. 단지 나무 흔드는 재미로 말도 안되는 자를 나무에 올리는 인간들 이 나라에 5퍼센트 있고 그들이 결정했다.
그들이 원하던 빅재미 쇼는 촛불로 터져나왔다. 상대의 반응을 보려한 그들의 의도대로 대중의 격렬한 반응이 나온 것이다. 이명박이 워낙 말도 안되는 일을 밀어붙이니까, 이명박 이 인간 말로 해서는 도저히 안 되겠고, 오직 힘으로 눌러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일어나서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로 터진 것이다.
미친 후보를 찍은 미친 유권자들은 그들이 내심으로 원하던 빅재미를 그렇게 얻어간 것이다.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그들이 내심 고대하던 이벤트는 실제로 일어났다. 원하던 격렬한 반응을 확인했다. 주변에 이런 사람 많다. 자기 손으로 이명박 찍어놓고 이명박 욕은 앞장서서 하고다니는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사실 흥미 때문에 찍은 거다.
그렇다. 빅재미 이벤트는 계속 이어진다. 당장 총선분위기 띄울 명박탄핵 이벤트는 물론이고, 지역대결구도를 세대대결 구도로 완전히 바꾸는 정치권 판갈이 이벤트도 기다리고 있다. 이 두 번째 이벤트는 민주당까지 겨냥하고 있다. 인화성 높고 반응성 좋다.
-한나라당 공중분해 되나?-
서영석 정치평론가
필자가 봄에 서영석님과 잠시 토론한 것이 있는데, 당시 필자가 강조하려고 했던 것은 한 마디로 ‘박근혜가 링 위에 오른다는 절대적인 보장은 없다’는 것이었다. 돌발변수는 등장할 수 있고, 거기에 맞춰서 유시민이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거.
서영석님은 과거 김영삼이 손쉽게 신한국당을 접수한 예를 들어, 이번에도 박근혜가 손쉽게 한나라당을 장악할 것이라고 이야기했고, 그것이 바로 여권 특유의 줄서기 본능이라는 것이었다. 반면 필자는 한나라당 내부에서 항명이 일어나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많다고 내다보았다.
결과는? 지금 박근혜, 유시민 두 사람 다 링 밑으로 내려갈 상황이다. 필자가 주장한 ‘예기치 못한 전개’는 현실화 되고 있다. 물론 박근혜가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나올 가능성은 지금도 매우 높지만, 필자도 그것까지 원천부정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필자가 예견한 한나라당 내부에서의 기강해이, 반란군의 등장은 이미 사실로 나타났다.
오세훈의 해당행위는 한 마디로 당의 기강해이에 따른 것이다. 이게 반란군 짓이다. 당에 김대중, 노무현, 이해찬, 김영삼급 어른이 없으니 다섯 살 먹은 애가 멋대로 사고치고 다니는 거다. 사실 오세훈은 이번에 진짜 큰일했다.
오세훈 뿐인가? 홍준표도 지금 준항명급 기강해이 상황이다. 나꼼수에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나사가 풀린 것이다. 그들은 이미 긴장이 풀렸다. 진지하지 않다. 약먹었나 싶을 정도로 나사가 빠졌다. 보온병 상수부터 시작된 혼란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한나라당은 암탉이 울면 안 되는 수구꼴통 정당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나라당에서 제일 어른이 박근혜다. 그런데 영이 안 선다. 기강이 안 선다. 다들 나사가 풀려서 헬렐레 하고 있다. 심지어 나경원도 박근혜와 나란히 가려고만 했지 한걸음이라도 뒤에 처져서 따라가지는 않으려고 할 정도라고 한다. 박근혜는 이 상황이 자기가 나서서 수습해야 하는 당의 위기상황이라는 사실조차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진보정당에서 여성 실력자가 전면에 나서면 다들 훈련된 지성인들이므로 성실히 따르지만 수구꼴통은 꼴통기질을 절대 버리지 못한다. 꼴통이 달리 꼴통이겠는가? 저러니까 꼴통인 것이다. 여성의 정치참여는 진보정당 중심으로 추진해야 한다. 그게 자연스러운 역사의 흐름이다.
지금 한나라당의 위기를 수습할 어른은 없다. 박근혜는 원래 동선이 좁고 친박계는 무능한 수구꼴통이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이재오 등은 이미 물먹었다. 그들은 차라리 차차기를 구상하며 야당의 집권을 방조할 상황이다.
이명박은? 이 위인은 원체 그릇이 작은 인물이어서, 자신이 대통령이 된 사실 그 자체를 크나큰 영광으로 여기므로 더 이상의 욕망이 없다. 두둥실 꿈세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신 못 차렸다.
- 한나라당은 공중분해가 정답이다.
- 지역주의는 여전히 완강하지만 그 예봉은 꺾였다. 지금부터는 세대대결을 축으로 잡아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꿈은 그렇게 조금씩 현실화 되고 있다. 지역주의 믿고 판을 짜던 모든 기획은 원점에서 재검토 되어야 한다.